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애니메이션이 경계해야 될 것은 어쩌면 기술력의 부재보다도 국산이라는 꼬리표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관객들의 고정관념일 듯 하다. 물론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수준이 할리웃이나 지브리 스튜디오에 견주기에는 여전히 모자르다. 근래 들어 몇년사이 이를 극복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물론 그 시도들은 흥행성적의 보좌를 얻진 못했지만 기술력의 향상이라는 확실한 성과는 거두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창조력이 부족한 스토리였다. 사실 일본의 재패니메이션이 2D의 질감으로도 실사 뺨 칠 정도의 영상적 퀄리티를 지닌 할리웃 3D 애니메이션에 맞서는 것은 그 이야기의 창조력에 있다. 물론 지브리 산 애니메이션의 영상미는 3D의 인공미에 견줄 수 없는 감성적 아름다움을 지니기도 한다.
마리이야기에 감탄한 이라면 아마 이 작품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마리이야기를 만든 이성강 감독이 5년여만에 만든 이 작품은 마리이야기가 지녔던 나른한 몽환적 세계를 구체적으로 끌어냈고 좀 더 유아적인 순수함을 고착화시켰다.
구미호라는 토종산 소재를 통해 한국산 애니메이션임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듯한 이 작품은 국산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이 그동안 입증해 온 발전의 성과를 다시 한번 선보인다. 2D의 인물들이 3D의 배경에 붙는 멀티메이션 기법을 통해 풍경과 인물의 낮은 싱크로율을 통해 독특한 효과를 내는 방식인데 이는 과거 '원더풀 데이즈'에서 선보였던 방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백미는 그 영상미에 있다. 파스텔톤의 마리이야기에서도 그랬듯 이 작품의 풍경은 마치 한편의 수채화처럼 물기를 가득 머금은 서정미를 풍긴다. 몇몇 장면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투명하여 스토리의 전개에 따라 스쳐지나가는 풍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할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리이야기를 통해 문학적인 기운의 동화적 상상력을 반투명하게 펼치던 스토리텔링은 좀 더 직설적이면서도 감정을 자극하는 적극성을 띤다. 물론 소재가 지니는 발상자체가 이미 유아적인 기질을 지녔다는 점안에서 진행되는 스토리 역시 성인관객에게 어필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감정이 빤히 들여다보일지라도 결말부에서 느껴지는 투명한 감동마저 폄하되진 않는다. 결국 순수함이라는 낯간지러운 가치관이 지니는 기본적인 성향은 무시할 수가 없는 탓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작품이고 기본적으로 동화적인 모티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것은 당연한 귀결점이기도 하다. 다만 비슷한 성향의 이야기를 하는 지브리산 애니메이션이 보이는 비범함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국산 애니메이션들이 도달하지 못한 한계점이 어느 부분에 있는가를 다시 한번 되짚게 되는 것 같다.
분명 이 작품은 하나의 성과라기 보다는 미래의 성과를 위한 주춧돌로 작용되어야 할 과정에 가깝다. 물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부족한 점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일 수도 있지만 더 나은 성과를 위한 고무적 지지일 수도 있다. 일방적인 무관심과 굳어버린 편견 속에서도 여기까지 성장한 애니메이션 산업의 성장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한번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건 그때문이다. 언젠가 개화될 꽃봉오리를 기대한다면 그 밑거름이 충분히 필요한 건 당연한 사실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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