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唐)나라(618-907년) 말기, 875년부터 884년까지
일어났던 '황소(黃巢)의 난' 을 일으켰던 대농민반란의
수령이었던 황소가 과거에 낙방한 뒤 쓴 <부제후부국(不第後賦菊)>
이라는 시에서 황후花 의 원제인 <滿城盡帶黃金甲> 이 나온다.
待到秋來九月八 가을 되어 9월 8일 기다려 왔노니
我花開後百花殺 내 꽃이 핀 뒤에 온갖 꽃은 시들리
衝天香陣透長安 하늘 찌를 한 무리 향 장안에 스며들어
滿城盡帶黃金甲 온 성 안 모두가 황금갑옷 둘렀네
'만성진대황금갑' 즉, 온 성 안 모두가 황금갑옷을 둘렀다는
마지막 시구가 바로 황후화의 원제이다. 원제에 대한 내용이
사뭇궁금했던 만큼 그 자취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많은 않았다. 하지만 장예모 감독의 전 영화들인 <영웅>,
<연인> 을 봐왔다면 그 연관성에 대한 실마리는 난해하다할
만큼 아무 필요없는 무용지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전혀 연관성
없는 내용과 전개로 영화를 미궁에 빠트리는 장예모 감독의
특색을 안다면 말이다. 이 영화는 장예모 감독의 전작들과도
차별될 정도로 시각적으로 화려해 눈이 부시다 못해 제대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의 눈을 현란하게 만드는 영상미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현란하게 눈을 어지럽히는 영상미의 소재는
금과 금빛으로 물든 황제의 성이다. 온통 금으로 채색된 황궁을
보고 있자면 꿈의 성이 아닌가 여겨질정도로 지나친 황금물결이
넘칠 거린다. 황제(주윤발)과 황후(공리)의 미묘한 마찰이 보이는
초반부분부터 어딘지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보인다. 황후와
부적절한 흔히말하는 근친상간의 정을 나눈 황제의 첫째
아들인 원상왕자(리우 예), 그리고 황제와 북쪽 국경 수비에서
돌아와 난데없이 황제에게 나를 무력으로 제압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를 받는 둘째 원걸왕자(주걸륜), 그리고 나약하고 심약한 듯 보이지만
황후의 모습을 보면서 번뜩 번뜩 독기를 보이는 막내 원성왕자(
준지 퀸)의 집안 분위기가 다소 사납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황제는 황후에게 페르시안산 검은 독버섯을 먹이며 암암리
황후의 명줄을 끊어가고 있고, 황제의 어의의 아내는 원성왕자의
친엄마이며 어의의 딸은 원성왕자와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내용이라고 따지자면 메인은 황제에게 당하는 걸 견디지 못하고
국화로 찬란하게 물들인 중양절 황제에게 대들어 보는 황후의
반란 스토리다. 이 영화의 핵심은 내용이 아니라 화려하게 수놓은
황궁의 일상과 중양절에 일어나는 반란에 물들인 황금갑의 화려한
반란군들과 황궁을 수호하는 이들의 격돌이 보여주는 소위말하는
볼거리에 있다. 그 볼거리의 유혹이 장예모 감독의 전작보다
유혹의 향기가 너무 짙어서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대규모의
전투신은 나름대로 액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치고, 비장감마저
느껴지면서 가족싸움을 벌이는 황후와 황제의 싸움에 얽히고 섫히게
끼여 들면서 어이없이 죽어버리는 원상왕자와 허무할 정도로 마조히시트
적 취미를 드러내는 황제의 혁대로 얻어 맞으면서 죽어가는 원성왕자,
반란의 묘미를 보여주며 황금갑을 들이대던 10만의 군사가 화살에
의해 순식간에 괴멸되며 패배하는 황후를 위해 반란을 도모했던
원걸왕자의 이야기를 보며 혀를 끌끌 대고 기가 차게 만든다.
화려한 볼거리만으로 가득찬 요소를 짜내고 짜내서 만들어 낸
영화로서 솔직히 재미없는 영화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영화속에서 보여주는 볼거리는 상당히 유혹적인 메리트가 강하다.
그리고 본인이 개인적이지만 가장 싫어하는 상업적인 요소가 너무
강하다. 화려한 황금갑의 물결보다 상업적인 냄새가 풍기는 악취가
심해 결국 영화의 결말을 보고 장예모감독의 영화는 예전보다
한층 더 돈냄새가 풍긴다라는 여운을 남겨준다. 그리고 황궁의
시녀들의 기상시간으로 기선을 제압하는데...선정적인 루트를
과감하게 드러낸것도 그런 상업성 냄새가 과감하게 풍긴다. 이 영화에서
꼭 저런 만큼의 노출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의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 솔직히 이 영화를 주관적으로 판단하자면 상업적
냄새와 볼거리로 무장한 오아시스같은 영화라고 얘기하고 싶다.
마실 물에 대한 기쁨과 행복도 잠시, 실체를 알고는 무너져
버리는 사상누각처럼 몸에 힘이 쭉 빠져 버리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그리고 영화의 매력적인 요소는 이해하지만 그 속에 펼쳐지는
골육상잔의 어이없는 내용적 요소나 상업적인 뉘앙스만 풍기는
전체적인 골격에 대해서는 솔직히 이야기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었던 그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