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종종 정신지체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항상 느낄 수 있는 것이 이들 부모의 근심이다. 항상 부모의 관심과 손길이 있어야 원활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부모가 없을 때 아이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이런 막막한 걱정 때문에 부모들은 부단히도 눈물 짓고, 그런 모습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 또한 마냥 안타깝고 짠해진다. 무엇이든 장애가 없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맞춰져 있고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는 "경우에 따라서" 갖춰지는 사회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영화 <허브>에 깊이 배여있다. 영화는 장애를 가졌다는 걸 잘못인 것처럼 느끼게 할 만큼 이들에게 생활의 많은 제약을 주는 이 세상에서, 이들이 보통 사람들과 더불어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와 생판 다른 사람인양 취급하는 정신지체 장애인들 또한 우리와 함께 엄연한 한 사회의 일원이고,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는 그 가능성 말이다.
우리의 주인공 상은이(강혜정)는 신체나이는 20살이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아직 7살에 머물러 있다. 동화책을 즐겨 읽으면서 자신에게도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기를 꿈꾸는, 여느 천진한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누가 "바보"라고 하거든 있는 힘껏 깨물어주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어머니 현숙(배종옥)과 함께 오붓하게 살아가고 있는 상은은 나이도 어엿한 성인에 들어선 만큼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지만 아직 마음은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는 상은이는 성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더 보태야 할 점이 많다. 그러던 중 상은이는 우연히 의경 종범(정경호)을 만나고, 상은이에게 종범은 정말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왕자님의 모습으로 안착하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본의 아닌 오해를 하게 된 종범 역시 상은이와 좋은 만남을 가지게 되고, 상은이의 티없이 순수한 마음에 조금씩 이끌리게 된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현숙이 큰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되고, 결국 상은이와 엄마 현숙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1개월 남짓 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평범하지만은 않은 소재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력은 단연 빛을 발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치아교정 이후 첫 작품이기도 한 이 영화에서 강혜정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다.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좀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전에 강혜정이 교정을 하고 난 뒤의 모습은 내가 봐도 적응이 쉽게 안되기는 했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만약 교정을 하지 않고 이전 모습을 유지했다면 이렇게 상은이의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한층 상큼하고 순수한 상은이의 모습이 강혜정에게 잘 스며든 것 같았다. 한층 낭랑해진 목소리와 정말 저 또래 어린 아이처럼 자기 감정에 충실하면서 얼떨떨하기도 한, 순진한 아이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평범하지만은 않은 딸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 배종옥 씨의 연기도 훌륭했다. 신호위반을 한 상황에서도 아들 뻘은 되는 의경에게 오히려 떳떳하게 대드는 억척스런 아줌마의 모습부터 해서, 갑작스레 다가온 청천벽력 같은 앞날을 두고 망치로 제대로 맞은 듯 그저 멍하게 주저앉고 마는, 자기 없이 홀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딸 생각에 그저 앞이 막막하기 만한 절절한 어머니의 모습까지 폭넓은 연기를 물흐르듯이 멋지게 소화해냈다. 기존에 보여줬던 모습들과는 살짝 다르게 농땡이도 심심치 않게 부리는 쾌활한 청년의 모습을 유쾌하게 소화한 정경호의 연기도 안정적이었다.
유사한 소재와 인물 관계를 가지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말아톤>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말아톤>과 <허브>는 다른 점이 꽤나 있다. <말아톤>이 실화를 바탕으로 자폐아가 갖게 되는 자기만의 정신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괴리에서 오는 갈등, 그로 인한 사회의 편견이 깨지고 소통의 문이 열리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침착하고 현실적으로 그린 반면, <허브>는 불치병이라는 닳고 닳은 소재를 앞세워 정신지체 장애인의 모습을 엄마와 딸의 가슴 아픈 이별이라는 보편적 소재를 통해 다소 영화적으로 그린 면이 없지 않다. 주인공만의 상상이나 행동에 관련된 장면들만 해도, <말아톤>은 동물의 세계라는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과 특정 상표의 습관적인 나열 등 지극히 현실에 천착한 부분이 많은 반면, <허브>는 동화를 바탕으로 왕자님과 계모와 같은 개념을 끄집어내 그것으로 자신만의 세계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다소 영화적이고 동화스럽게 포장된 구석이 없지 않다.(그럼에도 고민하는 상은이 앞에 동화 속 캐릭터들이 나타나 여러 감정을 부추기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감정적으로도 앞서 얘기했듯 <허브>는 병으로 인한 엄마와 딸의 이별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활용하다보니 감정의 폭이 가장 절정에 달할 부분에서 관객의 감정을 있는대로 끄집어내려 다소 지루할 만큼 길게 끌고 가는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외에 주목할 만한 이 영화의 특징이 있다면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이들의 사회 생활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청년과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이렇게 얘기하면 다소 뻔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장애를 뛰어넘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교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엄마와의 이별을 앞둔 상은이가 점차 홀로 세상 앞에 설 준비를 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장애를 가지고서도 독립적으로 사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점에서 (앞에서는 다소 영화적인 포장이 없지 않다고 했지만)동화 얘기를 꺼낸 것은 꽤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늘 동화 속 왕자님이 야수의 가면을 벗고 훤칠한 외모로 자기 앞에 다가와 줄 것을 꿈처럼 기다리던 상은은 자신에게 다가온 예상치 못한 시련 앞에서 그런 의존적인 모습을 한꺼풀씩 떨쳐 나간다. 자전거도 홀로 수십번 씩 넘어져 가면서 배우고, 혼자서 소지품들을 챙기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별것 아닌 일들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일곱살의 마음을 지닌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임엔 분명한 이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상은이는 예전처럼 침대에 누워서 왕자님에게 키스 받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님이 아니라, 자기 할 일을 능동적으로 찾아다니면서 알아서 자기 살아갈 길을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공주의 모습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은이가 동화책 속 주인공들에게 얽매여 있다가 그들에게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모습은 좋은 비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으로 갈 수록 최루성이 짙게 깔리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희망을 던져준다. 자기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나 하고 항상 눈물 속에서 걱정하시는 많은 장애인들의 부모 앞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이끌어준다면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일지라도 무사히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릴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정작 많은 사람들이 정신지체를 비롯한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장애로 인해 사회 생활에 여러 지장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고 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고기를 잡는지" 가르쳐주는 사람들의 배려의 손길만 있다면, 마냥 큰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 보이는 장애인들의 사회 생활도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다. 장애인들의 사회 생활을 막는 장애는 그들 자신이 갖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아니라, 이들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속단해 버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닐까 싶다.
영화적인 부분을 극대화해서 관객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런 흐뭇한 희망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 <허브>는 충분히 웃으며 극장을 나올 수 있는 영화다. 종을 가리지 않고 사방에 퍼져 향수처럼 아늑한 향기를 가져다 주는 허브밭의 모습처럼, 이 모질 것 같은 사회 속에서도 장애를 가진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충분히 함께 거리를 오가며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향기롭게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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