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살고 싶은 가장들의 비루한 삶...
개봉 전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면서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폭 이야기라는 점에 일말의 불신을 가졌을 법하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던 [연애의 목적]을 아주 좋게 본 사람으로서 감독도 괜찮고, 배우도 좋은데, 다만 조폭이 소재라는 점에서 나 역시 반신반의한 건 마찬가지였다.
결론적으로 영화를 본 다음에 든 생각은 조폭 얘기라기보다는 깡패 얘기였고(조폭과 깡패는 왠지 아주 커다란 차이가 느껴진다), 깡패 얘기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살아 남아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이 시대, 특히 한국의 40~50대 가장들의 이야기였다. 송강호의 연기는 누군가의 말처럼 뛰어난 배우 한 명이 한 작품에서 차지할 수 있는 비중의 극대치를 보여준다고 할 만큼 대단했으며 두 말하면 잔소리인 오달수나 스크린을 통해 처음 모습을 보이는 박지영을 본다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영화는 운전 중 신호대기 상태에서 꾸벅 졸고 있는 인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피곤에 쩔어 있는 모습, 그리고는 마치 피로회복제 광고에서 곰 한마리를 등에 엎고 생활하고 있는 사람처럼 영화 내내 인구의 피곤함은 가실 줄을 모른다. 스트레스와 피곤으로 점철된 생활은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딱히 특정 직업군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구의 직장 생활(?)을 들여다보자. 들깨파의 넘버3. 그러나 능력으로보면 당연히 넘버2에, 보수를 이어 조직을 관리해야 마땅하건만 애당초 그 자리는 인구의 자리가 아니다. 왜냐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보스의 동생 노상무가 있기 때문이다. 능력을 떠나 가족에 의해 경영이 되물림되는 건 폭력조직이나 재벌기업이나 매한가지다. 위로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온다. 깡패라면 싸움을 잘하는 것이 능력이건만 나이도 먹고, 부인 말마따나 이제 싸움도 잘 안 된다.(과거엔 이 정도 나이되면 편하게 부하직원 관리만 하면 됐는데, 세상이 변하면서 컴퓨터니 뭐니 새로 배워야 하는 우리 시대의 불쌍한 중년들)
그럼에도 인구는 깡패짓를 청산하고 청과물 도매상이나 하면서 교외의 정원이 있는 멋드러진 집에서 가족과 살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인구는 고향 친구의 조직과 충돌하면서까지 아파트 시공권을 따내며 그렇게 염원하던 대박의 꿈이 현실로 다가옴을 느끼지만, 조직 내외에서 우아한 세계에서 살고픈 인구의 꿈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국 남성의 40~50대 돌연사가 세계 최고라든가. 정말 그 나이대의 직장인들은 목숨 걸고 일한다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다. 왜 그렇게 병을 얻어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되는지, 아마 대부분은 가족의 부양과 행복을 운위할 것이다. 영화에서 인구가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라 깡패인 이유는 목숨 걸고 직장 생활하는 가장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이런 인구의 희생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챙피하다고 아우성이다. 딸 희순은 차라리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까지 한다. 인구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울먹이며 호소한다. '어떻게 당신이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모든 걸 다바쳐 가족을 위해 희생했는데 가장에게 돌아오는 건 가족들의 거부와 냉소뿐. 그런데도 인구는 가족들에게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가슴이 정말 먹먹해졌다. 난 왜 하필 돈 없는 집에서 태어났는지, 왜 우리 아버지 직업은 이리도 비루한 직업인지.. 어릴적 알게 모르게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구나. 심지어 깡패 아버지 조차 저렇게 아파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인구는 그토록 원하던 정원이 딸린 집을 얻지만, 같이 그 행복을 누려야할 가족은 인구의 곁에 없다. 행복에 겨워하는 가족 속에 가장인 인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 웃으며 라면을 먹다가 눈물을 흘리는 인구, 송강호의 표정은 당분간 잊기 힘들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