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을 앓고 있는 소녀의 얘기를 다룬 ‘태양의 노래’는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모았던 작품인데 불치병이란 진부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는 다는 것이 눈길을 끌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큰 기대를 걸지 않고 맘 편히 보았다. 그리 유명한 배우나 감독이 만든 영화가 아니라서인지 큰 무게감이 없다는 것을 예감해서였을까.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담담히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영화는 아예 처음부터 카오루의 병을 드러내고 시작한다. 보통 불치병을 다룬 영화나 소설에서 그런 사실을 맨 마지막에 공개하여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짜내게 만드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렇게 오픈해놓고 시작하는 분위기는 영화 내내 이어지는데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카오루의 가족들과 친구 미사키, 그리고 남자친구 코지의 태도였다. 카오루의 주위에서 그녀의 생활을 함께 해주는 주변 인물들로서 그들의 태도에는 어떤 동정이나 안타까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영화에 나오는 겉모습에서는 그저 카오루의 상태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카오루가 그런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서 시작한 행동들일지 몰라도 자신의 일부나 다름없는 가족들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느낀 것은 신선했다. 작은 부분일지 몰라도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벌써부터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영화의 중간까지는 카오루와 코지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코지의 모습을 집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카오루가 직접 그와 마주치고 서서히 만남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카오루의 병이 드러나 있었지만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는다. 어딜 봐도 그냥 평범한 젊은이들의 풋사랑으로 보일만큼 순수해보였고 투명하고 맑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병을 개의치 않고 그것에 맞추어 생활 패턴을 정해 생활하는 카오루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한밤중에도 거리에 나가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생기 넘쳐 보였고 그 노래도 듣기 좋았다.
그렇게 청춘들의 만남을 다루고 있던 영화는 그들의 만남이 깊어가는 순간 카오루의 병을 수면위로 드러내며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코지와의 만남에 정신을 빼놓고 시간을 보내던 카오루가 아침이 올 때까지 밖에 있던 것이 문제가 되는데 이것이 코지와의 갈등을 자아내어 안타까운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녀의 병을 알고 있지 못했던 코지의 입장에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 뒤늦게 그것을 알고 난 후 그가 보여주는 반응은 영화의 결말을 짐작하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다. 자칫하면 그녀와의 갈등을 이어나가며 슬프게 만들거나 깨끗이 헤어질 수도 있는 입장이었지만 그는 생각 끝에 다른 인물들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녀의 병을 인정하고 전과 다르지 않게 그녀를 대하는 것이다. 그녀가 정확히 어떤 상태이고 얼마나 위험한지는 둘째로 제쳐놓고 그저 담담히 전과 같이 그녀와 만남을 이어가는데 그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카오루의 아버지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자신의 딸을 건강하게 지키고 싶겠지만 그녀의 인생에 끼어들려 하지 않고 그저 지켜주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코지도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개였고 그것을 카오루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의 병에 관해서도 그렇듯 코지와의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특별히 심각한 분위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시종일관 가벼운 터치 정도로 영화를 그려내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런 분위기 덕분에 카오루의 병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힘들고 그 때문에 마지막에야 슬픔이 밀려오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무겁게 다루는 이런 주제를 청춘물에 어울리게 가볍게 그려낸 것은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상당히 편안하게 만든다. 그런 편안함 안에서 울려 퍼지는 카오루의 노랫소리가 유난히 더 부각되는 것은 계산된 것일까.
이 영화의 두 번째 특징은 음악이다. 정확히 말하면 카오루의 노래가 되겠지만 은근히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감상 후에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에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의 분위기가 큰 몫을 차지하지만 직접 노래를 만들고 불렀던 배우 유이의 역할도 적지 않다. 어릴 때부터 싱어송 라이터로 활동했다는 유이의 인지도 상승을 위한 영화로 비꼬아질 정도로 그녀의 모습은 유난히 빛난다. 특히 자리를 깔고 앉아 기타를 들고 노래할 때의 모습이 그러한데 그 모습만은 연기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빛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의 노래 실력도 고음을 넘나드는 가창력 보다는 편안하고 맛깔나게 부르는 스타일이어서 역할에도 무척 어울렸다. 과연 아마네 카오루 역에 적합한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쓰러져 병이 악화되는 부분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뻔하디 뻔한 내용 전개이기 때문에. 왜 꼭 가장 행복해야할 순간에 그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묻고 싶지만 불치병을 안고 있는 작품의 특성상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또 한 번 그녀를 바라보는 담담한 태도가 일관성 있게 그려진다. 그녀의 생사를 눈앞에 두고도 특별히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장면은 겉에 드러나지 않는다. 딱 한 번 카오루의 아버지가 의사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질문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동안 참고 참았던 것을 겨우 털어놓는 느낌이라 잠깐이어도 강한 슬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의 병에 관해 의문을 갖거나 깊이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코지의 모습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그저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옳다. 그런 시선은 어쩌면 관객이 그들을 보는 시선과 같기에 공감이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눈물겨운 신파의 내용을 갖고 있지만 의외로 쉽고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다. 과연 사람이 갖고 있는 장애를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고 인정할 줄 아는 일본에서 만든 영화다웠다. 굳이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선 언제쯤 이런 시선을 갖고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인 부분에선 결국 신파로 흘러가버리지만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맘에 들었던 영화. 그리고 반복되지만 인상적인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고 빠져들게 하고 있다. 신파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담담한 시선이 인상적인 영화 ‘태양의 노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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