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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남기고 간 것. 태양의 노래
kharismania 2007-02-01 오전 11:56:24 1006   [2]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해도 여전히 낮과 밤의 경계를 가르는 권한은 태양에 있다. 그리고 낮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고 밤은 인간을 멈추게 한다. 물론 인류는 밤에도 전등을 밝히며 그 전지적 권능에 대항하고자 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그 길들여진 권능에 습관처럼 조아린다. 태양은 그렇게 하루의 경계를 분담함으로써 인간의 삶 역시 경계선을 나누었다. 

  

 동이 틀 무렵, 한 소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일찍 일어난 것 같진 않고 아무래도 날을 샜나보다. 그녀는 창밖을 응시하며 무언가를 기다린다. 벤치로 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오더니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고는 벤치에 주저앉는다. 그런데 그 소년의 얼굴이 버스 표지판에 가려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소녀는 그 소년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기웃거린다. 소녀는 그 소년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다른 친구 두 명이 오자 잠시 장난을 치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간다. 소년의 자전거에 있던 서핑보드로 보아 그는 친구들과 아침마다 서핑을 하러가는 듯 하다. 그 무렵, 동이 트고 소녀는 마치 태양을 피하듯 창문을 가리고는 어둔 방 구석에 있는 침대로 들어가 잠이 든다.

 

 이 영화는 한 소녀의 불치병을 매개로 비극적인 상황 그 자체를 이미 초반부터 예고한다. XP(xeroderma pigmentosum)증후군, 색소성 건피증이라 명명되는 이 기이한 질병은 햇볕을 받으면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는 알러지 현상이다. 그리고 그 증상은 단순히 태양을 피하는 방법만으로 삶을 연장할 수 있는 불편한 사실만은 아니다. 언젠가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처럼 그녀는 언젠가 발병하게 될 신경쇠약의 기운을 경계해야 한다. 결국 갑작스럽게 도래할 죽음의 습격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만약 불치병으로 인한 여주인공의 죽음이라는 클리셰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난다는 관객은 이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폄하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증상은 단지 영화가 여주인공을 죽음으로 밀어넣는 비련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독특한 스토리가 파생되는 지점이자 영화의 정서가 싹을 틔우는 밑거름이다.

 

 카오루(유이 역)의 증상은 그녀에게 일상인과 같은 활동의 시간 영역을 반대로 돌린다. 모두가 생산적인 활동을 마치고 개인의 시간을 지니거나 다음날을 기약하며 휴식을 취할 무렵 그녀는 시계의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 태양이 진 밤은 그녀의 영역이다. 그녀는 매일같이 밤이 되면 역 앞 광장에서 들어주는 이도 없이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절친한 친구와 함께 역앞에서 공연을 하던 중 그 곳을 지나는 그 소년, 코지(츠카모토 타카시 역)를 발견하고 그를 좇아 내달린다. 기차길 앞에서 가까스로 그를 따라잡은 그녀는 그에게 서투른 소개로 그를 당황스럽게 하지만 결국 그것은 그들의 애틋한 사연의 시발점이 된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 그 젊은 날의 순수한 감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흐믓하다. 카오루와 코지는 그렇게 아름다운 감정속으로 함께 손을 잡고 들어가지만 그 두사람은 그 흐믓함 이전에 안타까움을 이미 동반한다. 미래가 불투명한 시한부같은 사랑. 그 예상되는 불행에 대한 연민탓이다. 코지가 카오루를 시내로 끌고나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는 순간까지도 둘의 사랑은 구름같은 불안함을 잊고 그 아름다운 사실만을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바다의 일출을 뒤로 한채 내달리는 카오루와 코지의 사이에 놓여진 둘의 현실적 간격은 그 불안감을 구체화시킨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사랑.

 

 결국 이 영화는 어린 시절 찾아온 사랑의 지속되지 못하는 아련한 감정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 감정의 파동을 구성하는 것은 단순히 두 어린연인의 비극만이 아니다. 카오루의 아버지인 켄(키시타니 고로 역)과 어머니 유키(아사기 쿠니코 역)는 딸을 극진히 사랑하며 그녀를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그들은 딸의 운명에 가슴아파하며 딸의 행복을 위해서 그녀의 사랑 또한 존중하고 노력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결국 이 영화는 단순히 로맨스의 문제가 아니라 소중한 것에 대한 애정을 중심에 놓는 영화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잃어야 하는 이들의 심정. 그 예고된 이별에 대한 서글픔.

 

 하지만 영화는 그 감정을 토대로 관객을 쥐어짜거나 휘벼파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 순간의 아스러지는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채 담담하게 고백하듯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별의 서글픔보다도 이별 뒤에 남겨진 그리움을 강조한다. 카오루의 노래를 세상에 남기고자 코지는 자신의 노력을 다하고 그 성과는 결국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녀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들려진다.

 

 태양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해가 뜨거나 질 때이다. 태양이 가장 빛을 발하는 한낮에 그 빛을 올려다 볼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태양 스스로가 자신의 권능을 버리고 눈높이를 맞추고자 하는 겸손함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 그 자체이다. 자신에게 소중한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그것을 지킬 수 없다면 그것의 일부나마 간직하고자 하는 남은이들의 염원. 감정의 수면를 출렁이게 만드는 숙연한 슬픔이 그로부터 잔잔하게 배어든다. 다신 카오루를 볼 수 없지만 카오루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녀가 남긴 그녀의 노래를 통해 그녀를 듣고 그녀와의 추억을 이어갈 것이다. 빛이 바래도 추억이 담긴 사진처럼. 코지는 그렇게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그녀와 함꼐 했던 그 공간에서 그녀를 간직할 것이다. 마치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태양처럼. 이뤄질 수 없는 한밤중의 태양(midnight sun)같은 꿈처럼 그녀는 그렇게 긴 그리움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추억은 그렇게 태어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소년은 성장한다. 슬픔과 그리움을 견디는 법을 배우며, 그 사랑 그 이후에 남겨진 것들을 주워담으며.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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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노래(2006, Midnight Sun / タイヨウのう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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