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시간이 흘러도 가시지 않는 감동....
알고보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아톰, 마징가 등 어릴 때부터 일본 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라났지만, 1998년 10월에 이루어진 일본 문화 1차 개방 이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 그 중에서도 극장에서 일본 영화를 보게 되었다. 1차 개방으로 극장에서 처음 개봉한 일본 영화는 기타노 타케시의 [하나비]였지만, 흥행은 성공하지 못한다. 1999년 9월 2차 문화개방으로 수입된 일본 영화가 바로 [러브레터]였는데, 시중에는 불법 비디오 등으로 적어도 20만 명이 사전 관람했다고 하는 문제작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기 때문에 흥행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와 달리 [러브레터]는 '오겡끼 데스까'라는 신드롬을 남기며 전국 100만, 서울 65만이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리게 된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일본 영화 3위의 흥행 기록이다.(1위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2위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가 나에게 더욱 슬프게 다가왔던 건, 이야기의 중심인 동명이인 이츠키와 이츠키의 추억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껍데기를 사랑했었던 연인에 대한 히로코의 애닮음과 그저 잊혀져 버린 이츠키(남)의 사랑 때문이었다.
이츠키(여)는 중학교 때 자신과 동명이인이었던 이츠키가 있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지낼만큼 그녀의 인생에서 이츠키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츠키(남)는 중학교 이후 전 생애가 사실은 이츠키를 향한 일편단심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이츠키와 닮은 히로코를 보자, 첫눈에 반했던 거였겠지. 물론 히로코에 대해 이츠키도 매우 복잡하고 미안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히로코를 사랑하는 것일까? 혹시 이츠키와 닮아서 그녀의 대리만족으로 히로코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래서 결국 프로포즈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점점 드러나는 자신의 연인 이츠키의 사랑을 접하는 히로코의 심정도 편지를 통해 전달된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확인하고 싶어지는 연인의 심정. 그래서 히로코는 이츠키에게 도서대출증에 쓴 이츠키라는 이름이 사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적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을 슬쩍 던져 놓는다. 이츠키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
그럼에도 이츠키를 잊고 지냈던 이츠키에게 그것이 큰 의미가 있는 추억일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도서 대출증 뒷면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에 웃음 짓는 이츠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를 알리는 편지를 쓰지만 차마 보내지 못한다. 당시에 몰랐던 사랑, 그리고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인물에 대한 추억이 앞으로 이츠키에게 중요한 삶의 모티브가 될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는 얼마간은 흐뭇하게 사랑의 징표를 보며 웃음짓겠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중요하지 않는 지난 추억으로 묻히겠지. 하얀 눈밭 위에서 절규하며 연인을 보낸 히로코의 애닮은 의식 없이도.... 그래서 이 영화는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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