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동구의 성장 영화
동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그냥 보기엔 너무 비루하고 힘들고 소외된 듯 하다. 그러나 영화의 느낌 자체가 따뜻해서일까, 어쩌면 굉장히 행복한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이 영화에선 뚜렷하게 두드러지는 악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과거에 권투를 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는 걸핏하면 '가드를 올리고 상대방을 주시해라'고 사회의 무서움을 설파하고 폭력을 행사하지만, 기껏해야 동구 아버지의 권력은 가족 또는 술집에서 부딪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나 통하는 권력이다. 주먹 한 번 잘못 휘둘렀다가 직장에서 쫓겨나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아버지는 정작 자신은 '가드를 올리고 상대방을 주시'하지 못한다.
거울 앞에서 루즈를 바르는 동구를 애써 못본척 피하는 모습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차마 인정하기 싫다는 것인데, 동구가 치마를 입고 저항하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씨름을 하는 아들의 힘은 세서 아버지의 폭력을 힘으로 극복한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반응은 어쩌면 아주 비굴하게도 느껴진다. 아니면 '역시 아버지구나'라고 느껴지는데, 이는 동구 아버지가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고 자식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간 어머니는 동구가 바라는 여자로의 전환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동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힘들고 외로운 과정이라는 것을 주지시키지만, 결국엔 동구를 지지하고, 아버지를 설득하는 역할도 맡게 된다.
친구 관계는? 남자 고등학교나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남자들만 모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적 캐릭터가 겪어야 하는 고난은 생각보다 크다. 군대에서는 그것 때문에 자살하는 사병들도 나올만큼. 그러나 동구를 괴롭히는 친구들의 행동은 기껏해야 등에 쪽지를 붙이거나(쪽지는 붙을 때마다 바로 바로 친구에 의해 제거된다) 별로 무섭게 생기지도 않은 쌍둥이 형제의 놀림에 불과하다. 가장 친한 친구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동구가 자기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까지 여긴다.(물론 동구는 그건 희망이 아니라 그저 살고 싶을 뿐이라고 반박하지만)
남성적 운동을 하는 씨름부 선배들도 동구가 하는 여성적 행동이나 말이 그다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준다.(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환 수술 이후의 동구를 계속 좋아하고 응원한다. 동구는 스스로 '이런 넓적한 발에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여성'이라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이 정도로 주위의 폭넓은 이해를 얻어가는 성 전환자를 만난다는 건 현실에서는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동막골]의 귀여운 인민군 병사로 눈길을 끌었던 류덕환의 연기폭은 상상했던 것 이상을 보여줬다. 특히 그 동안 여성적 성격이 강한 남성 연기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있던 여러 상징들을 과감히 접고 대신에 살짝 살짝 드러내 보이는 손짓이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여성적 느낌은 정말 대단한 연기였다.
문제는 백윤식이 맡은 씨름부 감독 역할인데, 만화 [슬램덩크]의 감독을 연상시키는 이 캐릭터는 분명히 한국적이라기보다는 일본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씨름부 감독으로 씨름 연습을 주도하지도 않고, 기술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인생 상담을 통해 교훈을 주지도 않는다. 그냥 존재하는 것 만으로 씨름부원들의 결속과 목표를 이끌어내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데, 최근 백윤식이 맡은 배역이 주로 스승의 역할이 많아 다른 영화의 이미지와 겹쳐보였다.
2006년을 마감하는 청룡 영화제에서 신인 남우상, 각본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자가 되고 싶은 동구가 '씨름' 대회에 출전해 성 전환 수술비 마련을 시도하는 영화로 이질적 요소일 수도 있고, 반대적 의미일 수도 있는 '천하장사'와 '마돈나'의 용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우선 그 상상력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무거운 주제를 따뜻하면서도 가볍게 그림으로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주제 의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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