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모야는 오늘도 감독과 스텝들에게 혼이 나고있다. 그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스텝인데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이다. 밖에는 일자 모양의 무지개가 뜨고 있었고 그것을 디카폰으로 촬영한다. 전화가 왔다. 아오이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다. 아오이의 집에 방문한 토모야와 방송국 PD 히구치... 아오이는 미국에서 일하고 있던 도중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그녀의 유골을 가지러 가족들이 공항으로 향하고 앞 못보는 그녀의 여동생 카나도 동행한다. 토모야는 오래전 아오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나는 사실 '추억은 아름답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설경구)가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던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사람이라고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이와이 순지가 들고온 신작 '무지개 여신'은 많은 홍보 자료에서 '러브레터 그 후...'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1999년 '러브레터'와 분명 다르다. 감독이 아닌 제작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수함은 '이와이 월드'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와이 순지 스타일의 영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회상으로 돌아가면 토모야가 아오이를 처음 만나는 것은 아오이가 일하는 음반 가게의 같이 일하는 여인에게 관심을 갖고나서부터이다. 그는 스토커처럼 따라 붙다가 그 여인을 포기하고 아오이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아오이가 몸담는 대학교 영화 동아리에 같이 활동하게 된다. 대학졸업후 아오이는 방송국으로 취직을 했지만 토모야는 계속 알바 신세에 머무르게 된다 때마침 히구치가 미국에 아는 친구의 친구에게 기술을 익혀오라고 충고하고 그녀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토모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준다. 바로 지금 그 방송국 막내 자리 말이다. 그러나 토모야는 자신 때문에 아오이가 일을 그만두었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던 와중 오래전 스피드 미팅에서 만난 치즈루와 사랑을 하게 되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나이를 속여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아오이의 사고 소식...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는지 그는 그녀에게 일자 모양의 무지개를 찍어 그녀의 휴대폰으로 보내고 있었다.
원래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세 가지였다.
이와이 순지의 제작이라는 점과 아오이 유우와 우에노 주리가 나온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오이 유우와 우에노 주리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었다. 전작이 두 사람이 친구 관계였다면 이번에는 언니와 여동생의 관계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아오이 유우의 분량은 적었고 우에노 주리와 남자 주인공인 이치하라 하야토의 비중이 높았다. 이치하라 하야토는 사실 잘 모르는 배우였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의 꽃미남 배우로는 오다기리 조, 츠마부키 사토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일본 드라마와 영화계에서는 떠오르는 꽃미남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도 그렇고 영화 속의 영화인 '지구 최후의 날' 모두 코닥 필름으로 촬영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영화에서 아오이가 코닥 필름 예찬론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인데 엔딩 크레딧에 보통 극장에서 상영되는 음향(dts, dolby 등)에 관한 정보와 더불어 같이 등장하는 것이 무슨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느냐는 정보인데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코닥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것 만큼이나 훌륭한 PPL은 없다고 본다.
영화에서는 8mm 촬영 카메라에 규격도 안맞는 코닥 필름(영화 촬영 필름)을 넣어 촬영했다는 대사는 더이상 상품 홍보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이야기를 보면 실제로도 이 방식으로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ZC1000와 코다크롬 40의 경연'은 실제로 그 필름 색에 반해버린 이와이 순지가 학창시절에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해낸 최강의 방법이었다. 원래라면 8mm 카메라 ZC1000에는 코다크롬 40의 커트리지는 장치할 수 없지만 별도의 커트리지를 끼워 넣어 장착하는 방법을 사용. 극중영화 '지구 최후의 날'은 실제로 이러한 방법으로 촬영된 것. 촬영이 마친 이후에도 이 괴상하게 촬영된 8mm 필름은 일본이 아닌 미국, 스위스으로 현상을 하였고 일본에 돌아와서도 가위로 잘라 네가 편집을 한 다음 디지털 테이프로 변환, 또 다시 편집을 한 다음 35mm로 재탄생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오래전 나 역시 단편영화를 출연해 본 경험이 있는지라 이들 단편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다. 그야말로 막노동에 가까운 촬영이 되풀이 되고 편집하는 장면은 보지는 못했어도 어렵게 찍은 만큼 어렵게 현상하고 편집하여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장편이 되었건, 단편이 되었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고생 아닌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남녀의 사랑이야기 만큼이나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영화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러브레터' 만큼의 감동은 다가오지 않았다. 러브레터를 봤을 때가 고 3이었으니 말이니 사랑에 대한 감정이 충만하던 시대였는지도 모르지만 어른이 되고나서 나 역시도 현실적인 사랑만 생각하게 되다보니 이런 영화에서 감동이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것에 대한 의문을 안 갖을 수가 없었다.
요즘 무지개를 본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저 무지개 넘어에는 과연 어떤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제 겨울이라 무지개 보기는 당분간 힘들겠지만 우리 맘 속의 무지개를 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와이 순지는 '러브레터'의 하얀 설원 대신 이제는 일곱 색의 무지개을 우리에게 선사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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