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흑수선은 '사랑' 이야기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으나 '미스테리'와 '역사'의 결합에는 실패였다. 이 세가지의 궁합이 잘 맞았어야 했는데 정말 아쉽다. 좋은 소재를 비싸게 버리다니..
'공동경비구역'은 배우들의 개성 연기와 감독의 재량, 그리고 훌륭한 시나리오가 있었기에 예술성과 흥행성을 갖추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수선의 경우 잘 결합되야 할 끈들이 매우 엉성하며, 특히 영화를 표방하는 '제목'은 내용과 정말 동떨어진다.
'그녀의 또다른 이름' 흑수선...이라는 타이틀......
흑수선은 남로당 스파이인 여주인공의 작전명이다. 그러나 그녀의 스파이 활동은 초기 거제도에 수감된 사상범들의 탈주를 도우는 것으로 끝...도우는 것도 아주 소극적이다. 나머진 남자들에게 끌려다니고 끝내 인생 종치는 한스러운 여성일 뿐이다.
그녀의 이름이 잠시 빛나는 것은 '장님인 척 한 것이 드러났을 때...' 그러나 이런 것은 반전에도 못 들 정도로 너무 간단하게 드러나 버렸다. 극적임도 없었고 심지어 예상 가능했다. 정준호가 죽어가면서 남긴 말 때문에...^^; 어떻게 그렇게 허무하게 그가 범인이 아님을 드러내 버린 것일까?
이미연의 연기 또한 이 영화에서 악평을 들어 마땅한 부분이다. 이미연...그녀는 어릴 적부터 연기했다. 명성황후까지 찍으며 요즘 최고의 연기자 중하나다. 그런데 명성황후 때부터 표정 변화 없는 그녀의 연기에 최근 우리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우리의 의문은 맞았다. 흑수선에서 그녀의 연기는 책을 읽는 것 같은 경직되고 오버된 연기였다. 그녀는 명성왕후처럼 아주 고아한 여성으로만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의 연기는 그 고아함이 망쳤다.
이미연과 안성기라는 정말 안어울리는 커플도 이 영화의 단점이다. 사랑 이야기엔 눈물을 찔끔 흘렸으나 이 커플은 정말 너무한다.
이 영화에서 볼 만했던 것은 역시 배창호 감독의 장기인 '사랑' 이야기..그러나 이것도 식상하다.
이 영화는 잘 포장된 듯 하나 아주 엉성한 영화였다. 아주 기다렸었는데 '공동경비구역'을 뛰어 넘을 영화는 아직인가 보다. 제2의 공동경비구역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