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당신이 아는 그 작품의 후속편이다. 작년 11월 일본보다 뒤늦게 개봉한 전편이 끝내지 못한 이야기의 마침표를 지니고 있는 이 작품은 원작 만화의 애독자이거나 전편을 주의깊게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씌워진 베일이 벗겨지기만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전편이 원작만화의 영화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을 얻었기에 후속작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혹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영화가 원작과 다른 어떤 방식으로 변주를 보일 것인가라는 의문도 이 영화를 통해 의도되는 또다른 관심사가 될지도 모른다.
일단 이 영화는 원작의 반쪽짜리 이야기로 결말을 짓는다. 사실 데스노트의 원작만화는 전후의 양분이 가능한 이야기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L(마츠야마 켄이치 역)과 라이토(후지와라 타츠야 역)가 대결하는 전반과 L을 계승한 니아라는 캐릭터와 라이토가 대결하는 후반부이다. 영화는 L과 라이토가 대결하는 전반부의 이야기로 영화로써의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혹시 이미 원작만화를 본 이가 지금 위의 발언이 스포일러성이라 항의한다면 그에 대한 걱정은 불필요함을 인지시키고자 한다. 이 작품의 원작 만화와 영화가 다른 방점을 지닌것은 이야기의 구조적 폭만이 아니니까. 영화는 만화의 전체적인 구조를 라이토와 L의 대결로 국한시켜 놓은 듯 하지만 그 전반부의 이야기속에 후반부의 플롯을 재구성해 넣음으로써 영화가 만화의 그것을 취함과 동시에 영화만의 특색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 작품이 전작의 결말부분에서 출발함으로써 이 작품이 전작의 이야기를 잇는 충실한 후속편임을 관객에게 확실히 입증시키며 동시에 이 영화의 두뇌싸움을 지탱하는 데스노트의 법칙을 친절하게 관객에게 설명한다. 전작의 못다한 이야기를 연결하기 전 관객의 뇌리에서 미약해졌을 핵심사항을 다시 한번 복습시키는 것이다.
만화가 L과 L이후의 캐릭터 변화로 분할을 꾀했듯 영화 역시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 전편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캐릭터를 끼워넣음으로써 전편과 다른 이야기 구조로 뻗어나가는데 원작의 독자들도 잘 아는 아마네 미사(토다 에리카 역)가 그 역할적 키워드로 자리를 잡는다. 그녀의 등장은 이야기 구조에 좀 더 복합적인 상황을 끌어내고 라이토와 L의 심리전을 좀 더 치열하게 만든다. 다만 영화가 만화에 비해 압축됨으로써 날카로울 정도로 미세하게 묘사되는 원작만화의 심리적인 대립과 갈등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다해도 어느 정도 만족감을 표시해줄만한 자격은 충분해 보인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작의 스토리를 따라가면서도 영화만의 변형을 적절히 끼워넣으며 원작의 성격을 살림과 동시에 영화라는 컨텐츠의 독자적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위의 언급처럼 이 영화에 주목할만한 성향은 원작의 변주가 얻는 영화만의 설득력인데 원작만화가 지닌 플롯의 절반만을 사용하면서도 이야기의 내러티브는 전체적이라는 것이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전개적 흐름은 원작의 흐름과 동일하지만 동시에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의 너비는 그 절반만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결정적인 변수인데 그로써 영화는 원작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셈이 되고 압축적인 외형을 지니지만 재가공의 내부구조를 지닌다.
물론 원작을 본 이가 보지 않은 이보다 영화를 더 깊게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영화가 만들어내는 상황이 원작의 이야기 형태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원작을 보지 못했기에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원작을 본 이들이 이 영화의 변형된 이야기 형태를 좀 더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이 영화를 즐기는 방식에 있어서 좀 더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는 방법론이다. 원작을 모르는 이는 영화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겠지만 원작을 아는 이는 영화를 통해 변형되고 짜맞춰진 형태를 발견하는 재미마저 누릴 수 있다.
데스노트가 지니는 매력은 단순히 스토리가 지닌 영민함만은 아니다. 그와 별개로 데스노트를 통한 심판이 지닌 윤리적 가당성에 대한 논란기질인데 과연 키라가 범죄자를 대상으로 응징을 하는 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가"와 "인정할 수 없는가"라는 문제가 수면위로 오른다. 그리고 후속편은 전편보다도 그런 심리를 좀 더 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것 같다.
필자는 데스노트가 어쩌면 "쏘우"시리즈와도 연관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두 작품은 인간에 의한 심판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연관성을 지닌다. 키라와 직쏘의 차이는 심판의 방식과 그 대상의 기준이지만 심판이라는 행위자와 수해자 사이의 공식은 대략 닮음꼴이다. 하지만 직쏘의 심판에 윤리적 물음이 뒤따르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런 물음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가 심판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개인적인 주관에 의한 목적물이 되기 때문에 그 행위가 이미 옳지 않은 행위라는 점을 관객들이 인지하게 된다. 한마디로 직쏘에 의한 심판은 관객에게 살인행위이며 그가 행하는 방법론의 끔찍함만큼 정당함이 닿지 못하는 모호한 상황이 관객을 더욱 가혹한 긴장감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스노트는 다르다. 키라가 데스노트를 통해 심판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심판은 법과 윤리를 떠나 인간의 기본적 소양안에서 옹호를 받을만한 여지를 충분히 지닌다. 그것이 데스노트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하나의 논란인데 과연 정당한 절차를 벗어나 행위의 결과만을 통해 즉결적인 심판을 내리는 행위에 동감할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의 윤리적 판단이 영화를 보는 관객을 지배하는 심리로 자리잡는다. 물론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행위는 고대사회로부터 내려온 사회적 규칙에 의해 시행되는 하나의 행위적 의식임에 틀림없다. 법과 규칙이라는 언약적인 사회적 과정을 통해 인증되지 않은 응징은 과연 합당한 정의인가라는 논란은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의 양분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다만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그 능력이 단순히 논란의 여지가 되는 산물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권력형태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단지 노트에 이름을 기재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살인인가 혹은 단죄인가라는 논란여부에서 한단계 나아가 그 능력을 지닌 인물이 어떤 이상을 지니고 그 능력을 활용하느냐에 대한 묘사가 이 작품의 또다른 방점이다. 결국 이 작품은 단순히 초월적인 능력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힘을 얻게 되었을 때 세속적인 욕망안에서 변질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를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힘을 지닌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권력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거나 쥐게 될 누군가에 대한 경고메세지이기도 하다.
어쨌든 2시간이 넘어가는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원작의 이야기를 압축했지만 구멍이 없었고 원작을 잘 아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방식의 변주가 꽤나 적절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결말은 이 영화가 지닌 가장 놀라운 이야기적 변주이다. 원작이 지닌 최종적 결말의 형태를 빌려쓴 듯 하면서도 그 외피가 전혀 다른 환경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결말은 원작의 형태와 구조를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영화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를 느끼게 한다.
어쨌든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 역시 그 끝을 보고야 말았다. 그 결말을 보고 싶어했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임과 동시에 아쉬운 이별이겠지만 그 탁월한 변신에 일단 반가움을 표하는 것이 순서일 듯 하다. 또한 L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가 제작되어 08년도 개봉을 예정으로 한다니 좀 더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사실 필자는 데스노트를 쥐고 정의를 주장하는 라이토의 모습에서 최근 사형당한 후세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후세인의 죄악이야 사형감이라지만 그를 사형시키는 상대가 누구냐라는 점은 꽤나 씁쓸하다. 대량살상무기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이라크에서 이유없이 죽어나가는 생명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가 궁금하다. 그것은 권력의 함수관계가 어느 쪽으로 유지되는가의 문제이다. 굳이 데스노트가 없더라도 우리는 불평등한 단죄를 목격하는 것이다. 만약 라이토가 현실에 있었다면 그가 데스노트에 부시를 적어넣었을지 필자는 조금 궁금하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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