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운세, 징크스...그리고 숫자!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이 믿고, 자신에게 특별하다고 여기는 그런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신뢰할만하고 정확한 사실이던지, 혹은 특정 누군가에게만 의미있는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것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어떤 주변의 환경이나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실에 대해서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기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영화감상에 대한 것조차도 타인에게는 감정의 최소한 그 이상의 영향이 될 수 있음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다소 엉뚱한 생각을 보고난 후에는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해주는 영화가 바로 <넘버 23>이다. “23”이라는 단순한 숫자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엉뚱한 의미들을 나름대로 타당하게 짜맞추려 하는 가상 시니리오의 영화들을 몇편 봐왔지만 조엘 슈마허 감독의 <넘버 23>은 조금 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숫자 23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본 뒤에도 내내 후유증을 제공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내내 등장하는 모든 숫자(심지어 얼핏 지나가는 시간이나 의미없는 숫자들까지도..)를 더하고, 나누면서 숫자 23과 연관지으려는 자신의 편집증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물보호소 직원인 “월터”는 2월 3일, 자신의 생일날 아내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 받는다. 그 책 제목은 영화제목과도 같은 [The Number 23]이다. 단순하고 한편으로는 유치해 보이는 이 제목의 책을 선물받고서 월터의 일상은 점차 책 속의 주인공 “핑거링”을 닮아 가기 시작한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숫자 23을 관객들에게 하나둘씩 각인 시켜준다. 주인공의 생일, 책 제목으로 시작해서 중간중간마다 알려주는 주인공 월터와 숫자 23에 관련된 여러 정보들은 단 한시도 관객들에게 “23”이라는 숫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핑거링”과 그에게 얽힌 숫자 23의 저주는 현실 속 월터와 맞물려 가며 영화의 새로운 축을 형성하게 된다. 영화 <넘버 23>은 지나치리만큼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숫자 23과 연관지으며 한편으로는 오히려 스릴러적인 긴장감마저 반감시키기도 한다. 저렇게 저렇게해서 23이라는 숫자가 월터와 관계가 있구나처럼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과 호기심을 이끌어 내가며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유도하기 보다는 숫자 23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로 관객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부분들 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어쩌면 관객들에게 다소 억지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한것이다.
아내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책 [The Number 23]의 첫장을 넘긴 월터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경고문구를 아무 생각없이 흘려 넘긴채 가볍게 한 챕터씩 읽어 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핑거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책 속의 주인공은 마치 자서전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이야기 해나간다. 자신의 가족사와 자신이 만나 왔던 몇 명의 여자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 온 숫자 23의 저주와 그로 인해 점차 엉켜가는 삶까지...그렇게 책 [The Number 23]은 “핑거링”이라는 한 남자의 자서전이요, 숫자 23으로 인해 뒤엉켜 버린 인간에 대한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가며 점점 자신과 책 속의 주인공을 동일시하게 되는 현실 속 월터까지 한 줄로 엮여져 있다. 이미 <폰 부스>를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조여오는 긴장감을 제공했던 조엘 슈마허 감독은 <넘버 23>에서는 그보다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그보다 더 짜임새있는 스토리 전개로 영화에 집중하도록 해준다. 앞서 말했듯이 관객들은 숫자 23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책 속의 핑거링과 주인공 월터의 모습을 교차 시켜 가면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자신도 숫자 23에 대한 저주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월터처럼 관객들 역시 그런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영화 [넘버 23]은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가 그렇듯이 관객들이 보는내내 긴장하며 스토리를 짜맞춰 가도록 하는 재미를 보여주려 애를 쓴다. 하지만 아쉽게도 군데군데 보여지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들과 군더더기처럼 따라다니는 숫자들에 대한 집착으로 하여금 영화 [넘버 23]이 보여줄 수 있었던 소재와 스토리의 신선한 재미들을 반감 시켜버린듯 하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캐릭터들과 마치 영화 [나비효과]를 연상케 하는 편집효과로써 시각적인 효과까지 살려 주었지만 여러 사건과 요소들을 작위적으로 연관시키려하는 의도 때문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거듭되는 반전의 후반부가 놀랍기 보다는 한가지 한가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는 후련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또한 여느 스릴러물이 보여주었던 충격적이고 칙칙한 결말보다는 오히려 바람직하고 정직한 결말이기에 영화를 보는내내 산만했던 관객들에겐 오히려 깔끔하게 와닿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관객이든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서 자신만의 기준이 있겠지만 아마도 영화 [넘버 23]은 짐 캐리라는 배우 이름 하나에 큰 비중을 두고 선택한 관객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짐 캐리라는 배우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선택의 여지가 있는 그런 배우인것이다. 이젠 “코미디 배우”라는 한정적인 수식어가 더 이상 필요없는 배우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트루먼 쇼]에서 항상 밝고 명랑하지만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면서 점차 진지한 고뇌의 모습을 보여준 연기나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아웃사이더적 이면서도 사랑에 대해서는 너무도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 연기까지 짐 캐리에게는 진지한 모습 속에서도 절대 냉소적이거나 딱딱하지 않은 그런 인간적이고 사람향기 나는 연기의 힘이 있다. 그리고 이번 영화 [넘버 23]은 그러한 짐 캐리의 색다른 연기변신을 볼 수 있기에 그것 하나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럽다. 기존의 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극중 “핑거링”이란 캐릭터는 날카롭고 차가운 모습의 욍양에서부터 짐 캐리의 변신이 느껴진다. 현실 속 주인공인 “월터”와 책 속의 주인공인 “핑거링” 형사는 짐 캐리의 1인 2역 연기로써 각각 개성있게 표현되었다. 특히, 숫자 23에 대한 저주로 자신의 삶을 점점 엉키게 만들어가는 핑거링 형사의 날카로운 이미지는 영화 [넘버 23]을 통해 짐 캐리라는 배우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하게끔 해주기도 한다. 짐 캐리이기에 가능했고, 짐 캐리여서 [넘버 23]의 재미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넘버 23]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영화 속에서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며 영화를 살려준 짐 캐리이다. 다소 억지스럽게 진행되는 스토리와 군더더기처럼 지나치게 따라다니는 숫자 23에 대한 의미부여까지 살짝 가려준 것이 바로 짐 캐리의 변신이었고, 짐 캐리가 보여준 연기의 힘이었다. 자칫 스릴러라는 소재에 흥미를 느꼈거나 숫자 23과 관련된 저주 혹은 미스테리라는 소재에 혹한 관객이라면 어느 정도의 흥미거리는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짐 캐리라는 배우가 아니었다면 힘들었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영화 [넘버 23]은 짐 캐리에게 모든 것을 기댄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것이든 지나친 애착을 넘어서 편집증에 이르게 되면 좋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짐 캐리”! 이 배우에게만큼은 영화 속 핑거링 형사가 보여준 숫자 23에 대한 편집증처럼 애착을 가질만한 그런 배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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