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 그 오묘한 조화
개봉 당시 데이비드 린치 감독 특유의 환상적인 스토리 구성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매번 내 놓는 작품마다 화제와 함께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주류 감독 치고는 컬트 매니아와 아카데미를 동시에 만족시켜 온 대표적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미묘한 분위기의 춤을 추는 사람들로 시작한다. 그 앞으로 투명하게 비치는 다이안(혹은 베티)과 카밀라(혹은 리타)의 모습은 이 둘이 이미 죽었다는 걸 암시하는 징조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영화는 앞부분 약 2/3가 환상에 속하는 영역이고, 후반부가 현실의 영역이며, 시간적으로는 후반부가 앞의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다이안과 카밀라는 동성 연인관계로 한 아파트의 17호에 거주하고 있다. 둘 다 잘 나가는 영화배우를 꿈꾸는데, 감독의 눈에 띈 카밀라는 주연을 꿰차며 승승장구하는 반면, 좀 거칠고 지저분한 외모인 다이안은 애인 덕으로 작은 역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안은 카밀라와 감독이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을 파악하고 극단의 질투심을 표출한다.
카밀라가 보낸 리무진을 타고 감독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한 다이안은 감독의 어머니(코코) 등 여러 사람을 소개받는데, 그곳에서 카밀라와 감독의 약혼 발표를 접한다. 다이안의 질투는 극으로 치닫고, 한 킬러에게 카밀라 살해를 의뢰한다. 킬러는 의뢰가 성공하게 되면 파란 열쇠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인 파란 열쇠를 보며, 질투와 복수, 그리고 후회, 좌절 등의 온갖 감정에 휩쌓인 다이안은 그 혼돈의 와중에 격렬한 자위행위를 하며, 자살함으로서 자신의 삶도 끝낸다.
전반부의 환상 장면은 아마도 자위행위를 하며 느낀 절정 속에서 다이안 자신이 생각한 좀 더 이상적인 삶을 상상하는 장면이라고 보인다. 일부에선 전반부의 환상 장면이 다이안과 카밀라가 죽은 후 잠시 머무르는 3차원적 공간, 이승도 저승도 아닌 동양적으로 원을 풀지 못한 혼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설명하는 글도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다이안이 죽기 직전의 상상 장면으로 이해하는게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건 현실의 다이안이 소망하던 모습이 상상 장면에서 보여진다는 점 때문인데, 우선 외모부터가 깔끔해지고 아름다워져 있다. 그리고 지저분한 17호 아파트가 아니라 이모의 부재로 인해 넓고 안락한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연인인 카밀라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의지하며 자신만을 사랑한다. 다이안은 현실과는 달리 뛰어난 연기력으로 찬사와 함께 감독의 은근한 눈길을 받는다. 반면, 현실에서 자신의 연인을 뺏어간 감독은 상상에선 반대로 바람핀 아내에게 집에서 쫓겨나고 마피아의 협박에 주연배우를 마음대로 뽑을 수 없는 비참한 현실에 처해 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작품은 대게 매우 모호하며 환상적이고, 이해가 쉽지 않거나 다양한 해석 등으로 결코 쉽지 않은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도 한 여인의 복수와 좌절, 그리고 헐리웃 영화 산업의 비열함 등을 담아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준 최고의 선물은 뛰어난 연기력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나오미 왓츠'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점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