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로 알려져 있는 ‘노스탤지어’(nostalgia)라는 말은 사실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
움’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부재하는 것의 고통’,또는 ‘알지 못하는 것의 아픔’을 뜻하기도 한다. 사라져 없어
진 것에 대한 닿을 수 없는 그리움,노스탤지어의라는 말은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강하게 내포한다.
언제라도 되돌아가고 싶은 공간,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돌아갈 수 없는 공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환유되는 아이러
니. 어쩌면 향수란 그 모순 속에서 더 간절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머니라는 존재도 그럴 것이다. 요나
콤플렉스나 자궁 회귀 본능과 같은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용어는 ‘어머니’가 강한 향수를 자아내는 존재임을 암시
한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고향,그것이 곧 어머니인 셈이다.
페드르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귀향’은 이러한 맥락에서 향수와 어머니가 왜 늘 동시에 떠오르는지를 잘 보여준
다. 노스탤지어라는 단어가 선명히 각인될만큼 제목은 ‘돌아옴’을 환기시킨다. 과연 어디로,그리고 누구의 귀환이
란 말인가?
돌아온 자는 바로 어머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어머니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마법적 공간을 조형하는 데 탁월한 스페인 영화의 전통을 입증하듯 ‘귀향’ 역시 초월적 존재를 현실의 공간 속에
융해해낸다. 산 사람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은 상황 속에서 관객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엄마’라는 존재의 유별난
친근성이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 할지언정 무섭지 않을 단 한 사람이 바로 ‘엄마’인 것이다.
영화 ‘귀향’의 힘은 돌아온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에 그가 유령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는 그 발견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것은 다시 볼 수 없었던 엄마가 돌아온 것,그 자체이다. 이 과정 속에서 맏딸 라이문다는 가슴 속 깊이 간직
해왔던 엄마에 대한 미움과 자신에 대한 혐오를 씻어내게 된다. 엄마가 된 라이문다가 딸을 위해 희생하면서 그제
서야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은 세상의 절대적 원리로서의 모성을 다시금 생각케 한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 공정 속
에서는 특유의 미를 채 발산하지 못했던 페넬로페 크루즈는 모국어의 세계로 귀환해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어머니에게 배운 ‘귀향’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눈물짓는 모습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만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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