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표 영화가 오랜만에 찾아왔다. 여러개의 시나리오를 쓰다가 최종결정한 것이 [1번가의기적]이란다. 그래서 전작에 함께했던 하지원,임창정 콤비를 내세웠단다. 전작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조금은 달라진 그의 4번째 연출작! 살짝 거들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참고로 본인은 욕많이 먹었던 윤제균 감독의 전작들(아시죠?^^)에게도 아낌없는 옹호표를 날린 사람이다. 그래도 이번 [1번가의기적]이 대중적으로는 가장 좋은 평을 받고 있는데, 이 영화에조차도 딴지를 걸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읽지 말 것을 권고한다.
개인적으로 윤제균표 영화는 엽동(엽기+감동)적인 영화라고 치부해왔다. 극단적인 엽기모드와 감동모드가 어울림없이 섞이는 듯 해보이지만 끝내는 묘한 조화를 이끌어내는 연출력이라고나 할까? 이번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엽기코드가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극중 사투리 연기의 일동-이순남매가 아닐까 싶다. 원래 토종아이의 연기라 해도 놀랄 노자인데, 사투리를 따로 배운 연기라니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귀여운 억양과 구수한 말투가 섞여서 또박또박 내뱉는 그 둘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특히 꾀죄죄한 그네들의 모습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기본 스토리 라인은 단순한 편이다. 일명 건설직종 조폭 필제(임창정扮)는 재개발을 위해 청송마을 1번가로 투입된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접해봤음직한 사회적으로 문제있는 소재이다. 역시 윤제균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스토리 라인 지하 깊숙이 중후한 사회문제를 주차시켜 놓았다. 전작들에서 보여진 학교 비리문제, 낙태 문제, 미군 문제를 본다면 놀랄 일도 아니다. 필제는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려하지만, 이 동네 만만치가 않다. 힘은 없지만 악착같은 근성이 있는 동네다. 아이들도 범상치가 않다. 특히 아버지를 위해 잽을 날리는 복서 명란(하지원扮)은 그에게 점점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는데,,,임창정의 연기는 기대에 부흥할 만하다. 물론 주연으로서 충분한 감초연기(!)를 해내지만 임창정이라는 배우에서 나올 수 있는 캐릭터에 비하면 이번 역할은 약한 편이다. 그래서 더 친근하고 편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성복서라는 이름으로 불굴의 연기투지를 보인 하지원은 단연 돋보인다. [걸파이트]의 미셸로드리게즈나 [밀리언달러베이비]의 힐러리스웽크 못지 않는 포스를 뿜어낸다.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당대 최고의 명기 황진이의 고혹적인 바디라인이 그렇게 투박해 보일 수가 없었다. 언제나 캐릭터 소화를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연기자로서 너무 아름다워보인다.
영화는 기본 내러티브를 추구하면서 몇 갈래의 가지를 치고 있다. 먼저 명란 아버지(정두홍扮) 에피소드이다. 명란의 열정과 의욕의 근원은 아버지다. 명란의 복싱장면과 아버지의 복싱장면이 여러번 컷백되면서 이야기는 네버엔딩스토리를 지향한다. 정두홍이라는 배우, 무술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최근들어 속속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시한부를 앞두고 약을 앞에 둔 상태에서 그의 상실감 연기는 탄복할 만하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표정조차 지을 수 없는 그런 리얼리티 가득한 연기가 애절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태석(이훈扮)과 선주(김지은扮)의 가난한 사랑 또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포인트다. 가슴따뜻한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멋진 말투로 읊어내는 이훈의 모습에 가슴 찡했던 여인네들 어디 손 한번 들어보실까요?
[1번가의기적]은 삶 속에 깃든 사랑과 열정 그리고 희망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그것을 기적이라는 단어로 묶을 수 밖에 없는 이 혹독한 현실이 너무 안타깝지만, 그래도 기적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영화다. 재미와 감동은 기본안주로 그 속에 깔린 잔상들은 각자 추가시키기 바란다.
1곱하기 1은 1일지 몰라도 1더하기 1은 2가 된다. 하나하나 더해가는 맛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너무 가득차서 덜어낼 수 밖에 없는 삶은 싫다. 부족하지만 채워갈 수 있도록 희망을 만들어주는 그런 삶이 좋다. 소시민들의 삶! 그 삶의 내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더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 이런 소시민들의 진정성에 지금도 토마토를 난사하고 있는 당신들,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토마토를 맞은 사람들이 훗날 당신네들의 등에 칼을 꽂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저주와 증오 섞인 말같지만 이렇게라도 세상에 대한 절규를 표현해야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눈물겨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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