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주제의식, 꼬여버린 사건..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는 교회 한 번 나가지 않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알만큼 유명하다. 인간들은 바벨탑이라고 이름지은 거대한 건축물을 지어 스스로 신의 위치에 오르려 하지만 야훼가 내린 벌 때문에 바벨탑 건설은 무산되고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이 때 야훼가 내린 벌은 사람들이 쓰는 말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 것이고,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던 인류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의 공통 언어인 바디 랭귀지가 그 때는 왜 안 통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바벨]이 다루고자 하는 얘기도 언어와 문화, 환경이 다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모로코, 미국, 멕시코, 일본이라고 하는 지구의 4개 지역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단절, 위기는 모로코 사막에 울려퍼진 한 방의 총소리에서 시작된다. 염소를 위협하는 자칼을 사냥하기 위해 핫산으로부터 소총을 구입한 모로코의 한 아버지는 어린 두 아들에게 총을 맡긴다. 두 아들은 총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장난삼아 멀리 지나가던 버스를 향해 총을 발사하는데 공교롭게도 발사된 총알은 버스에 타고 있던 미국 관광객인 수잔의 어깨를 맞히고, 남편 리처드는 부인의 치료를 위해 가이드의 고향인 모로코의 한 시골마을로 버스를 향하게 한다.
모로코에서의 사고로 리처드, 수잔 부부는 예정했던 날에 귀국하지 못하게 되고, 이 때문에 멕시코인 보모 아멜리아는 아들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두 아이를 데리고 멕시코로 갔다가 밤 늦게 국경을 넘어 돌아오지만 운전을 하던 조카의 실수와 멕시코인이 백인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는 것에 대한 미국 경찰의 의구심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한편, 모로코로 사냥 여행을 갔다가 사냥 가이드를 한 핫산에게 총을 선물하고 귀국한 일본인 야스지로에게는 농아인 딸 치에코가 있다. 치에코는 어머니의 자살로 받은 충격과 농아로서 타인과의 단절된 소통에 대한 절망감으로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려 한다.
[바벨]은 감독의 전작인 [21그램]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그리고 있다. 다만 [21그램]의 사건 당사자들은 모두 직접 만나고 서로를 알게 되지만, [바벨]에서는 일부는 알기도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가 인간 언어의 상이함에 따른 소통의 단절을 얘기했다면, 영화 [바벨]은 언어의 상이함보다는 결국은 계급적 차이로 인한 소통의 단절로 보인다. 미국 부부 리처드와 수잔은 모로코 여행 중 들린 한 카페에서 캔에 담긴 콜라 외에는 얼음 마저도 세균이 들어있어 죽을 수 있다며 마시지 않으려 한다. 수잔의 치료를 위해 들어간 마을에서 의사역할을 하는 마을 주민의 임시처방은 수잔과 리처드를 불안하게 한다. 수잔의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마을에 들어온 미국 관광객들은 마을 사람들이 자기들을 죽일지 모른다며 리처드, 수잔을 남겨두고 도망치듯 내뺀다. 미국 경찰은 백인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는 멕시코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모로코 아이들의 우발적인 장난은 테러로 간주되어 무조건 저격의 대상이 된다. 만약 모로코가 번지르르하게 개발된 국가였다면, 그 마을주민이 번듯한 양복이나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더라면, 국경을 넘는 사람이 멕시코인이 아니라 그냥 백인이었다면 아마도 이들에게는 어떠한 오해나 소통의 단절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관계 3부작' 또는 '연쇄충돌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바벨]은 (첫편인 '아모레스 페로스'를 안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21그램]보다 후퇴했다고 느껴진다. 모로코에서 발사된 총알은 모로코의 사막을 넘어 미국과 멕시코의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나비효과) 문제는 거기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종교적 운명주의 또는 비관주의로 비쳐지기도 한다. 거기에 별개로 진행되는 듯한 일본의 에피소드는 전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과장된 에피소드로 오히려 영화의 짜임새를 떨어트리고 있다.(소통의 단절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녀 치에코를 농아로 설정했다고 보이는데, 이것 역시 과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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