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천호동 구사거리>로 처음 장진이란 사람을 알았다. 교수님도 칭찬을 많이 하셨고 젊은 나이에 출품한 작품임에도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대사가 감칠맛이 나서 나도 단번에 반해버렸다. 장진감독과 또래쯤 되는 과언니, 오빠들도 해학적인 장진 감독의 언어구사 등에 칭찬을 많이 했기에 은연 중에 장진 감독은 내겐 우상과도 같았다. 그런데 장진 감독이 영화판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나서 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 빛이 퇴색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새 영화마다 장진 감독만의 아이디어와 개성이 나타나는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더 이상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하려는 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킬러들의 수다>도 마찬가지였다. 취향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너무 잔잔해서 졸립기까지 한 멜로영화보다도 보고나서 남는게 없는 것 같다. 기억나는 게 있다면 어쩜 그리도 귀엽게 생겼을까 의구심까지 드는 원빈 정도... 킬러라는 조금은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직업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순수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그런 킬러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경찰들을 통해 사회 풍자를 하려한 점도 엿보였지만 어쩐지 위의 요소들로는 전달하고자 했던 메세지에 모순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진 감독이 좀더 긴 생명력을 가지려면 아이디어와 웃음만으로 간당간당 영화를 이끌어 나가기보다 작품성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