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달리아] 코미디가 되어 버린 현대 하드보일드 소설의 걸작...
꽤 오래 전 스칼렛 요한슨의 다음 작품이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블랙 달리아]라는 기사를 보고, 개봉하면 봐야지 하고 있다가 기억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원작 소설을 읽게 되었고 이미 영화로 나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물론 국내에서 정식 개봉되지는 않았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영 궁금해서 구해 보게 되었다.
우선 이 소설은 현대 하드 보일드 걸작 소설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LA컨피덴셜]의 원작자인 제임스 엘로이는 열살 때 어머니가 강간 살해를 당한 끔찍한 충격으로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다가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을 재구성해 소설로 완성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꽤 어둡게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은 그 동안 절판되었다가 얼마 전 한 출판사에서 다시 발매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 중 [LA컨피덴셜]이 영화로 만들어져 좋은 평가를 받은 상황에서 [블랙 달리아]도 몇 차례 영화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한 번은 데이빗 린치 감독이 손을 댔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영화는 벅키와 리가 길거리의 소동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이 부분은 소설과 거의 동일하다. 그리고 경찰 관련 예산의 증액을 위한 둘의 권투시합, 벅키, 리, 그리고 리의 애인인 케이, 3명의 우정과 사랑, 입이 찢어지고 몸이 두 동강이 난 채 발견된 여인의 시체, 이 사건을 쫓는 벅키와 리, 수사 과정에서 만난 미묘한 여인, 리와 케이의 감추어진 비밀 등이 차례대로 화면을 장식한다.
소설은 크게 보면 세 가지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첫째는 엘리자베스 쇼트 살해사건. 끔찍하게 살해 당한 여성은 검은색 옷을 주로 입고 허황된 꿈을 쫓았던 결코 순결하지 않은 여성이었다. 언론은 이 여성에게 블랙 달리아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검사와 경찰 고위 간부들은 정치적 성공을 위해 이 사건의 해결에 온 경찰력을 투입한다. 소설에서 이 부분의 핵심은 살해되기 전 며칠 동안 여인의 행적이었고, 여기에 정신병자 군인, 무허가 의사, 부패한 경찰, 레즈비언 클럽, 포르노 영화 감독 등이 관여되어 나타난다.
두번째로는 벅키, 리, 케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케이 전 애인의 출감과 이에 대한 리와 케이의 과민 반응, 리의 죽음 등이 다루어지며, 세번째로는 벅키와 살해 당한 엘리자베스 쇼트를 닮은 매들라인과의 관계인데, 매들라인 가족의 이상한 분위기, 엘리자베스를 죽기 전에 만난 매들라인의 음모 등이 거론된다.
물론, 가장 핵심인 이야기는 블랙 달리아 사망사건이며, 전혀 별개처럼 보이던 다른 이야기들도 알고 보면 이 살해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게 소설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하나씩 드러난다.
원작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건, 그 방대한 텍스트를 모두 영화로 옮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누구 말마따나 하루 종일 영화를 봐야 할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선택과 집중의 원리'는 정확히 관철되어야 한다. 즉 소설의 방대한 이야기 중에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고, 선택했으면 그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사라지는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소설의 영화화를 위한 희생으로 치부해야 한다.
이 영화의 단점은 제대로 선택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버리기가 아까웠는지 소설의 3가지 중심된 이야기 모두에 한발씩 걸쳐놓고 있다. 그러다보니 블랙달리아 사망사건은 소설보다 비중이 줄어들었고, 스칼렛 요한슨 때문인지 벅키와 케이의 로맨스는 소설보다 비중이 높아져 있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블랙 달리아 사망사건'은 영화에서 자꾸만 실종되고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소설을 읽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과도한 도약과 건너뜀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스러웠던 장면은 리가 죽는 장면이었는데, 카메라는 범인의 실루엣을 살짝 보여주면서 지나간다. 문제는 그 장면이 우스울 만큼 엉성해서 누가 범인인지 한 눈에 환하게 드러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 영화는 뻔하디 뻔하거나 어처구니 없는 코미디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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