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 피어나는 사랑은 특별히 감동을 더해준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던 모르던 적군이라 칭해지는 모든 사람을 죽여야만, 그래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고 자신이 소속된 편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공식적인 살인게임(?) 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미 형성된 인간관계 또는 그러한 상황을 통해서 형성된 인간관계는 늘 그 속에 처한 사람들의 갈등의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므로….. 우리는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영화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비극적이면 비극적일수록 관객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그 내용에 동화되어가기는 하지만 동시에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관객의 욕구를 채워주기에 전쟁 속의 사랑이야기 만큼 드라마틱한 소재는 없었으리라…... 여기 새로이 소개되는 전쟁을 소재로 한 사랑이야기가 한편 있다. 제목은 “코렐리의 만돌린”. 원제는 “Captain Corelli’s Mandolin” 으로 극중 코렐리 대위가 전쟁이라는 상황을 망각하고자 연주하던 만돌린이라는 악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전쟁영화의 제목이라고 생각하기엔 굉장히 로맨틱한 느낌의 제목이다. 감독은 이 제목 만으로도 이 영화가 아름답고 로맨틱 한지를 단편적으로나마 느껴지도록 노력을 하는 듯 싶다. 그러한 감독의 의지가 담겨서 일까 ? 이 영화는 상당히 아름답고 로맨틱 영화로 느껴졌다. 이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쯤인 그리이스의 어느마을. 전쟁 통 이라고는 하지만 이 섬의 사람들은 마치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처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 사이의 펠라기아와 만데라스가 있다. 섬 유일의 의사의 딸인 펠라기아, 그리고 펠라기아의 아버지에게 치료를 받으러온 만데라스. 아들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 졌으며 그들은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이 두 남녀 가만두지 않는데……. 전쟁이라는 상황과 젊은 피를 가진 청년, 이것은 작은 섬에서 자란 만데라스 참전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물론 그는 전쟁터러 나간다. 하지만 그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 자신이 사랑하는 펠라기아와 약혼을 함으로써 그들의 공고히 했다. 펠레기아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지만 전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점점 전쟁에 빠져드는 만데라스의 모습을 보면서 펠레기아는 불안함을 누를 수 없다. 더구나 점점 막바지로 치잘아 가는 전쟁의 기운은 섬으로 까지 퍼져 이탈리아 군이 섬으로 진입하게 된다. 자신의 약혼자가 전쟁에 빠져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돌보지 않고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펠레기아의 앞에 전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전쟁이라는 상황을 망각하고 있는 듯한 이탈리아 군인 안토니오 코렐리 대위를 만나게 된다. 그는 젠틀하고 낭만적이고 음류를 아는 사람이었다.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음악을 즐기며 섬 마을 사람들에게 의약품을 나누어 줄 정도로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펠라기아는 점점 사랑을 느끼게 되고 코렐리 역시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앞에서 내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상당히 아름답고 로맨틱하다. 섬의 풍경이 아름답고 코렐리 대위가 연주하는 만돌린의 선율이 아름답다. 이토록 아름다운 배경과 음악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야기 인데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그런데 난 이 영화를 마냥 아름답게만 보질 못했다. 어쩐지 조금은 어설픈 듯 한 러브스토리에 약간은 실망하기 까지 하였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사람을 얼마든지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영화 해바라기 처럼 사랑하는 남편이 살아있지만 전사통지를 받고 그를 찾아 먼 여정을 떠나지만 전쟁으로 인한 남편의 기억상실로 인해 사랑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돌아서고, 영화 애수에선 사랑하는 남자가 전사 한 줄 안 어떤 여성이 생활고 때문에 창녀의 길을 걷게 되고 다시 환생해 오는 사랑하는 님을 보고도 마냥 좋아만 할 수 없다가 종국에는 자살을 선택하는 비극적인 내용의 영화들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딘지 싱겁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펠라기아의 원래 연인이었던 만데라스가 전쟁통에 사망을 하지도 실종이 되지도 않았다. 그는 펠라기아의 주변에서 그의 섬을 지키며 늘 그녀의 곁에 있었다. 만데라스의 사랑이 변한 것도 그녀가 결정적으로 그의 사랑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절망한 것도 없다. 단지 만데라스는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어서 늘 펠라기아의 곁에 있을 수 없고 늘 그녀에게 그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 했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행동이 그녀에게 실망을 주기는 했을 수 있으나 사랑이 변하는 결정적 계기라고 생각하기엔 좀 어설픈 느낌이다. 펠라기아와 코렐리 대위의 사랑에도 마찬가지의 어설픔이 존재한다. 코렐리 대위는 처음부터 펠라기아에게 호감이 있기는 하였지만 펠라기아는 코렐리 대위를 처음부터 적대시 한다. 물론 그녀에겐 사랑하는 만데라스가 있기도 하였지만 코렐리는 적군의 대위였다.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의 로맨틱한 면모와 정의로운 성격에 인간적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펠라기아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오기엔 좀 약한 감이 없지 않았다. 또한 영화 내내 그들의 사랑에는 별다른 위기가 없었으며 과거의 연인인 만데라스의 저항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사랑하는 코렐리를 죽음의 위기로부터 구해주기 까지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의도된 연출인 것 같아 보이긴 하였지만 그의 의도가 너무 드러나는 연출이 오히려 극의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더 든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세익스피어 인 러브를 연출 했던 감독 존 매든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멋진 화면에 담는 자신의 장기를 이 영화에서도 확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불완전성 때문일까, 이 영화가 작품적으로 인정을 받기엔 좀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