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아시아 전역에 퍼져있는 여러 가지 고전 사상들(유가, 도가, 묵가 등등)은 다들 중국 사상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춘추전국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사상들이 그 시기에 발생되었으며 또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영화 <묵공>은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묵가(墨家)사상'의 대표적인 10가지 주장(겸애(兼愛), 비공(非攻), 상현(尙賢), 상동(尙同), 천지(天志), 명귀(明鬼), 비락(非樂), 비명(非命), 절용(節用), 절장(節葬))중 '내 몸을 아끼듯, 남의 몸도 아껴라'는 '겸애(兼愛)'를 주제로 하고 있는 영화이다. 이것이 '묵가의 사상'과 가장 비슷하며 잘 나타낼 수 있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국사나 역사시간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은 여기서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영화의 이야기를 해보자.
피와 살육, 혼돈으로 가득했던 춘추전국시대.
다가올 조나라의 공격 앞에 바람 앞의 등불 마냥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양성. 10만의 적군을 상대할 양성의 군대는 고작 4천에 불과하다. 지원군을 요청했던 '묵가'에서는 소식이 없는데... 때마침 양성으로 다가오는 누군가. 그는 풍전등화의 양성을 구하기 위해 지원을 온 '묵가'의 '혁리(유덕화 분)'였다. 지금까지 성을 지켜본 경험도,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도 없는 사람이지만 양성의 백성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항엄중(안성기 분)'이 이끄는 조나라의 공격을 막아 내기에 이르는데... 한순간에 양성의 영웅으로 떠오른 '혁리'. 그와 함께 성 안은 '혁리'가 주장하는 '묵가사상'의 '겸애'가 백성들 사이사이에 퍼지게 되면서 왕과 이하 군신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게 된다. 위기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는 왕, 그리고 이어지는 간신들의 계략. 이후 '혁리'와 백성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또한 조나라의 계속되는 공격 앞에 양성의 운명은...
영화 <묵공>은 블록버스터라기 보다는 한편의 서사시와 같은 영화다. '혁리'와 '항엄중' 이 두 전략가의 머리싸움과 양성 내에서 벌어지는 암묵적인 신경전은 영화의 긴장감을 쥐락펴락한다. 하지만 두 전략가의 머리싸움도... 암묵적인 신경전도 결국엔 주인공 '혁리'가 주장하는 '겸애'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과정 혹은 배경이다.
20배가 넘는 대군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는 이상의 현실화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억지로 지은 가식적인 미소가 그리 달지 못하듯 현실은 달랐다. '혁리' 자신이 이야기하던 '겸애'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는 모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전쟁은 냉혹한 현실이며 피도 눈물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그러한 것이 전쟁이다. 한데 그러한 상황 속에서 '겸애'라니... 결국 '혁리'는 피흘리며 쓰러져가는 죄없는 백성들의 비명 소리와 머리, 마음에서 오는 자기 내면의 괴리에서 오는 심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더 나아가 자기 내면의 괴리감을 넘어 이상의 탈현실화를 겪게 되면서 '혁리' 개인의 고통을 극에 달하게 된다.
영화 <묵공>은 이상주의의 탈현실화를 주제로 우리 중 그 누군가는 진리라 여겨왔을 그 무언가에 대한 진실성과 현실성에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바램처럼 이상의 현실화가 이루어졌을때.. 혹은 이루어지려는 과정에서 그 모습이 진정 우리가 바라던 모습일 것이냐라는 질문 말이다.
세상의 진리... 무엇이든 이름지으려 들고 가둬두려는 요즘의 모습을 해체 하려는듯 과거 성인들의 사상들을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지만 과연...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진정 누구를 위한 유토피아일 것인지...
십전대보탕에 곁들인 메추리알 마냥 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한... 어줍잖은 러브라인과 '혁리' 이외에는 모두가 엑스트라로 전락시켜버린 감독의 연출 센스만 아니라면... 그냥... 괜찮았던...
p.s 안성기의 연기력을 돋보이게 하지 못한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꽤나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구사하던 안성기의 연기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서 후반부 고작 10여분 정도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혁리' 개인의 고뇌 뿐만 아니라 두 전략가의 전략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활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두 마리 토기 중에서 한 마리만 제대로 잡기로 생각했나 보다.. 국내 팬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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