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영화의 재키 걸로 김민이 출연하게 되어 크랭크인때부터 떠들썩하던 영화가 바로 이 엑시덴탈 스파이이다. 터키와 홍콩 그리고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된 이 영화에서 세 아시아권 나라들의 느낌은 각각 다 다르다. 터키에서는 따뜻한 햇살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북적임과 정열이, 홍콩에서는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모습이, 한국에서는 한적한 산길의 여유로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엑시덴탈 스파이는 북한의 스파이가 터키에서 공작활동을 할때 숨겨놓은 바이러스의 추출물을 둘러싸고 터키와 한국에서 사건들이 일어난다.
잠에 들면 이상한 꿈을 꾸는 벅은 고아로 자랐다. 그런데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벅의 꿈에서 특이한 것이 윤곽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두 남녀가 벅을 '아가야' 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엑시덴탈 스파이가 한국 사람이 나오는 영화인 줄 몰랐다.
후에 벅은 한국으로 망명한 박원정의 친자로 밝혀지면서 그가 남긴 유언을 따라 게임을 하기로 결심한다. 'Wait for me'라고 새겨진 박원정의 아내 묘비에서 벅은 힌트를 찾고 터키은행에 맞겨져 있는 돈을 거머쥐게 된다. 유난히 직감이 잘맞는 그에 있어서 이 영화적 사실은 너무나도 매끄럽다.
그러나 똑같은 것도 여러번 써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후반부에 와서는 직감에 의존해서 모든 일을 풀어간다는 엉성한 설정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돈을 찾는 과정까지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는 성룡을 보면서 예전의 성룡의 영화에서 보여지던 꼬물꼬물한 맛은 느껴지지 않고 쑥 빼어놓아 싱겁기 짝이 없었다. 역시 이점은 나중에 바이러스를 찾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보여진다. 어떤 역경없이 직감에 의존하여 12시를 알리는 시계를 보는 그의 모습에 감독이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미궁속에 빠져들지만 별의미없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자 씁쓸함이 밀려올라온다.
게다가 재키 걸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으던 김민의 연기는 외국영화에서 낯익은 얼굴이 생겨났다는 것 외에는 주목할 부분이 없었다. 줄곧 그녀의 연기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시종일관 출연하는 그녀가 왜 나오는 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기자라는 신분으로 한국에 온 벅에게 접근하는 카르멘을 보면서 극비사항의 일인 바이러스의 도난사건에 대해 기자가 그리 자세히 알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기자인척 하는 엉성함이 눈에 쉽게 드러났으나 주인공이 어리벙벙한 건지 아니면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까닭인지 무사히 넘어갔다. 첫장면에만 잠시잠깐 나오는 줄 알았던 김민은 존재감없이 그렇게 계속해서 영화속에 등장하고, 터키에서 벅이 스쳐지나가며 사랑을 느끼게 되는 비비안 슈는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매력만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물론 신비스럽게 보이던 그녀의 정체가 한몫을 더했다는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두 재키걸의 등장과 비교와 비희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 같던 영은 허무하게도 다량의 마약투약으로 죽고 만다. 이 두 재키걸의 향방은 앞으로 쭉 지켜봐야 할 문제인 듯 싶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성룡의 액션은 늘 그의 영화에서 보아오던 것과 비슷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맞는 장면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과거 성룡의 영화는 정말 불쌍하리만큼 성룡이 많이 맞았었다. 과연 저 사람이 저렇게 맞으면서 저 영화를 찍고 멀쩡히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말이다. 그러나 엑시덴탈 스파이에서는 성룡의 무모하며서도 감칠맛나는 액션연기보다는 터키탕에서부터의 누드로 웃음을 자아내는 연기가 더욱 돋보인다. 역시 그도 늙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헐리우드로의 배급문제를 쉽게 하기위함이었을까?
여담으로 이 영화에서 한국의 정치자 수용 병원이란 특수한 병원이 나온다. 마치 교도소를 방불케하는 이 병원은 한국의 현재상황를 모르고 찍은 내용인지 하는 생각이 들게끔한다. 칼기폭파사건때에도 김현희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경찰들이 깔려서 지켰던 걸로 알고 있는데 죄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특수 병원이라는 이름아래 방문이 철창살로 되어 있고 감방의 분위기인 곳에 열악한 의료 장비를 갖춰놓고 망명자를 보호 하고 있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금치못했다. 비록 영화적 설정이지만 만약 이 영화가 외국 시장에 나간다면 한국의 위상이 어찌 보일런지 걱정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