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에도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 ‘바벨’을 보았다.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영화는 지루한 편이었다. 감상할 때 개인적인 몸 컨디션이 나빠서 영화에 몰입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고 영화 자체가 긴 분량을 느린 진행으로 보여줘서 그렇기도 했다.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 자체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부 보여주고 있는, 4개의 분리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소통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였다.
첫 번째 이야기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된 발단이 되는 총에 의한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모로코에서 목축업을 하는 집안의 두 아들이 염소 떼들을 자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가 라이플총을 구입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 총을 이용해 염소들을 지키던 아이들은 심심한 틈을 이용해 버스 맞추기 내기를 하다가 실제로 버스를 맞춰버린다. 그 일로 인해 그들이 쏜 총탄은 결과적으로 다시 그들에게 돌아오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비춰준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될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총을 함부로 쏘기까지의 과정이다. 내용을 보면 그저 아이들의 장난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전에 동생 유세프와 형 아흐메드가 갖고 있는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세프는 어린 나이에도 놀지 못하고 가족의 일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이 싫고, 아흐메드는 동생이 누나의 몸을 몰래 훔쳐본다는 사실이 싫다. 그래서 그들 간에 소통이 단절되어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자신들의 의도하지 않았던 일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결국 형의 죽음을 목격하고 문제의 원인이 된 총을 부수는 행동을 통해 유세프가 혼자만의 길이 아닌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 손을 들고 형을 살려달라며 간절히 외치면서.
두 번째 이야기는 유세프가 쏜 총을 맞은 미국인 부부의 이야기다. 서로 간의 이해가 힘들어진 갈등 탓에 대화가 단절되고 그 틈을 타 모로코로 여행을 온 미국인 부부 수잔과 리차드. 버스를 타고 모로코 어느 지방을 이동하던 중, 수잔이 갑작스럽게 어디서 날아온 줄도 모르는 총탄을 맞게 되고 그런 그녀를 치료하려 리차드가 온갖 노력을 다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런 와중에 수잔을 모로코의 한 마을로 잠시 옮기는데, 그 곳에 있는 모두가 그들에게 잘 해주려하지만 리차드와 수잔은 그런 이방인들을 쉽게 믿지 못한다. 미국 대사관에 먼저 연락하여 도움을 청한 리차드는 그 때문에 엄청난 국가적 분쟁으로 일이 커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하고, 국제적인 문제로 발전한 것 때문에 정작 필요한 구급차조차 오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좌절하고 만다. 시간이 지나 결국 그들에게 헬기가 오게 되고 수잔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된다. 이 이야기에선 리차드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믿지 못하고 거칠게 대응하던 리차드가 서서히 모로코 인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장면과 극한 상황에서의 대화를 통해 수잔과 문제를 해결해내는 장면이 그렇다. 병원에서 가족들과 전화하는 리차드가 울음을 토해내며 그동안 맺혔던 응어리를 뿜어내는 장면도 브래드 피트의 빛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리차드와 수잔의 아이들을 돌보는 멕시코인 가정부 아멜리아의 이야기다. 아들의 결혼식 날에도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아멜리아는 고민 끝에 멕시코로 아이들을 데려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의 경우엔 미국에서 멕시코로 국경을 넘어 아이들을 데려가는 행동이 결국 문제로 발생한다. 예민해진 국제 정세에도 불구하고 아멜리아를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술에 취한 상태로 국경을 넘으려뎐 조카 산티아고는 경찰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엑셀을 밟아 도망친다. 그로 인해 오도가도 못 하고 국경 근처 사막에 갇혀버린 아멜리아와 아이들의 모습이 애처롭게 그려진다. 그들은 특별히 잘못이라 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국경 관리자와의 소통이 어긋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가 가져온 절망감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만다. 결국 경찰에 의해 구조되지만 아멜리아가 국경 근처 사막에서 홀로 걸어 다니며 도와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밝은 색감의 화면과 그녀의 속마음이 대비되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일본에서 펼쳐진다. 이 이야기에선 아예 처음부터 일반인들처럼 소통이 어려운 농아 여학생 치에코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녀가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을 특별한 말없이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녀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배구 심판이나, 벙어리라고 괴물 취급하는 남자들, 그리고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와도 그녀가 원하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이나 답답해한다. 그리고 치에코는 마지막 방법을 택하듯 아버지를 찾아온 경찰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옷을 벗고 나체로 다가감으로써 그녀가 느끼는 절박함을 한층 더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수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홀로 남겨진 고독감을 느끼는 클럽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카메라가 비춰질 땐 그녀의 입장처럼 소리를 제거함으로써 그녀가 느끼는 고독감을 한 층 더 잘 와 닿게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정말이지 큰 변화나 스펙터클한 사건들 없이 느리게 진행된다. 또 어느 한 인물이나 사건에 몰입할 여유를 주지 않고 여러 이야기들을 넘나들며 진행해나가는 산만함마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막상 하고자하는 이야기도 직접적이지 않다. 모든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다른 이에게 손을 내미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런 부분마저 미약하게 그려져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이런 단점들이 존재하는 영화이기에 영화는 재미가 없다. 또 지루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별로냐고 한다면 그렇지도 않다. 재미는 없지만 가치가 있는 영화.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보지 못하게 막지 않을 영화가 이 영화다.
그럼 무엇이 비평가들을 이 영화에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먼저 구조적인 지루함이나 긴장감이 없음을 미리 고려하고 영화를 바라보면 그런 이유들이 내용 속에 숨어있음을 알아갈 수 있다. 일단 4개의 이야기들에 걸쳐 있는 연결고리는 총 한 자루에 불과하다. 일본인인 치에코의 아버지가 모로코에 넘겨준 총 한 자루를 통해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4개의 사건이 시작되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그 것 뿐이 아니다. 네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일의 의미들을 종합해 보면 모두 공통적으로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엉키게 되어서 극단적인 형태로 주인공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어 당황시킨다. 겨우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이 통해도 마음으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 때문에 벌어지는 생각도 못했던 사건들로 인해 그들은 당황하고 어찌할 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바벨탑이 등장하는 성경의 구절에서처럼 말이 통하지 않아서 오는 혼돈이 영화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큰 공통점이 네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고 그것들이 각 나라의 특색을 끼고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지니 그것을 한 번에 이해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점도 있다. 일단 입장의 차이인데, 일본에서의 이야기가 개인과 사회의 소통 불가를 주제로 한다면 리차드의 이야기는 국가과 국가 그리고 개인과 개인의 이야기를 동시에 그리고 있다. 모로코의 유세프의 이야기에선 그런 국가와 국가 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개인에게까지 불똥이 튄 모습을 그리고 있고 멕시코의 아멜리아에겐 국가와 개인 간에 입장 차이가 발생하는 국경의 아이러니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 그런 각각의 입장 차이와 함께 이야기가 벌어지는 네 나라가 갖고 있는 다양성도 함께 그리고 있다. 모로코는 미국과 이라크의 관계 때문에 테러의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힘든 모습을, 그리고 미국의 경우는 조그만 일에도 테러로 단정 짓고 크게 경계하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국경을 배경으로 지나치게 밀입국자들을 경계하는 모습을, 일본의 경우는 너무 빨리 성장한 경제 때문에 그 안에서 상실감을 갖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각 사건이 갖고 있는 원인과 의미는 모두 내면적으로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는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이야기를 영화는 고작 총 한 자루라는 연결점을 통해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누군가와 같이 보거나 추천하기는 어려운 영화다. 그런 숨은 의미들과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가 간접적으로 그려지는 것 때문에, 좋은 영화는 분명함에도 영화적인 재미가 떨어진다. 네 이야기 모두 극단적인 상황을 그리지만 그럼에도 긴장감이 부족하고,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라서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는 시작점을 찾기가 어렵다. 이런 영화일수록 영화를 보기 전에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러 리뷰에 세세한 내용을 적기도 했지만, 내용만이 아니라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코드라든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감상해야 좋을지 정도는 미리 정보를 접하고 보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종 비평가들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내용적인 의미도 좋지만 앞으로는 관객에게 다가가는 법을 좀 더 배워야하지 않을까. 4개의 국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4개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의 부재가 해소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 ‘바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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