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다고 사료됨)
나는 호러를 혐오한다. 슬래셔나 스플래터의 과도한 피, 하드고어류의 속살(?) 드러내기에 울렁증이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내가 호러 혐오자가 된 건 사지가 절단되고 온 몸을 뒤트는 끔찍한 신체유린행위가 비위 상함을 떠나 영혼을 생채기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권씨)
그런 이유로 나는 호러보다는 스릴러를 즐겨보는 편이다. 호러가 싫다고 해서 '공포'라는 감정, 그 대리체험의 기쁨(?)까지 포기할 순 없기 때문에.
NUMBER 23도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릴(공포)'은 없었다. '요람을 흔드는 손'에서 느꼈던 조바심, '무언의 목격자'에서 느꼈던 긴장감을 기대했건만.
근데 알고보니 그건 이 영화가 서스펜스가 아니라 미스터리기 때문이란다. 놀람이 아니라 궁금함이라는 것인데 그런 기준에서 보자니 그럴 듯 하게 만든 영화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보고 나서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미스터리를 지나치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본 건 아닌가하는. 한 발 더 나가서 숫자 23에 엮인 미스터리들을 좀 더 강렬하게 던져 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숫자 23에 대한 집착을 정신병적 증세로 보고 말았기 때문에 숫자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놓쳐버렸다.
영화를 보며 어릴적 즐겨보았던 '환상특급'을 떠올린 건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거기서처럼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주책없이 벌여놓고 결말에 가서는 신기하지? 하는, 좀 뻔뻔한 맛도 있어야 하는데.
게다가 '기억상실'에 기댄 반전. 사실 좀 식상한 코드다. "브루스가 유령이었대"식의 이런 판 뒤집기는 사실 '식스센스'를 정점으로 이미 그 생명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우리가 기대하는 반전이란 관객의 지각적 한계를 농락하거나 힌트를 전혀 주지 않는 고압적인 반전이 아니라 좀 더 치밀하고 영리한 반전이 아닐까. 예컨대 '나비효과'와 같은.
이래저래 아쉬운 영화다.
P.S 캐리형~ 이터널 선샤인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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