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휩쓸려간 한국 블록버스터의 운명...
한마디로 이 영화. 재미없다.
성공(?)했다는 해적 '씬'의 주위엔 여전히 비루해보이는 동료만이 있을 뿐이고, 강세종의 추적은 너무 수월해, 한국 정보부의 힘이 국제적으로 이렇게 큰 역량이 있었나 자부심까지 느껴질 정도다.
'씬'보다는 훨씬 성공한 듯 보이는 동남아시아의 장물아비. 아무리 대형 장물아비라고 해도 핵관련 물건을 거래하겠다고 찾아온 첫 만남에서 너무 쉽게 '씬'에 대한 많은 정보를 흘리고(그러면서 죽을 땐 씬에게 당할 거라며 경고를 하는 것인지), 싱가폴까지 안내를 자청한다. 그리고는 공항에서 먼저 빠져나가고. 왜? 강세종을 없앨 생각이면 자신의 소굴에 찾아왔을 때 쉽게 사로 잡아 '씬'에게 넘겨줄 수도 수도 있었는데.
그리고 너무 쉽게 '씬'의 누나(씬은 아주 오랫동안 찾아 헤맸을 그 누나를. 역시 한국 정보부의 역량인가?) '최명주'를 찾아내어 너무 쉽게 '씬'을 만나, 너무 쉽게 아지트로 데려 온다.
그리고 너무 쉽고 자연스럽게 '씬'의 작전을 알아내서 말 잘 듣는 동료들과 함께 '씬'의 배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무슨 얘기냐하면 모든 게 너무 긴장감 없이 스리슬쩍 넘어간다는 얘기다.
씬과 강세종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도 좀 생뚱맞다. 특히 강세종은 씬의 어릴적 얘기부터 씬이 작성한 편지까지 읽었기 때문에 안쓰러운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고 이해되지만, 강세종을 전혀 모르는 씬이 마지막에 갑자기 그런 감정의 폭발을 보여준다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건 [히트]에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오랫동안의 쫓고 쫓김이 서로에 대한 존중(강한 상대로서의)의 태도로 나타나는 게 더 올바른 태도로 보인다.
그리고 강세종의 마지막 작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목적은 핵물질을 터트리려는 씬을 저지한다는 것인데, 잠수함을 보낸 미국의 목적 또한 동일하다고 보인다. 만약 처음부터 한국 대통령과 국방부가 작전 수행에 적극적이었다면, 한국 잠수함을 보내지 않았을까?
씬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실제 강세종은 씬에게 죽지 말고 살자고 말하긴 하는데) 강세종이 동료들에게 한 말은 단지 비장감을 넣어주기 위한 쇼에 불과한 것인가? 강세종은 총각 동료들에게 어차피 돌아올 기름이 없으니 살아 돌아 올 수 없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중요할 수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잠수함의 어뢰 2방을 정통으로 맞고도 그리 크지도 않은 민간 상선이 완파되지 않고 버틴다는 것도 무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현실과 거리가 먼 얘기같고, 완파되지 않았다면, 미국 잠수함이 제2, 제3의 어뢰를 연이어 발사했을 거라는 의구심도 든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강세종이 마지막 배 위에서 서 있던 장면은 실제 탈출해서 살아남은 것인지? 어떻게 탈출해서 살아남은 것인지? 그냥 감독의 상상인지 여전히 헷갈리는 장면이다.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거액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태풍'은 헐리웃의 스케일에 이미 길들여진 한국 관객들에게 스케일로 승부를 내는 건 적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비싼 실험에 불과하다. 특히 곽경택 감독은 자신이 실제 겪은 얘기를 다룰 때의 연출 솜씨와 판이한 결과물을 내놔, 그 역량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으며, 역시 영화는 그 장르를 떠나 스토리의 완결구조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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