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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 인생을 바꿨다"(스포 有) 타인의 삶
tadzio 2007-03-18 오후 10:45:19 1681   [6]

난생처음으로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본 <타인의 삶>에 대해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타인, 정확히는 ‘인간’에 의한 변화와 휴머니즘을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배경에 outstanding하게 녹여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내가 관심 있는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예술가와 그 사회적 임무 혹은 위치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는 비밀경찰인 비즐러를 중심으로 동독의 통제된 국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비밀경찰의 세계와 자유를 상징하는 연극계(예술계)를 대조적으로 드러낸다. 극작가 드레이만과 여배우 크리스타를 통해 영화는 동독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 자유를 지향하는 창작활동과 지배이념의 통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다룬다. 반면 비밀경찰 쪽의 세계에서는 단순히 이념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 그 실체 속의 모순, 파워 게임, 그리고 개인적인 욕구 때문에 뒤틀리는 동독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영화의 런닝 타임이 뒤로 흐를수록 이들은 각자의 신념을 위해, 혹은 권력을 위해 선택을 하나하나 해나간다. 그리고 그 중간에 비즐러가 있다.

 

 

어떻게 보면 비즐러는 스토리의 구조상 대사도 그다지 많지 않고, Peeping Tom으로서 존재하기에 비중이 적어보이지만, 철저하게 이 영화는 비즐러 중심임을 갈수록 알 수 있다. 비즐러의 비밀경찰 상사나, 문화부 장관, 극작가 드레이만과 크리스타 커플이 일파만파 커져가는 사건들 속에서 동독의 역사를 매끄럽지만 가슴 아프게 비출 동안 비즐러는 인간의 변화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보여준다. 영화 초반, 심문 대상자를 잠도 안 재울 정도로 냉혹하고 국가의 시스템에 철저하게 복종하던 비즐러에겐 언제나 서슬퍼런 인상이 있었다. 점퍼의 지퍼는 꼭 목 바로 아래까지 채웠고, 집안은 잿빛이며 단정했다. 의심이 한가득 담겨있는 눈초리와 자신감이 느껴지는 어깨가 있었다. 그러나 드레이만과 크리스타의 집을 도청하며 그의 변화는 시작된다. 피아노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브레히트 시를 읽으며 감동하게 된다. 비밀경찰을 모독하는 아이를 용서하고, 결정적으로 드레이만의 반동적인 언행을 조금씩조금씩 숨겨주게 된다. 영화 처음과 중후반에 이르러서 나오는 두 번의 심문 장면은 그가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흠모하게 된 여배우 크리스타에게 비밀경찰로서의 눈빛과 팬으로서의 눈빛을 굳게 지키며 ‘관객이 기다리는 무대로 돌아가라’고 말하게 된 그에게는 이제 인간의 냄새가 났다. 심문 방을 박차고 나가고 싶어 하는 의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즐러가 숨겨주기 시작한 행동들이 윗분들의 심기를 건드리기 시작하고 비즐러는 자신의 커리어까지 걸고 드레이만과 크리스타를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비밀경찰대학의 당당한 교수였던 그가, 우편국에서 편지조사나 20년 동안 하게 될 거란 열 받은 자신의 상사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은 것은 그가 실제로 그들을 숨겨주기도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그의 담담한 모습, 하지만 독일이 통일되었다는 뉴스에도 그저 조용히 방을 나가기만 하는 그의 모습에서 냉철한 비밀경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 극작가 드레이만이 자신에게 바치는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미묘한 미소는 그의 변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비즐러를 제외한 캐릭터는 1980년대 동독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상당히 상징적인 부분이 많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화가 흐를수록 가장 비인간적으로 보이던 비즐러가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 보이게 된다. 

 

 

그러나 비즐러는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지 않는데 그것이 또 무척 마음에 든다(이 섬세한 변화 과정에서 울리쉬 뮤흐의 연기가 정말 탁월하다). 그가 인간다움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았다고 해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수가 많아지거나 사교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국가에 대한 신념이나 그런 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물론 그런 모습은 비춰지지도 않는다. 영화 후반부, 워낙 사건의 전개를 탄탄하게 연출해서인지 영화의 내러티브에 따라가게 되지만 마지막 비즐러의 미소에서 알아차리고 말았다. 결국 그는 변화했다. 치명적으로. 그러나 그를 변화시킨 것은 결국 다른 이의 삶이었다. 딱 거기까지가 그들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이토록 제목에 충실한 영화가 있을까? 동독 사회의 변화를 상대적으로 빠르고 자세하게 일러주던 내러티브의 종착점에 제목을 다시 한번 리마인드 시켜주다니 말이다.

 

 

영화를 막 다 봤을 무렵에는 음악이 너무나 멋져서 크레딧이 끝나도록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생각할수록 그 수많은 수상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었다. 극작가 드레이만을 보다 설득력 있는 예술가로 만들고자 했다면 그의 작품에 대해 많은 장면을 할애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라는 작품 속에 또 다른 작가의 세계, 드레이만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의 예술가로서의 갈등도 더 잘 드러나고, 예술의 파장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을 테고, 한번에 여러 텍스트를 보며 더 큰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 법한데 말이다. 그의 연극은 초반과 마지막 즈음에 합쳐도 10분도 안될 만큼 밖에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다. 마지막이 조금 예상가능하기도 했고. 하지만 뭐 이미 런닝 타임이 2시간 15분 정도였기에 어쩔 수 없겠다 싶다. 변화가 키 워드인 만큼 80년대 중반에서 독일이 통일 된 후까지 다루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신기한 점은 모노톤이 주를 이루던 미장센이었건만, 그다지 답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음증적인 느낌을 나타내기도 하다가, 웅장하고 비극적인,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이 그럴 틈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강추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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