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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도 함부로 못엎는 아버지 우아한 세계
jimmani 2007-04-02 오후 6:43:14 25285   [23]

생각해보면 영화 속 사람들 중에서 자기 혼자만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라는 생물체가 그렇듯, 영화 속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와 분명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 하나가 가족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멋있는 영웅이고 아무리 비련의 여주인공이라 하더라도, 분명 누군가의 부모일 것이요, 누군가의 자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들이 맺고 있을 가정이라는 현실을 연결시킨다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낭만이 한층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에, 우리는 영화를 통해 그들을 보면서도 주변과는 연결짓지 않은 채 오롯이 그들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우아한 세계>는 이렇게 우리가 영화에 좀처럼 적용시키지 못했던,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현실을 영화에 직접 가져다 놓았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유독 단골로 등장하시는 조폭 형님들도, 아무리 그들이 무게 잔뜩 잡고 의리를 강조하며 멋을 부리고, 살벌한 그쪽 세계에서 영웅마냥 살아남는다고 한들, 그들 역시 누군가의 부모이고 누군가의 자식임은 분명하다. <우아한 세계>는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면서도 당연한 사실을 들여다 놓은 채, 그들에게서 풍기는 낭만의 향기가 아닌 생활의 냄새를 따라간다.

들개파 넘버3로서 청과물 도매업도 맡고 있는 흔히 말해 "조폭" 강인구(송강호). 안그래도 살벌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그이지만 그에게는 그보다 더 살벌한 현실들이 기다리고 있다. 1남 1녀를 둔 가장으로서 그의 위치는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 아들 민철이는 캐나다로 유학을 간 가운데 아내 미령(박지영)은 매일마다 무사귀환하기를 빌어야 하는 남편의 직업이 예전부터 탐탁치 않았던데다 요즘은 아버지가 사람 때리는 일을 한다는 걸 알아버린 딸 희순이(김소은)의 태도도 예전과는 달리 부쩍 싸늘해진 형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홀연히 가정을 떠날 수 있으랴.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인구는 가족들을 피곤하게 부대끼는 삶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우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조직내에서의 위치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현수(오달수)라는 친구놈은 상대편 조직에 있으면서 슬슬 약이나 올리지, 상사인 노 상무(윤제문)는 보스 노 회장(최일화)에게 예쁨받는 인구가 눈엣가시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일상을 헤쳐나가는 인구, 남부럽지 않은 "우아한 세계"를 목표로 나아가려 하지만 현실은 그를 자꾸 모냥빠지게 만들어간다.

이중삼중의 현실을 헤쳐나가야만 하는 조폭 가장 강인구 역의 송강호는 이 영화의 필수영양소다. 우리나라에 연기 잘 하는 남자배우들이 물론 많긴 하지만, 강인구 역은 송강호 이외에 제대로 해낼 배우가 과연 있었을까 싶다. 조폭의 살벌한 삶, 직장인으로서의 고단한 삶, 가장으로서의 애틋한 가족애를 모두 연기해본 적이 있는 배우로서, 송강호는 이 세 가지 면모를 강인구라는 인물 속에 완벽하게 담아낸다. 쇠파이프 들고 돌아다니고 조폭처럼 돌아다니고 어느새 거기에 가장의 고달픈 상처와 푸근한 아버지의 미소가 눈 깜짝할 사이에 들어앉은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강인구라는 인물은 송강호를 위해 태어난 인물이라는 걸 몸소 실감하게 된다. 그만큼 이 영화 속에서 송강호의 연기가 보여주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뿐만 아니라 송강호를 든든히 받쳐주는 조연배우들의 연기 또한 매우 만족스럽다. 이 영화로 스크린 첫 데뷔를 한 아내 미령 역의 박지영은 기센 듯 한편으론 마음이 약한 아내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줘 여전히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늘 대체 착한 편인지 악역인지 분간할 수 없게 하는 독특한 연기톤을 고수해 오던 오달수는 이 영화에서 역시 인구와 절친한 친구지만 상대조직에 있는 현수 역을 맡아 만날 때마다 늘 치고박고 싸우면서도 굳건한 우정을 지켜나가는 인상적인 감초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외 인구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엣가시로 보이는 노 상무를 특유의 포커페이스 연기로 멋지게 소화한 윤제문, 요즘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 <히트>에서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카리스마 잔뜩 있으신 보스 역할을 소화한 최일화 등 조연배우들의 연기까지 틈을 보일 새가 없었다.

조폭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영화는 "조폭영화"라고 우리가 기존에 규정지어놓는 컨셉과는 확연히 다르다. 조폭 영화답지 않게 제목에 "우아한"이 들어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조폭이 주인공인 영화일 뿐이지 조폭영화는 아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 속에 그나마 종종 등장하는 액션신은 멋있기는커녕 갑작스럽게 벌어진 소동마냥 당황스런 웃음을 선사하고, 이런 싸움이 펼쳐지는 와중에 칸노 요코의 품격 있는 듯 통통 튀는 영화음악이 깔린다. 이렇게 영화는 살벌할 것만 같은 조폭의 세계에 우스꽝스러운 소동의 분위기와 거기에 대비되는 탱고 풍의 이국적 영화음악을 덧입힘으로써, 현실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는 블랙코미디스러운 면모를 드러낸다. 실제로 바깥에선 실컷 무게잡고 과묵하던 인구가 집에만 오면 제대로 하는 게 없고, 상대조직이라 살벌하게 싸우기만 할 것 같은 인구와 현수가 아이들처럼 서로 물뿌리고 노는 모습은 영화를 통해 기존에 형성된 조폭 캐릭터에 대한 왜곡된 권위를 해체하는 블랙코미디다운 특성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설적인 묘사는 모두 강인구가 갖고 있는 아버지, 가장으로서의 자화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바닥이 바닥이니만큼, 언제 배에 칼이 들어올지 모르고 언제 자기 세력을 뒤집을지 모르는 살벌한 조직의 삶을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다. 차라리 거기에만 신경쓸 수 있다면 편하게 사는거지, 그에게는 목숨걸고 지켜야 할 가족이라는 이들이 있다. 그가 처음에 조폭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에는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일랑 추호도 없이 그 목숨이 달린 일들을 하는 것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는 거고, 칼 맞을 각오로 여러 작업들을 수행하는 것도 좋은 집 좀 사서 가족들을 한번 우아하게 호강시켜 보려고 하는 것이다. 굳이 조폭 일하면서 칼부림하는 게 아니라도, 그의 삶은 충분히 작두 타는 심정이다. 직업만 좀 접근하기 힘들 뿐이지, 그의 마인드나 생활태도는 여느 가장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의 이 부적절한 직업은 평범하게 살아보려는 그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아내가 무사귀환하길 빌어야 하는 건 그렇다쳐도, 이런 직업의 고됨으로 인해 아내는 점점 질려가고, 이제 막 아빠가 사람 때리는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된 딸은 부쩍 아빠를 벌레 보듯 한다. 기껏 생각한다고 딸 담임선생님한테 촌지라고 준다는 것이 룸싸롱 이용권이라는 사실에 가족들은 쪽팔려서 아주 치를 떤다. 물론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로 인한 위험부담도 있고 그로 인해 배인 난감한 습관들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위하는 마음은 세상 어느 아버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건만, 바깥에서 실컷 위험천만하게 일하고 돌아온 인구는 집안에선 싸늘한 대접이 익숙하다. 어느덧 그는 집안에서 가족들을 보듬어주는 아버지요 가장이라기보다, 그저 무사히 살아돌아와 돈이나 제때제때 벌어다주면 그만인 역할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이렇게 영화는 조폭이란 소재를 그저 희극화시키거나 과장된 무게로 포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니 이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조폭으로서의 삶을 곧바로 가장으로서의 삶으로 연결시킨다. 인구의 직업이 조폭인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강력한 비유법이다. 사실 인구가 아니라도, 어느 누가 널찍한 저택에서 호강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어느 아버지가 가족들을 아끼지 않겠는가.(물론 그렇지 않은 소수의 아버지들이 있긴 하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 조폭이라는 극단적인 직업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아버지들은 바깥에서 살벌한 사회 생활의 칼날에 베일 듯 말 듯 곡예를 펼치지만집안에 들어오면 참으로 왜소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건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많은 아버지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우아한 세계> 속에서 조폭 강인구의 모습을 통해 보다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조폭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흔히 연상되는 무게감이나 남성미같은 것과 대비되면서 말이다. 마흔을 넘긴 인구는 이제 조폭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는 멋이나 남성미같은 건 없다. 몸이 부쩍 노쇠해져 괜히 몸싸움에 말려들었다가는 험한 꼴 당하기 일쑤고, 어떻게든 집에 돈을 갖다줄려고 참 못할 짓들도 많이 감당해야 한다.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조폭 세계의 단면도, 고단함과 위태로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의 삶과 일맥상통한다. 이렇게 모양 좀 살길 원했던 삶 속에서 갈수록 모냥빠져만 가는 인구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엄한 꼴을 많이 봐야 하는,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대 아버지들의 아이러니한 초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연애의 목적>을 통해 뻔한 장르영화를 만드는 듯 싶더니 상식을 한 움큼 비틀었던 한재림 감독은 이번 <우아한 세계>에서도 특유의 재능을 다시 한번 뽐냈다. 기존의 조폭 영화에선 느낄 수 없었던 코믹한 비애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그 속에 가족애를 심어놓았다. 그렇다고 영화가 가족간의 화해와 같은 닭살돋는 결말이나, 눈물 잔뜩 짜내게 하는 최루성 결말로 가는 것도 아니다. 현실은 우리의 생각만큼 우아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가장으로서 인구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송강호의 그야말로 "그가 아니면 안될" 연기로 화룡점정의 경지에 이른다. 제아무리 엄하고 무섭게 보이는 조폭이라도 가장이라는 직함 앞에서는 다같이 힘들고 피곤한 삶이다. 다른 영화 속 흔한 조폭이라면 슬픔과 화가 치밀어 뭘 엎어도 거기서 그냥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장은 그렇지 않다. 홧김에 라면 냄비를 엎어도, 가장이라면 다시 정신차리고 가족들을 챙겨나가야 하기에 또 금방 모냥빠지게 그 쏟아진 라면들을 다 치워야 한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그러기에 많은 걸 감당해야 하고, 많은 걸 참아내야 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우아한 세계> 안에 녹아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도, 다르게 다가가면 이렇게 또 새삼스럽게 가슴을 데우는 법이다.


(총 2명 참여)
kyikyiyi
보고잡당   
2007-04-17 20:24
time54
아버지는 힘들다   
2007-04-16 11:37
ogammago
내 이사람이럴줄알았서 글쓴당신!! 딱보니 영화를좋아하는분같은대

이런글은 한국영화를 못보게하는거같습니다 한국영화특성상

한번보면 별감흠않오는 영화가 태반인대 이런 글을올리면

영화보러갈사람도 이글보고 내용다 알어.. 않봐도되..

이런식으로나오는대.. 참 개념이없으십니다~   
2007-04-13 15:13
fdsfd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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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2 15:04
egg2
잘 읽었어요.   
2007-04-11 02:11
time54
우리시대의 가장들   
2007-04-10 04:42
puha11
^^;; 영화 안봐도 되겠다...   
2007-04-09 21:01
espmoon
줄거리를 다알아버리다니 ㅡ.ㅡ;;   
2007-04-09 14:14
ycoin2
여기 글쓴님 어디서 퍼 오신건지 직접 쓰신지는 모르겟는데

완전 스포일러네요

글을 잘쓰든 말든 님은 영화 안본사람들한테 줄거리를 다 이야기 해서 멀 어쩌자는 이야긴지 ..

글 제목에다가 스포라고 쓰시던지 거참 할말 없수다   
2007-04-09 13:49
joynwe
...그냥 내용만 보고 영화는 안봐도 될 정도로 자세히 설명...이런...   
2007-04-09 10:30
jswlove1020
보고 싶네요 ^^   
2007-04-07 23:55
bsunnyb
인생의 양면성...   
2007-04-07 11:13
time54
가슴이 짠하네요   
2007-04-07 00:36
ogammago
님 이거 리뷰에요? 아예 줄거리를 다 말하지그래요?   
2007-04-05 23:27
francesca22
음 감동적일거 같네여   
2007-04-03 10:43
1


우아한 세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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