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스포츠를 통한 세계의 화합을 부르짖는 올림픽의 밤에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공격하고 인질극을 벌이다 전원 살해하는 테러가 발생한다. 이 테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관계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어버리고 이스라엘은 뮌헨 테러에 대한 복수를 추진한다. 이스라엘 정보 기관인 모사드는 정예 요원들을 소집, 피의 복수를 시작된다. 하지만, 뮌헨 테러가 그러했듯이 복수가 점점 진행될수록 복수는 또 다른 복수와 또 다른 희생을 부르며 끝 모를 혼란을 가져온다.
<국가보다는 가족>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뮌헨]은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유대계인 스필버그가 과연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만들어낼지 귀추가 주목됐다. 결과적으로 스필버그는 어느 한 쪽의 편을 드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고 끝없는 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임을 설파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국가나 단체의 이념을 위해, 이념에 의해 존재하는 ‘국민’보다는 가족과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의 의미를 강조하며 비생산적인 분쟁이 양산해내는 무고한 희생과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중반부, 복수극의 한 거점인 파리의 한 숙소에서 모사드 요원들과 PLO 요원들이 만나는 설정이 있다. 모사드 요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가장함으로써 충돌은 없지만 그들은 이념적으로는 적인 관계다. 그들이 하룻밤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갖고 주파수 차지하기 경쟁을 하는 장면과 에브너(에릭 바나)와 PLO요원이 계단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처한 상황의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장면이 주는 감상을 통해 관객이 국가나 이념이 아닌 인간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보도록 만든다. 자신은 특정한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고 말하는 브로커 ‘파파’의 저택 장면, 복수를 위한 비밀조직에 가담하기 전과 후에 (꽤 비중있게 나왔던) 에브너(에릭 바나)와 그의 부인의 섹스 장면 등은 국가나 민족과 국가의 대의를 위한 희생보다는 가족과 개인을 위한 헌신에 더욱 큰 가치를 두자는 스필버그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출산을 통해 가족을 늘리고 그 가족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민족간에 비생산적인 혈투를 벌이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임을 강조하는 것 같다.
<역시 스필버그> [뮌헨]을 보고 나서 내뱉어지는 한 마디는 ‘역시 스필버그’라는 말이었다. 매우 진지한 소재이고 한편으로는 매우 편향된 시선으로 (선전 의도를 두고) 만들 수도 있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필버그가 만들어 낸 작품 안에는 그런 오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폭탄 제조 전문가인 로버츠(마티유 카소비츠)의 연이은 실수나 발명 장면은 간간히 관객을 웃게 만들고 마치 [구니스] [인디애나 존스] [백투더퓨처]처럼 스필버그가 제작이나 감독으로 참여했던 어드벤처 영화들의 느낌까지 담고 있다. 또 이×팔 분쟁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유지하며 ‘인간’을 중심에 두는 모습은 늘 휴머니즘을 강조해 온 스필버그의 성향을 드러내면서도 의외의 냉철함까지 보여줬다. 물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이 분쟁의 과거 어느 시점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을 대표하여 테러의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인정한다고 보기에도 미진하다. 하지만, 이 분쟁의 해결책을 스필버그가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다만 비참한 현실과 그 현실의 아이러니를 전달함으로써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이런 주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필버그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2시간 40여분에 달하는 상영시간동안 관객을 쥐락펴락 하는 스필버그의 이야기 솜씨는 역시 대단했다. 브로커 파파의 저택 장면에서는 영화 [대부]가 떠오르는데, 스필버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처럼 자신도 [대부]와 같은 느낌의 웅장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혼자서 해봤다. [대부]와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스필버그가 선사한 [뮌헨]의 감동은 영화가 끝나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만드는 묵직함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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