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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gu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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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7 오전 11:3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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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학>"은은한 매화향 속 잠시 쉬어가시죠" 임권택 감독, 소리꾼의 정한(精恨)과 여정(旅程) 그려
남도 소리꾼의 한 맺힌 삶을 그렸던 영화 <서편제> 다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소리꾼의 정한(精恨)과 여정(旅程) 그리고 애닲은 사랑을 그린 영화 <천년학>(제작 KINO2, 감독 임권택)이 지난 3일, 언론 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소설가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천년에 걸쳐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비상한다는 학, 천년학을 영화 제목으로 내건 영화 <천년학>은 임 감독의 전편 <서편제>의 두 주인공인 소리꾼 송화(오정해 분)와 고수 동호(조재현 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했다.
이 번 영화 속 정취를 더하는 갈대밭, 매화마을을 배경으로 해 분주하고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잠시 과거를 되돌아보고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던진다. 영화 음악을 맡은 재일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 양방언 감독의 '천년학' '비상' 등 영화 OST와 영화 속 등장인물이 부르는 '춘향가', '적벽가' 등이 한데 어우러져 송화와 동호의 한 맺힌 사랑의 정서를 고조시키며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편에서 영화배우 김규철이 맡았던 고수 동호 역을 <나쁜 남자><로망스><한반도> 등의 연기파 배우 조재현이 맡아 송화를 놓고 어릴적 다툼을 벌였던 용택(류승룡 분)의 선술집을 찾아와 잦은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사랑을 찾아 소리를 찾아 떠났던 자신의 여정을 회고하는 '..했다더라'가 영화의 테마이다. 즉, 사실(正史)보다는 동호가 송화에 관한 이야기(舌話)를 용택과 나누면서 한 여자의 생애와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마치 조각 난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듯 영화는 동호가 어린 시절로부터 점차 8년전, 5년전 그리고 다시 현재와 과거의 예화를 교차시키면서 송화에 대해 점차 애틋해져 가는 연모의 정서를 드러낸다.
남도 소리꾼 유봉(임진택 분)을 아버지로 둔 송화와 동호는 사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송화의 소리에 북 장단을 맞추려고 쫓아다니던 동호는 남도 대가집 연회를 유량하면서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호가 도망가버리자 송화마저 떠날 것을 염려해 그는 한약에 부자를 넣어 송화의 눈을 멀게 해 그녀에게 한을 심어주면서까지 딸에게 득음을 시켜 성공시키려는 소리꾼이다.
동호가 홀아비인 의붓 아버지가 송화를 곁에 두고 아내삼으려 했다는 오해를 할 만도 하게 지독한 소리꾼 아버지를 본 받아 그의 유지를 따르는 송화는 유봉이 죽은 후 정처없이 떠돌다가 그녀 자신도 생애 가장 호사스러웠다는, 소리를 좋아하는 친일파 노인의 첩 자리로 들어 앉는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 - 영화 '천년학'에 삽입되어 극중 송화가 부른 남도민요 흥타령 -
영화 속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 중에 하나는 임종을 앞에 둔 노인이 송화의 소리를 들으며 숨을 거두는데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에서 꽃잎이 눈송이처럼 날리는 장면으로, 오래 전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팝콘 비가 내리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4월 봄 매화가 만발했다는 섬진장 어디론가 날아가 잠시 아련한 매화향에 취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한다.
송화와 동호의 사랑은 멜로 영화 특유의 엇갈림 정서를 근간으로 해서 아버지의 무덤 앞, 소리판 등 서로 다른 여정 가운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리워하지만 서로의 상황이 자존심을 다칠까 우려해 차마 말 못하는 두 남녀를 가로막는 것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남도의 싱그러운 자연 풍경과 애절한 정서를 고조시키는 양방언 감독의 OST가 아닐까.
특히, 동호가 당시 죽음의 길이라 불리우는 중동에 가기 전에 남도 들녘 어디쯤에서 만난 송화의 소리에 맞춰 북채를 대신해 무릎 장단을 맞추는 것과 명창을 따라 고수로 유랑하던 시절 연회에서 눈먼 송화가 한 귀에 동호의 북소리를 알아채는 등 영화에 심어놓은 암시들은 관객들에게 엇갈림을 반복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랄 법도 하다.
송화가 O형이라면 동호의 혈액형이 A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이의 소리 공부방을 지어줄 목적으로 중동으로 떠난 동호가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녀 만을 위한 집을 짓는 것. 돌담 안에 격자 모양의 목조 한옥은 좁은 복도와 문턱을 없앤 마루, 가지런히 정리된 주방 식기 등 생활 공간 하나하나가 시각장애우인 송화를 배려한 섬세한 흔적이 드러난다.
대자연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지어진 이 집에서는 저절로 소리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동호가 태평양극단 시절 배우이자 동호와 아들까지 낳고 살게 된 단심(오승은 분)에게 설명하는 동호의 눈에는 질투가 느껴질 만큼 연인에 대한 사랑이 가득 배어 있다. 다소 놀라운 점은 어디선가 나타난 흰 제복의 청년들로부터 끌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영화 내내 송화를 찾아 헤매던 동호의 여정이 잠시 숨을 돌릴 쯤, 함께 얘기를 나누던 용택은 송화에게 호의를 베풀며 생전에 송화가 명창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봉의 소원이었던 명당 자리에 그의 유골을 앉히는 일을 돕는다. 비록 한 쪽 다리를 절지만 어릴적 동호와 연적 관계였던 그가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전편보다 판소리 분량이 늘어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관객에게 한바탕 웃음을 자아낸다.
이러한 용택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그녀의 고된 여정을 집요하게 추적하다시피 한 동호의 정성에 하늘이 보답을 했을까. 영화는 산수화 속에나 있을 법한 고즈넉한 강가 어느 마을, 어디선가 나타난 두 마리의 학이 공회전을 그리며 힘차게 하늘을 날아 오르는 또 하나의 명장면을 통해 마무리 짓는다.
다만, 영화 <춘향뎐>처럼 극중 판소리가 이야기를 이끌고 있고 <서편제>보다 지나칠 정도로 많이 삽입된 판소리가 이야기 전개를 주목하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칸국제영화제에 출품하려 한다면, 해외 영화 관계자들에게 영화 속 삽입된 판소리의 정서를 어떻게 바로 이해시킬 지도 숙제로 남는다.
임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 떠나는 소리꾼의 여정이 신분상의 천대와 가난 등으로 힘겹지만 헛된 부와 명예를 쫓기보다는 '그 것이 한 낱 꿈이었다'는 걸 깨닫고 천년에 한번 아름다운 울음을 내는 천년학처럼 오랜 시간 기다림 속에 한편의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자신의 100번째 영화를 통해 후배들과 국내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서로 엇갈리는 두 남녀의 여정을 영화팬들과 영화 제작자들과 비유해 FTA 협상으로 인해 현실화 된 국내 영화계의 '스크린쿼터'를 직시하고 일시적인 대중성에 야합하는 영화를 만들기보다 천년에 한번 하늘을 비상하는 학처럼 작품성이 있고 대중과 오랜 호흡으로 가장 '손꼽히는' 영화를 남기라는 거장의 조언으로 해석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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