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검 오니노츠메> 를 통해 접하게 되었었던 야마다 요지(山田洋次)
감독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던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원제는
'황혼의 세이베이')를 접하게 되었을때 첫 느낌은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점 전인 막부 말기의 혼돈과 무질서한
국내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그런 시대극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영화의 중심은 막부파인 우나사카번의 휘하에 50석의
녹봉을 받는 가난한 사무라이인 이구치 세이베이(사나다 히로유키)의
일상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구치 세이베이는 황혼녘 칼퇴근하는
우직하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어린 두딸을 데리고 사는 사무라이다.
녹봉이 50석이라고 해도 20석은 차용금으로 빠져나가고 실제 받는
30석과 벌레상자를 만들고 밭일을 하면서 힘든 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런 사무라이다. 폐결핵으로 사망한 아내는 150석의 녹봉을 받던
히라다 가문의 규수였지만 죽을때까지 남편의 출세를 바랬다.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세이베이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도다류(富田流)의 진전을 이어받아 사범의 위치에 까지 있었지만
아내의 장례식을 위해 사무라이로서의 목숨과도 같은 검을 팔고
<황혼의 세이베이> 라는 별명을 얻은채 동료들에게 놀림 받고
살아가고 있다. 혼돈기에서 언제 어떠한 상황이 발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세이베이는 권력에 대한 욕심도 물욕도 없는 탓에
묵묵히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영화는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제공하는데 그런 가난하고 청렴한 사무라이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성장한 딸의 나레이션으로 상황적 묘사를 세부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독특한 느낌을 보여준다. 시대가 변하는 상황속에서 절친한 친구인
400석의 녹봉을 받는 친구 이이누마는 동생 토모에(미야자와 리에)
가 고다가의 술주정뱅이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이이누마가 번주에게
청을 드려 억지로 이혼시켜 자기 집에 와있음을 알린다. 어렸을
적 부터 연정을 품고 있던 토모에의 소식을 듣고 귀가한 세이베이는
자신의 집에 와있는 토모에와 재회하고 그때부터 토모에는 두 딸을
돌봐준다. 토모에도 세이베이에게 소꿉친구시절부터 사모하고 있었음
이 얼핏 돋보이는 상황에서, 토모에를 바래다 주던 세이베이의 눈에
이혼당한 고다가의 토모에의 전남편이 술을 먹고 이이누마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이이누마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이이누마를 대신해 결투신청을 대신받은 세이베이는
범상치 않은 실력으로 제압해 버린다. 시대가 변화하는 상황속에
흔들림없던 세이베이는 번주의 명령으로 에도의 반란문제에 연루된
하세가와 시몬가문의 이동경호무사을 맡고 있던 일도류 무사
요고젠에몬과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일 위기에 처하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가혹한 세이베이의 운명을 본다. 말단 무사로서 오직
자식들과 노모를 먹여 살리기위해 황혼녘 칼퇴근하면서 동료들에게
놀림받는 세이베이는 진정한 아버지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가족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영화의 진행과정 내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제 다시 가족을 지킬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혼담을 거절했던 토모에와의 애틋한 마음도
드러낸채 요고를 베기위해 결투에 나선 세이베이는 요고또한 결코
순탄치 못한 삶으로 아내를 결핵으로 잃고 아내의 병이 딸에게
퍼져 딸까지 잃어버렸던 지난 세월의 사연을 듣게 된다.
보내달라는 요고의 말에 마음이 동하지 않던 세이베이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요고를 도망치게 놔두려 마음먹지만 도다류의 소도(小刀),
즉, 고다치로 그를 상대한다는 말에 사무라이로서의 자존심이
발동했는지, 술이 화근이었는지 요고는 갑작스럽게 저돌적으로
세이베이를 공격하는 상황이 온다. 영화에 대한 느낌만을 전달하려
했는데 스포일러성이 너무 짙게 깔린 것 같아서 그 뒷이야기는
영화를 보고 여운을 느끼길 바란다. 사나다 히로유키의 40년
경력이 넘치는 배우의 혼이 담긴 연기로 세이베이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대를 떠나
전쟁의 혼란기든 어떤 시대든 아버지의 마음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가족과의 행복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갔든 불운하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느낌을 보여주는 세이베이의 마음이다.
여타의 사무라이 시대극과는 달리 야마다 요지감독의 심도깊은
영화의 내면을 들여다 볼수 있었던 가슴 뭉클하고 한 줄기
여운을 남기는 '정(情)' 을 느끼게 한 멋진 영화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