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끝과 판타지랜드
영화가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해설이 이어진다. “언젠가 엔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도시는 이민자들로 넘쳐나 골드러시를 방불케 했다… 이민자들은 이 도시를 ‘엔타운’(円都)이라 불렀다. 일본인들은 이 이름을 싫어해 여기로 모여든 이민자들을 ‘엔타운’(円盜)이라 부르며 경멸했다… 이건 엔타운에 모여든 엔타운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가상의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와이 순지표 판타지영화다.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사실 <스왈로우테일…> 속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그리 멀지 않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엔타운은 아비규환의 전쟁터이자 질긴 삶들이 똬리를 튼 정글이며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다다른 종착역이다. 그런 탓에 한 주인공의 뇌까림처럼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여기가 천국인가?”라는 말 또한 성립된다. 이곳의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일류 가수로 성공할 수 있다는, 권투 챔피언에 등극할 거라는, 꿈.
영화는 여러 주인공들의 꿈을 이와이 순지 특유의 비주얼 안에 뒤얽어놓는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이름도 없던 한 소녀는 어머니가 죽은 뒤 매춘부 그리코에게 가게 되고, 제비나비란 뜻의 아게하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다. 아게하는 그리코와 친한 페이홍의 고물상에 나가 일을 하게 되고 애벌레에서 완전한 나비로 변태하기 위해 힘껏 몸부림친다. 그리코에게는 가수가 되고 싶은 욕망과 함께 어릴 적 헤어진 오빠와 재회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리코는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메이저 음반사에 발탁돼 일약 스타로 떠오르지만, 아게하를 겁탈하려던 야쿠자를 죽였던 일과 관련되면서 위기를 겪는다. 페이홍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그리코를 위해 클럽을 만들어주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야쿠자의 뱃속에서 나온 위조지폐 데이터를 이용해 마침내 그 꿈을 이루지만, 음반사 관계자들의 견제를 받는다. 그외에도 잃어버린 여동생과 재회하고자 하는 료량키, 언젠가 챔피언에 등극할 거라는 전직 권투선수 아론 등 여러 명의 꿈이 뒤얽힌다.
이들 여러 명의 주인공을 오가며 진행되는 <스왈로우테일…>은 이와이 순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에 속한다. 스릴러, 액션, 멜로 같은 장르적 요소에 성장영화의 모티브와 SF적인 뉘앙스까지 포함한 이 영화는 총알 같은 스피드에 폭발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장르적인 재미에 이와이 특유의 감성을 녹여낸 이 영화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만화적 세계와 디스토피아적 어둠, 맹목적인 사랑 등 세기말의 감흥을 적절하게 담아내 일본 개봉 당시 <러브레터>보다 월등한 6억엔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TV드라마 <프라이드 드래곤 피시>를 만든 뒤 그 속편격으로 시작됐지만, 결국 아사노 다다노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스릴러와는 다른 이야기가 돼버렸다. 이와이 감독은 이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스왈로우테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는데, 영화와 비슷한 설정이지만 “<러브레터>나 <피크닉> 등을 쓸 때 <스왈로우테일>에서 내가 좋아하는 페이지를 뽑아내 소재로 쓰곤 했”기 때문에 별도의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소설과는 또 다른 영화가 탄생했다.
이 영화는 일본의 가상공간과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이와이 순지 영화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어떤 역사성이나 사회적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갑갑하기 짝이 없는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스왈로우테일…>은 아나키스트적인 비전까지 제시한다. 주인공들은 위조지폐를 찍어 유포하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절반 정도의 대사가 영어로 진행된다거나(엔타운의 공용어는 영어다), 서양 사람이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한다거나 하는 데서도 언뜻 드러난다. 이 모든 요소에도 불구하고 <스왈로우테일…>은 이와이 순지의 작품답게 사랑에 대한 영화다. 그 대상이 오빠건 동생이건 연인이건 엔타운이란 공동체건 간에, 주인공들에게 행동할 용기를 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 사랑이다. 이 147분의 장대한 막이 내릴 즈음, 쌉싸름한 무언가가 치밀어오르는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글 : 문석-씨네21)
첨언하자면, 이 영화가 나올 즈음해서 일본경제의 버블이 걷히고 장기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사실 1980년대 말부터 미국 시대가 끝나고 일본이 조만간 미국을 극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되었고, 90년대 들어와 그 꿈은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가능성에 대한 미국 영화의 반응은 매우 신경질적으로 나타나, 일본=악으로 상정하고 인종적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떠오르는 태양] 같은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했다.
어쩌면 '엔타운'이라는 가상의 공간은 일본이 경제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에서 도출된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그러한 전망이 일본 국가의 자긍심과 연결된 민족주의적 색채로 그려지지 않고, 중심부가 아닌 주변주 삶의 사랑과 희망을 그렸다는 점이 긍정적이다.(우리나라도 동양 또는 다른 세계의 변방 국민들에게 일종의 꿈과 희망의 공간이 된지 오래다. 그들은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코리안 드림을 성취하기 위해 모여들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영화엔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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