영화 본 뒤의 이 껄쩍지근한 느낌은???
어쩌면 TV의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카자흐스탄이란 국가를 떠올렸을 때 딱히 머리에 남는 이미지는 없다. 그래서 인터넷 백과사전을 검색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중앙아시아 북부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카자흐스탄공화국(Qazagstan Republic). 면적 271만 7300㎢. 인구 1514만 1500명(2004). 동쪽은 중국, 서쪽은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은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북쪽은 러시아 연방과 접해 있다. 수도는 아스타나.'
정말로 카자흐스탄의 마을에 강간범과 창녀들이 들끓고 나이가 40세만 넘어도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그려진 마을에 거주하는 한 유명 카자흐스탄 TV 리포터가 장관의 지시에 따라 미국 문화를 습득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TV 리포터인 보랏을 맡은 영국 출신의 사샤 바론 코헨은 이와 비슷한 성격의 코미디물로 영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즉, 알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변장하고 이상한 행동을 함으로서 그에 반응하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이 프로그램의 미국 촬영기가 바로 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뉴욕에 도착한 보랏은 도착 직후부터 온갖 해프닝을 일으킨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악수하며 볼 키스를 시도하고, 너무나 태연한 모습으로 가로수에 응가를 하기도 하며, 호텔에 도착해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짐을 풀기도 한다. 좌변기의 물로 세수를 하는 모습은 화장실 코미디 영화에서는 너무 익숙한 모습. 그는 호텔 TV의 채널을 돌리다가 빨간 수영복의 파멜라 앤더슨에게 홀딱 반해 모든 일정을 변경, 캘리포니아로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 횡단 여행에 나서게 되고, 가는 곳곳마다 별의별 해괴망칙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목적은 명확해 보인다. 그건 바로 미국이라는 사회를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미국 사회의 폭력성이나 반 유대주의 등의 위선을 파헤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러한 목적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총기점에 들어가 '어떤 총으로 쏴야 유대인을 확실히 죽일까요?'라는 질문에 스스럼없이 몇 개의 총을 권유하는 상점 주인의 모습에서 반유대주의보다는 총기 판매를 위한 자본주의적 상술이 먼저 다가왔으며, 인종차별이나 게이에 대한 비난은 정말 비판 받을 만한 장면을 보여주고선(화면에 비친 건 강간이다) 비판한다고 성정체성을 인정 하지 못한다는 식의 비난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껄쩍지근한 느낌은 설사 미국 위선 파헤치기라는 목적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동원된 카자흐스탄이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오도되고 거짓된 정보의 제공 및 그로 인한 그들의 위신 추락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라는 점 때문이다. 사실 보랏의 국적은 카자흐스탄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문제며, 오히려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로 상정하는 게 더 적당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일부에서 유머를 유머로 받아 들이지 못한다고 비판한 점은 정말 이해되지 않는 비판이다.
만약 보랏이 카자흐스탄이 아니라 대한민국 리포터로 소개되었다고 해도 유머로 받아들이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며, 유머의 대상이 꼭 그렇게 가난하고 힘없는 중앙아시아의 신생 독립국이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잘 알려지고 나름대로 국력이 있는 국가를 그런 식으로 그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외교문제까지 비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카자흐스탄이란 국가는 아마도 서방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보랏이 소개한 그 이미지(더럽고, 가난하며, 강간범과 창녀가 들끓고, 어떤 여자든 보쌈해가면 자기 여자가 되고, 유대인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는)로 투영되어 나타날 것이다. 보랏의 여러 행동들은 미국의 위선을 파헤치기에 앞서 카자흐스탄의 반문명적 이미지를 먼저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국제사회에서 목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하는 약자를 상대로 한 가혹하고 비열한 유머에 불과하다.
덧붙여, 온화하고 심성 고운 유대인인 노부부의 등장으로 보랏(카자흐스탄)의 반유대주의가 근거 없다는 설득력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에 게이나 흑인에게는 이런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 받아야 한다. 암튼 가끔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나에겐 참 껄쩍지근하고 기분 더럽게 안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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