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31 광명CGV 21:10, 민선이
강형사의 손이 허공에 뜬 채 멈칫한다. 화면엔 강형사의 까만 키보드만 보인다.
나는 생각한다. 형사의 키보드는 무엇을 기록할까.
형사의 키보드- 나는 그걸 생각한다.
형사의 키보드는 마땅히 인간이 저지른 죄를 기록한다.
그렇구나.
이 영화는 키보드다.
인간의 죄의식을 자비 없이 기록하는 시커먼 키보드다(아- 키보드는 원래 무생물이며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물체이므로 ‘자비’란 개념은 어울리지 않는다. 컴퓨터 자판은 인간처럼 끊임없이 사유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면에서 자판은 편안하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것밖에 할 말이 없다. 이렇게나 산만하고 유기성 없는 시퀀스의 연결이라니. 옛날로 치자면 이야기꾼이 이야기의 흐름을 망각한 채 지 멋대로 이 얘기 했다 저 얘기 했다해서 혼비백산 된 이야기를 듣느라 머리가 정신 사나워져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형국이다. 그러니까 이야기꾼의 이야기실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드러낸 영화였다. 이 영화의 평점이 높다면 그건 아마도 피눈물 날 것 같은 박용우의 고통스러운 연기와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남궁민에게만 준 점수일 것이다.
최근에 본 <넘버23>도 그렇고 <뷰티풀 선데이>도 그렇고 나는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인간은 나약한 존재인가 강한 존재인가를 하염없이 생각하고 있다.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걸음을 걸으며.
↗ 요건...야수 패러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