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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스펙타클의 발굴 묵공
kharismania 2006-11-20 오전 3:00:23 9700   [2]

최근 아시아 영화 시장이 심상찮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 이 세나라를 필두로 한 동아시아권의 필름들은 하나의 밸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할리웃의 자본과 물량에 밀려 하나씩 쓰러져가는 해외 시장의 정황속에서 아직까지는 희망을 유지하는 아시아 시장의 세나라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합작영화 붐이 비단 최근의 사례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규모나 작품면에서 흡족한 성과를 일궈내지 못했던 것은 자본의 문제가 아닌 방식의 문제이며 소통의 결함이 컸다. 한류스타를 필두로 한 캐스팅은 문화적 교류이전에 상업적 흐름의 추구로 이해되었고 손을 잡은 나라간의 원만한 이해가 이뤄지기 이전의 견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쩄든 이 작품은 한중일 세나라를 비롯 대만과 홍콩까지 다섯나라가 1600만불 규모의 투자를 쏟아부은 블록버스터이며 그 규모만큼이나 노림수가 큰 작품이라는 것이다.

 

 일단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고대 역사지식의 기반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지식적 기반이 이 영화를 즐기는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지식의 기반이 가져다주는 관람시야 확보는 아무래도 충분조건임은 확실해보인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의 역사중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중 하나지만 그만큼 문화와 사상이 가장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하다. 공자나 맹자, 순자 등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동양철학이 다각도로 개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시대처럼. 그것은 다양한 국가가 건립되고 제위에 오르며 국가마다 채택하는 사상적 기반의 차이가 제각기 다양한 사상들의 독자적 연구와 발전을 꾀함을 가능케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그 시절의 제자백가(家)들의 사상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다. 적당한 시대적 배경과 묵가(墨家) 사상 정도의 데이터만 입력한다면 이 영화를 위한 배려는 어느 정도 취했다고 여겨진다.

 

 군웅할거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명의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아무래도 지금까지 보아온 무협영화의 잣대위에 올려놓는 것이 거북스럽다. 이 영화가 추구하는 것은 개인적 무공 독무(獨舞)가 아닌 역사를 기초로 한 공성과 수성의 집단적 전투 군무(群舞)이기 때문이다.

 

 사실 동양권의 영화에서 이같이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사실적 전투를 다룬 영화는 일찌기 없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서양에서는 이미 수차례 이뤄진 성과이지만 동양권에서는 이루어진 적이 없는 성과의 첫발을 내딛으려는 것만 같다. 대규모의 군대가 집결하여 펼쳐지는 공성전의 모습은 그 규모면에서 사실적인 스펙타클을 자랑한다. 고대 군사적 전술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전투장면의 묘사는 행해지지 않았던 전례로 비추어 상당히 흥미로운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성과 역시 상당해보인다. 투석기와 발석차 그리고 진형을 갖춘 전투태세의 위용과 수장들의 꾀하는 전략에 의한 일진일퇴의 공방은 사실적이고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마치 제갈량과 사마의의 대결을 연상시키듯 펼쳐지는 혁리(유덕화 역)와 항장군(안성기 역)의 대립국면과 -역량을 떠나 그들이 취하는 대립적 국면 자체가- 그들이 취하는 전략적 공세의 양상은 마치 삼국지를 읽는 것만 같은 흥미로움이다. 물론 그 전략의 묘미와 전투적 긴밀감은 삼국지에 비하면 약하지만 비유대상의 부적절함을 고려했을때 이영화의 그것은 꽤나 만족스럽다. 특히나 전투의 전개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움의 극명함이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겸애와 비공이라는 묵가 사상을 기반으로 전쟁을 이끌지만 그 끔찍한 실태앞에서 괴로워하는 혁리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심리묘사와 더불어 반전적인 사고를 구체화시킨다. 전투가 긴박한 상황에서는 살리고 죽이는 것을 판가름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무자비한 살상을 금해야한다고 말하는 그가 전쟁을 지휘한다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한 것이다. 구별과 차별없이 타인에게 자비를 배풀라는 겸애의 정신이 바탕이 되는 묵가의 전도자는 수성의 목적이 적의 살육이 아닌 동료의 생존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수성에 일조하는 것이 전쟁으로 인한 무자비한 살육과 침탈을 막음으로써 평화에 기여하는 행위라고 믿는다. 하지만 전쟁의 상황은 그에게 심한 내적갈등을 부른다. 자신이 따르는 진리와는 상반되는 현세적 모습안에서 자신이 취한 선택적 행동이 과연 합리화될 수 있는가라는 사실안에서 고뇌한다.

 

 이는 이상주의가 그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현실안에서 설득력을 잃었을 때 그 이상주의는 과연 존재적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한 고민과 같다. 하지만 더불어 혁리가 주장하는 묵가의 사상은 평등적 박애주의와 맞닿고 공산주의적인 사상과도 결부된다. 구별과 차별없이 인정과 자비로 비롯된 사랑을 베풀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라는 그들의 겸애는 시대적으로는 착오적이었지만 현대인간의 도리에서는 지극히 존중받아야 하는 사상인 것이다. 사상적 훌륭함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용성이 있는가 혹은 단지 이론만 고결한 궤변에 불과한가의 문제앞에서 혁리는 단호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사상이 옳다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이 강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지는 것은 진리 그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닌 그것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뤄지는 결과적 희망이다. 혁리가 취하는 행동적 신념은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와 모순되는 현실적 선택이지만 그것은 믿음이 기반이 되는 행위라는 점 안에서 그 진리적 가치는 세상과 소통될 구심점을 찾게 된다. 그의 행위에 모순을 만드는것은 혁리 개인이 아닌 사회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바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혁리가 아닌 현실을 우둔하게 만드는 민중적 무지함과 지도자의 우매함이다. 사회라는 구조적 모순이 낳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능력 상실은 시대를 떠난 범세대적 고민이 아닐까. 결국 본질적인 것에 대한 신뢰는 그것의 유용함을 떠나 추구되어야 마땅한 가치라는 것. 그리고 그 진리는 세대를 넘어 전승되어야 한다는 것. 혁리는 아이들을 붙잡고 양성을 뒤돌아가며 그렇게 관객을 설득한다.

 

 영화의 축이 되는 혁리를 비롯해 그의 대립항이 되는 항장군, 그리고 그 주변에 자리잡은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 저마다의 역할적 매력을 살리며 비중에 관계없이 캐릭터의 무게적 편중을 막는다.  

 

 혁리와 대비되는 인물은 그와 대결하는 항장군이라기보다는 양왕(왕지문 역)이다. 그는 강력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군주다. 그는 타인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귀가 얇고 자신을 모해한다는 말을 민감하게 여길정도로 대범하지 못하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비극성이 심화되는 것은 그의 치졸한 성품떄문이다. 이는 우둔한 지도자로 인해 국가전체가 어떻게 도탄에 빠질 수 있는가를 극명히 보여준다.

 

 그에 반해 항장군은 적이지만 명예를 높이드는 자다. 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전쟁을 이끈 장본인으로써의 책임을 짊어진다. 물론 개인적인 자존심이 지나쳐보이기도 하지만 장수로써의 기개와 신의를 지키는 태도, 죽음앞에서도 의연한 절개는 영웅적 기질을 가진 장수로써의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스펙타클한 공성전이 웅장하면서도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전쟁씬이 남기는 것은 박진감 넘치는 쾌감보다는 무의미한 참혹함이다. 중국의 역사적 토대위에 구축한 스펙타클은 지나친 비약과 낭만성으로 포장되기만 하던 역사적 배경이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질 수 있음을 실현한 사례가 될 법하다. 단순히 무협의 배경처럼 여겨지던 역사와 시대가 이젠 중심으로 자리잡고 묘사되는 것이다. 이는 동양이라는 하나의 캐릭터가 단순히 배경처럼 소비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트로이나 반지의 제왕처럼 역사와 문학을 가로지르는 동양적인 스펙타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실례가 되어줄 것만 같다.

 

 현재 제작되고 있는 또다른 아시아 프로젝트인 '삼국지-용의 전쟁'은 이 작품을 계승하는 또하나의 기획물이다. 이 영화의 성패가 큰 영향을 미칠 듯 하지만 이 영화는 꽤 고무적이다. 마치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처럼 이 영화는 앞으로의 가능성과 다양한 진로를 예감케한다. 규모적인 스펙타클의 확대만이 아닌 스펙타클의 주체가 되는 동양이라는 본질적 유물의 발굴 가능성으로써 이 영화는 상당한 가치를 지니는 것만 같다.

 

                       -written by kharismania-


(총 0명 참여)
egg0930
멋진 영상...잼있게봤습니다   
2007-01-05 10:12
1


묵공(2006, A Battle of Wits / 墨攻)
제작사 : 보람영화사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mukg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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