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쟁을 통해 승자의 영광을 기억한다. 그리고 섣불리 그 전쟁안의 승자를 선으로 패자를 악으로 치환하곤 한다. 무지한 자들은 전쟁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는 극중 대사의 말처럼 사실 우리의 대부분은 전쟁에 대해 무지하다. 사실 우리가 그 전쟁을 통해 봐야할 것은 따로 있다. 그 전장은 긴박감이 넘치는 스펙타클의 추억도 긴박감 스릴의 쾌감도 아니다. 그곳에는 뿔뿔히 흩어진 육신이 널부러지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살육의 비극이 존재한다. 결국 우리가 전쟁을 통해 봐야 할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그들,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다.
어느 노인의 회고에 대한 음성을 통해 영화는 과거로 흐른다. 2차 세계 대전, 미국은 전쟁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일본을 향한 공습을 강화한다. 그 승리를 위한 중요한 고지는 이오지마섬. 유황으로 뒤덮여 이루어진 화산섬 이오지마는 마치 프랑스의 마지노 요새(maginot line)만큼이나 접근이 쉽지 않은 방어벽이 구축되어 있는 곳이다. 어쨌든 그들은 미국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자신의 젊음이 흩뿌려질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향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우리도 잘 아는 성조기를 세우는 미국군인들의 사진은 실제 이오지마의 전투에서 수라바치산 정상에 미군이 성조기를 세우는 모습을 종군기자인 존 로젠탈이 찍은 것이며 이는 그에게 퓰리처 상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실제 인물이자 이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 역)의 아들인 제임스 브래들리(톰 메카시 역)가 집필한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오지마 전투에 참여해 깃발을 세우는 사진에 찍혀 전쟁영웅이 된 아버지의 회고와 관찰, 조사를 바탕으로 쓰인 이 회고록은 미국의 전쟁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도 전에 신물나게 보았던 미국식 영웅주의에 대한 손사래부터 칠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미국식 영웅주의의 예찬프로젝트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지점에 서 있는 진지한 시선이다. 단순히 그 시선에 대한 치기어린 반발도 아닌 그 시선에 대한 진지한 자성인 것이다.
일단 이 영화는 전쟁 그 자체의 살떨리는 현장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물론 필자가 전쟁터를 누벼본적이 없기에 아마 이랬을 것이다라는 추측만이 가능하지만 어느 전쟁 영화를 통해 보여지던 그 참혹한 순간들이 과장도 비약도 없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날아든 포화에 인간의 육체는 찢겨나가고 공기를 가르는 총탄은 몸을 관통하며 순식간에 육체를 싸늘한 주검으로 변모시킨다. 포커를 치며 농담을 나누던 전우들은 죽어나가고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이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적의 진지를 향해 돌격한다. 스펙타클이라는 단어로 비유를 하기조차 무색할 정도로 그 상황은 참혹한 전장 그 한가운데 서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등을 통해 전장을 체험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그와 비슷한 혹은 이상의 질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할 법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이 영화가 그 전장의 외면과 함께 그 전장을 누비는 이들의 내면을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오듯 총알이 쏟아지고 곳곳이 포화로 날려지는 그곳에 람보는 없다. 다들 조건은 평등하다. 총알을 피하는 법을 아는 이는 없다. 살기 위해서는 빗발치는 총알세례를 뚫고 내달려 적이라 명명된 이들을 죽여야만 한다. 그곳에 생과 사의 선택은 없다. 국가라는 명예로 그 현장을 뛰어든 그들에게 개죽음 혹은 생존의 두가지 결과론만이 부여된다. 어느 순간 누구에게 총알이 날아들지 포탄이 떨어질지 알 수가 없다. 단순히 운이 좋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그곳에서 죽음은 지극히 평범하고 번번한 일이다.
닥과 개그넌(제시 브래포드 역), 아이라(아담 비치 역)는 깃발을 세우는 그 사진에 찍힌 덕에 본국으로 송환되고 영웅으로 추앙된다. 그들은 생사를 가르던 동료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얼떨결에 영웅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정부는 전쟁기금을 마련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에 번뇌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땅에도 전쟁은 낯선 타지의 사연이 아니다. 50여년 전만 해도 한국전쟁, 즉 6.25사변이 있었고 그 이전에도 이 땅에서 살육은 종종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모든 일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추억이 된다. 하지만 전쟁마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그 현장에 머무르지 않았던, 그 전장의 비극을 두눈으로 목도하지 않은 이들의 무지함이다. 파편에 몸이 찢겨져 나가고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그곳에 추억은 없다. 단지 국가의 승리와 영광이라는 이름하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그곳에 헌사하는 이들의 피비린내나는 비극만이 그곳에 존재한다.
이 영화는 그런 전장의 한가운데를 묘사함으로써 영웅주의의 탄생 배경을 묘사하고 그런 영웅주의가 탄생하게 되는 사연을 추문한다. 본국으로 돌아온 세 전쟁영웅은 사실 자신들이 다른 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단지 자신들은 성조기를 세우는 옆에 있었을 뿐이고 우연히 그 깃발을 세우게 되었을 뿐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 깃발을 세우던 영광이 아니라 그곳에서 무참히 죽어나가던 동료들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 단상에서 자신들은 영웅이 아니고 그곳에 목숨을 바친 전우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는 전쟁기금마련에 한몫을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그것은 그들의 진심이다. 아이라와 닥은 모형으로 만들어진 돌산을 기어오르면서 그 당시의 기억을 회상한다. 우연찮게 거머쥔 영광이지만 그 영광은 결코 맛있게 씹어넘길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억에 각인된 것은 그 전장에서 세운 깃발의 영광따위가 아닌 피흘리고 찢겨져 나간 채 죽어간 전우들에 대한 목도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전쟁을 기억하는 옹졸한 시선을 탐색하고 지나간 것들에 대해 쉽게 간과해버리는 습성을 지적한다. 모든 것은 세월이라는 필터를 걸쳐 추억으로 미화되고 포장되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이 그 필터에 걸러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전장 한가운데 서보지 않은 이들의 지독한 무지함일테다. 명예로운 애국심에 고개를 들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날아드는 총알과 포격에 공포의 시선을 떨군채 고개를 숙일 때 우리는 전장의 진실을 발견한다. 우리가 미화하는 전쟁의 명예는 그 정신나간 현장을 애써 포장하고자 하는 합리적 욕구의 발현과도 같다. 그 현장에서 죽어나간 이들의 본심과 무관하게 우리는 그것을 명예로 미화하고 숭상한다. 과연 그곳에 명예가 있는가. 그곳에는 인간의 죽음이 있다. 승리와 패배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는 파시즘과 프로파간다에 휘둘려 내몰린 나약한 인간들의 피비린내나는 비극들이 엉켜있다. 정상에 꽂힌 알량한 깃발의 명예는 그 깃발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비극들을 함구해버리게 만든다.
이는 결국 개개인이 국가라는 대의안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소모되어도 합리화되어버리는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영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 소모전이 부질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영웅을 생성시키고 그로 인해 그 비극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었음을 위장한다. 영웅이 되어야 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영웅담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더불어 영웅이 되어야 하는 사실에 버거워하고 갈등한다.
죽어간 이들에 대한 추모보다도 깃발에 환호하는 이들의 모습이 서글픈 것은 대의라는 허무맹랑한 논리앞에 소모된 개인들의 잔해를 망각하는 현실을 대면해야 하기 떄문이다. 승리에 환호하는 군중에게 그 승리를 위해 생을 버린 수많은 이들의 희생은 금세 잊혀진다. 그리고 그 환호가 단순한 눈돌리기가 아닌 전쟁자금을 위한 정부의 야비한 수단임이 드러날 때 분노가 더해진다. 개인의 희생을 밟고 국가는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친다면 그 전장의 현장에 스스로를 대입해보고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일 것이다.
한편으로 그 전장의 죽음이 서글픈 것은 그와중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묵묵함을 이행하는 이들의 모습떄문일 것이다. 위생병을 외치는 절규를 외면하지 못하는 닥의 모습은 개인에 대한 미화라기 보다는 그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나약한 개인의 극단적 의지다. 생의 가망이 없는 전우에게 마지막까지 안도를 주려하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사소한 사연들이 서글픈 것은 그래서다.
언제부턴가 할리웃의 명배우에서 명감독으로 변신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거장의 반열에 그 이름을 새겨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의 전작들만큼이나 이 작품도 놀랍다. 무엇보다도 그의 시도는 항상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거대한 명제로 군상을 미화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군상안에 갇힌 인간을 탐구하고 그 작은 의지와 소명들을 소중히 쓰다듬는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이라는 명제안에서 도외시되는 전장의 기억들, 그리고 그 안에 상주했던 이들의 비극을 국가라는 이름안에서 멋대로 소모시키지 않고 그 비극에 주목함으로써 우리가 쉽게 인정하고 끌려가는 귀속적 사고를 일깨운다.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는가를 묘사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우리는 승리를 기억하며 그 승리를 위한 희생들을 당연시하곤 한다. 우리는 기념하기 전에 추모를 해야 한다. 승패를 구분짓기 전에 그 전장에서 사라진 목숨들에 주목해야 한다. 깃발에 현혹되지 말고 그 깃발에 쓰러진 이들의 이름을 살펴야 할 것이다. 결코 전쟁이 추억이 될 수 없는 것은 그 떄문이다. 죽인자도 죽어간자도 살아남은자도 어느 누구도 그 현장을 상기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당사자들에게 그 기억을 되돌리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무례한 일일 따름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겸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쟁에 대한 최선의 예우일 것이다.
더불어 이 영화의 이란성 쌍둥이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은 승자를 위한 역사에 대한 거부감의 실현을 마주하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것은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적 논리를 떠난 전쟁에 대한 진솔한 고백과 상반된 두 시선이 마주쳤을 때 깨닫게 될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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