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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삼풍이 남긴 슬픔보다는 추억을 이야기하다... 가을로
songcine 2006-10-28 오후 3:36:48 1003   [4]

 

 

1995년 6월 29일...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백화점 하나가 사라졌다.

사랑하는, 그리고 결혼을 앞둔 현우는 민주의 사고 소식에 망연자실한다.

몇 년이 흘렀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일을 하고 있다.

검사... 그가 말하던 정의구현은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이고 그는 여행을 결심한다.

민주의 아버지가 현우에게 건내준 수첩하나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모래사막 언덕을 시작으로 민주없는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 세진이란 여인이 그의 여행에 동참한다.

그러나 세진의 행선지와 현우의 행선지는 겹쳐있다.

가을에 떠난 여행... 그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1995년 6월 29일...

주소는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675-3번지...

시설물 용도는 백화점...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언론은 937명, 정부 국정브리핑에는 938명 부상으로 표기)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소울메이트의 정의를 이야기하고 '혈의 누'에서 한국식 미스테리 사극을 만들었던 김대승 감독이 다시 맬로로 돌아왔다.

그리고 민감하고 무거운 소재를 들고 왔다.

삼풍백화점...

 

나는 이 때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갑자기 정규방송을 중단하더니만 TV에서는 폭격을 맞은 듯한 건물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람들...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이런 것 때문에 못보여준다는 것에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재미없는 사고 수습장면만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11년이 지난 지금에 우리는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때 그 상황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악몽같은지도 모르겠다.

부산국제 영화제의 올해 개막작은 바로 이 작품 '가을로'였다.

영화는 삼풍백화점 사고라는 실제 이야기에 러브 스토리를 덧입혔다.

거기에 로드무비의 설정을 추가했다.

추억을 끄집어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 속에 우리는 귀를 기울인다.

 

이 영화는 분명 삼풍백화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삼풍백화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이야기와 그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로 그려지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심한 고통을 겪고 있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물론 고통스럽지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듯(절대 그럴 수 없지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현우는 민주가 남긴 수첩 속의 여행지로 여행을 떠난다.

신혼여행을 떠나려던 그녀의 계획이 담긴 여행 수첩이었다.

하지만 가슴만 더 아파지마고 세진이라는 여인까지 등장하여 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우이도의 모래언덕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수많은 여행지를 돌고 돌면서 민주가 남긴 추억을 같이 공유한다. 그러나 이미 그 추억을 공유한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민주와 같이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세진이었다.

폐쇄공포증에 시달리고 그 때 기억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연이 많은 그 여인은 현우와 여행지가 겹처지게 되면서 그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영화는 한 없이 아름답다.

민주와 현우와 세진이 돌아보는 그 여행지는 하나같이 아름답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초반에 시끄럽고 어지러운 분위기는 그래서 영화의 중반에 이르면 차분하게 변화된다.

전에 우리가 봤던 영화처럼 위기가 닥처오는 절정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에서 절정은 사실 없었다. 아니, 김대승 감독은 절정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김 감독은 이 영화가 결코 눈물을 쥐어짜기 위한 영화는 아니며 그렇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니깐 이 영화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보다는 그 살아남은 사람들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추억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슬픔보다 즐거움이 더 많았으니깐...

 

우이도를 바라보며 민주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모래언덕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라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의 민주가 남긴 수첩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지금 우리마음은 사막처럼 황량하다. 하지만 이 여행이 끝날 때는 마음속에 나무숲이 가득할 것이다."   

물론 민주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것은 아니지만 황량한 삶, 그러니깐 외로속에 나무숲(새로운 사람, 새로운 삶)이 나타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영화는 1995년을 이야하지만 어느 순간 시간경과가 생긴다.

그러나 김대승 감독은 이것을 표시하지 않았다.

바로 영화속의 사건으로 등장하는 '한양 글로벌 사건'부터가 시간 경과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몇 년후'라는 친절한 자막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 경과를 이야기하는 부분이라서 혼란이 왔다.

 

더구나 이 작품에는 아무 미세한 옥의 티가 하나 숨어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의 구호현장에 현우는 멍하니 서 있는데 구호품 사이로 라면도 보이고 김상자도 보인다. 하지만 라면 상자에 붙어 있는 '멀티팩'이라는 단어가 거슬린다. 왜냐하면 이 당시 라면은 묶음포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할인매장이 등장하면서 부터 묶음판매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자칫 옥의 티가 될 뻔한 부분은 1995년에 등장한 YTN의 그림이다.

그런데 케이블 뉴스체널 YTN은 1995년 개국을 한 것이 맞기 때문에 옥의 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나 오히려 공중파 뉴스체널의 자료화면 장면을 보여준게 더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물론 영화속 장면은 실제 무너진 백화점을 그대로 재연한 세트이다.)

 

백화점의 붕괴 장면은 실감이 났지만, 다만 신호등 미니어처는 좀 허술해 보였다.

물론 중요한 것은 백화점 붕괴장면이므로 그것의 미니어처에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더 꼼꼼하게 살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는 무선 호출기(삐삐)가 연인들의 통신 수단으로 등장한다.

휴대폰보다는 호출기가 더 잘나가던, 많이 보급되던 시대였으니깐...

하지만 시간 경과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는 휴대폰을 든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

세상은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영화속 민주와 현우의 사랑은 바로 이 아날로그 방식의 사랑법인 것이다.

'바로, 즉시, 빨리'의 디지털화가 아닌 '느리게, 여유를 가지고' 사랑하는 아날로그식이다.

호출기는 당시로 생각하면 참 불편한 도구이자 편리한 도구이다.

바로 호출을 할 수는 있지만 호출한 것을 확인하려면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긴 줄이 그 곳에 서있다면 더 난감할 것일테고...

 

김대승 감독은 아마 이걸 묻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살아고 있는 사랑법은 디지털인가, 아니면 아날로그인가?

우리는 디지털화된 환경에 살고 있으면서 아날로그식 사랑법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내 생각에 동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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