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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kysom 2007-03-14 오전 1:15:06 1440   [4]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좀머씨 이야기>로 유명한 <파트릭 쥐스킨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있다. 하지만 원체 소설을 접할 기회가 없는지라 오직 영화로서만 평가해야할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보고난 지금, 상황은 그다지 명쾌하지 않다. 과연 소설을 논외로 하고 오직 영화에 대해서만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 가능한 건지, 그리고 그게 완전한 것인지? 도 솔직히 지금으로선 의문이다.

 

 

영화는 제목에서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조향사(Perfumer)인 <쟝 밥티스트 그루누이>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또는 매혹적인- 향수를 만들기 위한 한 조향사의 역경과 분투에 대한 그렇고 그런 성공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향(취)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한 괴물적인 후각의 소유자가 그 향을 보존하는 기법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치명적 향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저지르는 끔찍한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정보에서 보듯이 스릴러물도 아니다. 스릴러적 요소(기법)을 선보이고는 있지만 영화는 전적으로 그것만으로 해석하기는 힘든 측면과 전개방식을 가진다.

 

 

영화는 마치 실재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듯한 전개방식을 취하는데 촛점은 철저하게 주인공 <쟝 밥티스트 그루누이>에 맞춰져있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인물과 그 인물을 둘러싼 사건 및 특히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오버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과장된듯하게 보여진다. 그래서 차라리 영화는 조향사 <쟝 밥티스트>에 대한 판타지라고 느껴지게끔 서술 및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개가 아닌 다음에야-설사 개라고 하더라도- 무슨 전자 레이다처럼 수십킬로미터씩 떨어져있는 사물의 움직임과 그 방향까지도 명백하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영화속에서 그루누이는 그러한 인물로 설정되고 그려진다. 그리고 향수의 완성까지 추적하는 인물의 궤적속에서 이러한 설정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결국 영화는 향수와 그 조향사에 대한 어떤 리얼리즘적 추구를 목적으로 하고자하는 것은 아님을 여기서 깨달을 수 있다.

 

 

영화는 초반부에 감옥에 갇혀 어둠속에서 코만 보이면서(?) 깊은 숨을 들이쉬며 냄새를 맡는 그루누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으로 그는 사람들이 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친듯이 분노한 군중들 앞에서 그의 사형 판결문이 읽혀지고 일촉즉발의 긴장감은 그 도를 높혀간다. 마치 다음 장면부터는 그것이 비록 과거에 대한 회고담으로 전개될 지라도 그의 무차별하고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행각을 보여주기 시작할 것만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기대를 깨고 그의 출생부터 연대기적 삶을 차례대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초반의 격정 3분을 지나고, 영화는 순식간에 반전된다. 마치 이후의 영화전개에 있어서 모든 것을 암시하는 듯한 초반부는 실은 종반부의 파격과 대단원에 대한 미끼적 복선장치였던 셈이다.

 

 

영화는 미천한 신분에 고아이기도 한 주인공 그루누이의 정체성과 자존감 회복이라는 또 한축을 가지고 그의 인물설정과 행태에 대한 묘사를 보여주는데 바로 이 축이 이후에 그의 살인행위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적 특별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세상이 알아주는 방식으로 조향사의 길을 원했고 그 길로 정진한다.

 

단지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위한 역경과 고충을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해서 한 인물의 연대기적 서술이지만 그것의 성공담을 다루고있는 것은 아니기때문이다. 즉 최고의 향수는 그의 삶의 행보에 있어서 매개체일뿐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그의 삶의 존재감 내지는 목표와 그를 둘러싼 환경 및 인물을 끊임없이 충돌시키는데 첫번째가 바로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그를 시장좌판 밑에 싸질러놓고(?) 유기한다. 하지만 울음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의 존재를 은폐하고자 했던 어머니는 죽음을 당한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를 13살의 나이에 4년이상씩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가죽 공장에 팔아넘기고 푼돈을 챙긴 원장은 역시 죽음을 당한다. 성년이 될때까지 그를 죽도로 부려먹으며 그루누이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목표를 깨닫게 해준 공장 주인 그리말도 역시 죽음을 당한다. 그에게 조향사일을 가르치며 천부적인 재능을 이용하여 많은 돈을 벌어들인 퇴물 <주세페 발디니>도 그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무시했기에 결국 죽고 만다.

 

영화는 그가 향과 향수에서 지존의 지위에 이를 때까지 그의 존재감과 충돌한 모든 인물에 대한 냉혹한 결과를 어떻게 보면 덤덤하게 보여주고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그가 여인의 체취로 완성하고자 하는 궁극의 향수를 위해 연이어 벌이게 되는 살인행각은 일견 가치중립적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루누이가 향수를 완성할 때까지 벌이는 살인행각이 관객들에게 나쁜(?) 것으로 비춰지도록 하지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향수가 완성될 때까지 이어지는 노력(?)의 일환처럼 보여지고있는 것이다. 도시의 모든 주민들이 공황상태에 빠지고 증오와 공포가 횡행하지만 그루누이의 행보는 여기서 한발을 뺀듯하다. 즉 결말부의 대단원에 이를 때까지 그와 법제도는 정면으로 충돌하지않는다. 단지 같이 갈 뿐이다.

 

 

이와 같은 시도가 결말부의 극적인 파국에 대한 인식적 기초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가 관객에게 내보이는 모든 영상들이 실은 어떤 형태로든 가치를 담고있다고 할때 그처럼 중립적으로 보이는 것도 실은 다른 의미의 가치를 담지하고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이 때로는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는 선악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대신에 일견 모순되게 보일 수 있는 극중 인물의 극한적 분투와 관객이 느끼는 가치적 불편함을 정면으로 충돌시키면서 후반부의 대반전을 준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맞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본다.

 

 

13명 처자의 목숨으로 완성된 궁극의 향수는 그의 무존재감과 대척점에 서있다. 자기향취가 없는 무존재성의 인물로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각인시키고 싶어서 만들어낸 향수는 그 값을 해준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럽기조차 한 형장에 모여든 전체 군중의 집단 사랑(?)의 장면은 비천한 신분의 아무것도 아닌 그의 자존감을 세우기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을 불사(?)하는 극한의 충돌끝에 다른 사람의 존재감(바로 향취)을 외피로 뒤집어쓰고 고결한 존재처럼 추앙과 존경을 그 형장에서 느껴보지만-나레이션에서 말하듯이 세계도 지배할 수 있지만- 그것이 원초적 무존재성의 박탈감과 상처를 치유해주지는 못하기에 그는 최초의 살인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결말부 대단원에 이르러서 더 이상 살인자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살인이 끝나버린 뒤안길에는 아무도 기억하는 이 없는 탄생의 장소에 선 무존재의 고독감만이 있을 뿐이다. 그가 베푼-실은 향수가 베푼- 마지막 사랑에 결국 그는 본원적인 자기 의미로 되돌아갔다. 이제 그 자리에는 그가 원했던 높은 자존감만이 남아있는가?


(총 0명 참여)
die469
님의 글을 읽으니까 소설하고 내용면에서 정말 똑같은것 같아요 ㅋ
더더 기대되는걸요 ㅋ 정말 궁금하다 ㅋ   
2007-03-1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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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2006, Perfume : The Story of a Murd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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