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 는 <신부수업> 을 연출했던 허인무 감독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전작에서 사랑과 종교사이의 갈등을 다룬 비교적 착한(?) 로맨틱 코메디 물을 연출했던 허인무 감독은 이번에도 제대로 착한 한 소녀를 등장시켜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허브> 는 20세 여성의 몸에 7세 지능을 가진 소녀 ‘상은’(강혜정) 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어머니 ‘현숙’(배종옥) 이 늘 함께 있습니다. 상은은 현숙의 보살핌 속에서 동화 속 공주들의 수동적인 모습을 꼬집기도 하고, 왕자님의 키스를 받기위해 일방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자신만의 왕자님을 찾는 상상 속에서 즐거워하기도 하는 당차고 씩씩한 소녀입니다.
그런 그녀 앞에 왕자님 ‘종범’(정경호) 은 언제나 그렇듯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인해 나타납니다. 종범은 왕자님답게 말쑥하고 멀쩡한 외모를 지녔지만 아이들에게 집단으로 구타(?)를 당하기도 하고, 의경으로 복무하는 근무지에서도 늘 꼴통 소리를 듣는 전형적으로 약간 사회성이 부족한 캐릭터입니다.
그러한 그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걸어나오는 어리숙한 말솜씨의 상은을 처음에는 단지 외국에서 온 한국말이 서툰 예쁜 변호사로 생각하고 그녀에게 접근하지만 상은의 정신지체 사실을 안 후에는 그녀를 멀리합니다. 하지만 또 언제나 그렇듯 그 고민은 그리 길거나 깊지 않고, 다시 그녀를 찾아간 종범은 그녀와의 본격적인 사랑을 시작합니다.
한편, 친구의 건강검진을 위한 병원행에 동행하게 된 현숙은 그녀와 함께한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게 되고 이후 드라마는 급격히 최루성 신파극의 이야기로 전환합니다.
<허브> 는 착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몇몇 아이들과 상은을 괴롭히는 일부 불량 여고생들, 여타의 캐릭터 설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권력에 맛에 길들여져 있는 종범의 상관(이원종)을 제외하고는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 나쁜 캐릭터는 한명도 없습니다.
이 영화속에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영악합니다. 특히 쌍시옷 욕과 함께 인생을 다 살아본 것처럼 관조하는 듯한 말투의 상은의 친구들은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상은의 나이답지 않은 순수함을 더욱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졌을테고, 또 작기만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전혀 그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과장된 말과 행동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점점 순수함과 멀어지고 너무나 일찍 조숙해지는 요즈음의 아이들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합니다.
<20대의 몸에 10대의 머리를 가진 이와 10대의 몸에 30대의 머리를 가져버린 이의 대화>
그에 반해, 상은이 일을 도와주는 비디오가게에서 털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달라고 위협하는 여고생들에게 한 손에는 <미녀와 야수>를 한 손에는 <킹콩>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순수하며, 생전 겪어보지 못한 사랑의 아픔에 텅 비어버린듯한 가슴을 채우기 위해서 목까지 차오르도록 밥을 마구 입에 밀어넣는 그녀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동경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씩씩하게 정말로 털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불량청소녀들에게 권해주는 우리의 상은>
또, 상은을 위해 헌신하는 현숙의 모성애 가득찬 모습이나, 상은을 위해 상은의 위기상황에 몸을 바쳐 상은을 구하고도 상은과 자신을 위협하던 상대가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물론 허풍이 약간 섞였을지라도) 반격하지 않고 맞기만 했다는 종범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뱀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어리숙한 왕자님 종범>
하지만 ‘착한’ 영화라고 ‘좋은’ 영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상은의 정신지체를 알아차리고 갑자기 상은을 멀리하며, 심지어 상은이 손수 마련해온 선물을 내팽겨치고 내용물을 발로 짓이기까지한 종범은 이별의 단호함에 반해 너무나 쉽게 관객들에게 별다른 고민의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다시 상은에게 돌아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돌아서더니 금새 돌아와서 이런 망발을...>
또, 상은이 현숙의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게 되는 계기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상은의 친구의 우연한 한마디로
일방적으로 처리되어 버리며, 갑작스러운 감정의 등고선은 그 이후로도 조절이 되지 않습니다. 시나리오는 상은을 두고 떠나가야만하는 현숙의 아픔과 엄마를 잃기 싫은 상은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급급하여 감정 조절의 호흡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따라서 후반부에 나타나는 여타의 최루성 드라마에서 자주 볼수 있는 작위적인 설정들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긴 충분하지만 저처럼 ‘작정하고 관객을 울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느껴지는 설정들을 좋아하지 않는 일부 관객들의 눈에는 거슬릴수도 있습니다.
<이래도 안울래!!?>
'금식’ 의 글자 의미를 모르고 자신의 머리조차 스스로 묶지 못하는 상은이 현숙의 도움 없이 현숙의 미역국을 손수 끓이고, 대형슈퍼에서 지불개념이 없이 상품을 무작정 가져가려고 하면서 동시에 현숙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현숙이 부재하는 미래의 자신이 사용해야할 물건들을 일일이 심지어 ‘각’ 까지 잘 잡아 챙겨 현숙에게 보여주는, 이외에도 현숙이 떠난 이후에도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상은의 그야말로 너무나 ‘어른’스러운 모습들은, 정신지체에 대한 상은의 설정을 약간 모호하게 만듭니다. 상은의 성장은 이해가 가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성장이 들쑥날쑥 하면서도 때론 너무나 갑작스럽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신지체 장애우에 대한 제작진의 세심한 취재가 뒷받침 되지 않기도 하려니와 급작스러운 변화(현숙의 죽음)를 충분한 고민없이 단지 관객들을 울리기 위해서만 진행하는 시나리오의 리듬부족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허브> 는 저처럼 이미 ‘필터’ 가 씌워져 버린 일부 관객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그들의 모습에 웃고, 울고, 마지막 장면의 상은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배종옥의 안정적인 연기와 강혜정의 기대에 부응하는 열연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연인이였던 조승우 못지않게 장애우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낸 강혜정은 말투와 작은 표정부터 시작해서 상은의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들어 소화시켜냅니다. 비록 강혜정의 열연에 영화가 기대는 모습(후반부의 과한 클로즈업 등)은 없지않아 있지만 박찬욱 감독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대로 그녀는 열정적인 여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찰리채플린이어도 괜찮아(?)>
조용히 자라나 꽃이 없이도 향기를 풍기는 <허브> 처럼 그녀도 척박한 우리나라 여배우 기근현실에서 조용히, 하지만 언제나 향기를 뿜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강혜정의 치열교정 때문에 변해버린 모습을 두고 너무 비난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변해 버린 그녀의 모습이 모두들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시는 거겠지만 안그래도 그녀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또 힘들었을텐데 그러한 그녀를 향해 확인사살용 돌을 던지기 보다는 위로가 필요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또, 연기자는 연기로 평가받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이 영화로 힘든 작금의 현실을 딛고 대한민국의 대표 여배우 중에 한명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입니다.
영화명 |
허브 |
감독 |
허인무 |
주연 |
강혜정, 배종옥, 정경호 |
장르 |
드라마 |
예상주관객층 |
10대~30대 |
영화의장점 |
1. 강혜정과 배종옥을 비롯한 주연배우들의 열연
2.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만한 시나리오
3. 연령층을 아우르는 모든 관객이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착한 내용 |
영화의단점 |
1. 단순히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내기 위한 후반부의 리듬 부족
2. 영화 중간 중간에 보이는 진부한 설정들 |
최종평가 |
흥행성 |
B+ |
작품성 |
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