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성이 거세된 순수한 개인사????
단적으로 역사성이 거세된 순수한 개인사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도 가능하지 않은데, 심지어 프랑스 혁명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누구인가? 루이 16세의 부인으로 굶주린 민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지'라고 얘기했다는 일화(영화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소개된다)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치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결국 민중들에게 참수형을 당함으로서 삶을 비극으로 마무리지은 비운의 왕비다.
영화는 어린 앙투아네트(커스틴 던스트)가 기지개를 펴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이 장면은 몇 차례 반복된다.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듯이)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 딸로 프랑스 황태자와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프랑스로 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후에 루이16세가 될 황태자는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사냥에만 몰두한다. 그런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어머니는 조국과 자신을 위해 빨리 아기를 가져야 한다며 재촉하고,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서는 그녀를 오스트리아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 와중에 황태자의 동생이 먼저 아들을 낳게 되면서 황태자비라는 자리마저 위태롭게 되고..
이런 환경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선택한 건 베르사이유의 화려함을 있는 그대로 만끾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 화려한 옷과 구두에 파묻힌채 아름다운(?) 음식과 술로 이어지는 파티, 그리고 파티.. 마치 현대의 패리스 힐튼을 보는 듯하다. 심지어 영화의 배경음악도 현대적인 Rock을 사용함으로서 정말 타락해버린 현대적 스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영화는 철저하게 당시 사회와 역사를 배제하고 있다. 아주 가끔 대화를 통해 살짝 보여주고는 있지만, 체면치레에 그친다. 마치 마리 앙투아네트는 애당초 사회, 정치, 역사.. 그런 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러다보니 마지막 성난 민중들이 궁을 에워싸는 장면은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정서를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삶이 애처롭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는 커스틴 던스트의 매력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소피아 코폴라가 원한 방향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로 그랬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몰랐고, 그저 자신이 향유할 수 있는 화려함을 향유했을 뿐이라고....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그래서 그녀가 져야할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민중이 굶주려 죽어나가는 사회에서 몰랐다는 건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아닌 어쩌면 가장 큰 죄일 것이다.(특히나 군주제 국가에서 왕비라는 직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서 사회, 역사를 배제시키다 보니, 영화는 시종일관 특별한 사건 없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거수 일투족을 사실 그대로 다루고 있다. 너무 사실적으로. 그래서 너무 지루하다. 베르사이유가 주는 화려함마저 없었다면 일찌감치 관람을 포기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한 개인이 아침에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일상사.. 그것도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사는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그것도 스스로 주인공이 아닌 관람자가 되어 지켜보는데....
※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몇 년 전 베르사이유 궁을 구경할 때 왕과 왕비 침실 앞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걸 보고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하게 현대에 들어와 설치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그 당시에도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용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듯 싶다. 관람용... 두번 째로 왕비 침실 뒤에 작은 쪽문이 있었는데, 왕비가 편히 쉬고 싶거나 외간 남자를 끌어들이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닫혀 있어서 실제 구경은 하지 못했다. 영화에서 처음 부분에 마리 앙트와네트가 자기 방을 살펴보면서 그 쪽문을 열고서 안을 보는 장면이 있다. 생각보다 넓었다. 마지막에는 루이16세, 마리 앙트와네트, 그리고 아이들이 민중을 피해 숨어 있는 장소로 다시 한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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