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른 남동생과 살고 있는 나리스...
그녀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노인들의 도우미로 일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녀가 의뢰받은 노인은 닛포리라는 여든이 넘은 치매노인이다.
그 노인은 말도 없고 사고도 많아 도우미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나리스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다.
그런데 나리스가 닛포리의 집에 방문한 날 닛포리는 그녀를 자신의 첫사랑인 마돈나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닛포리의 정신연령은 20대 청년의 정신으로 있는지라 그는 자신이 젊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나리스는 같은 여자친구인 이소노에게 자신의 남동생이자 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루오를 빼앗기면서 갈등을 겪게 된다.
닛포리의 나리스에 대한 애정공세, 그리고 사랑의 진리 속에서 갈등하는 나리스...
과연 이들에게는 어떤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누도 잇신은 나이에 비해 젊은 감각의 영화를 많이 만드는 감독이다.
그의 감각적인 영상과 소재는 같은 젊은 사람들이 보더라도 대범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그것은 같은 청춘 로맨스 영화를 주로 만드는 이와이 순지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가 개봉되고 나서 이상하게도 거꾸로 과거 그의 작품이 뒤늦게 개봉하였다. 2000년 작품...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제...'의 히로인인 이케와키 치즈루는 이 영화에서 더 젊어보인다.
(아니, 젊어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장애인과 일반인의 사랑, 동성애자와 일반인의 사랑...
하지만 톡특한 사랑법은 그의 초기작인 이 작품 '금발의 초원'에서도 느낄 수 있다.
20대 여인과 80대의 노인의 사랑...
왜 이런 난감한 사랑법을 그는 자주 영화로 만드는가에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누도 잇신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현실적이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치매라는 소재를 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매의 특징 중 하나인 인간의 퇴화와 과거에 집착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리스는 분명 이해는 할 수 없었다.
닛포리의 마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일대기를 적은 쪽지와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그의 과거를 알게 되고 점차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과연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 아닌 동정심에서 하는 결혼은 진정한 결혼이자 참 사랑인가라는 의문말이다. 바보같은 사랑이고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데 그녀는 결국은 닛포리에게 가려고 하는 생각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또 영화는 묻는다.
현실과 꿈을 우리는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말이다.
나리스가 술에 취해 길을 걷던 도중 트럭으로 음식을 팔던 소년은 어쩌면 정말 소년이었을 수도 있고 닛포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면서 말한 것처럼 자신 역시 꿈속을 혜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장면에서 과연 음식을 팔던 소년이 나오는 장면은 판타지일까 아니면 현실인데 나리스가 정말로 술에 취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상적인 소품이 있는데 해바라기이다.
얼마전 일본 인디 필름 페스티벌에서 상영된 '녹차의 맛' 역시 해바라기는 잠시 등장하지만 판타지적인 상징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도 해바라기가 등장하는데 판타지적인 상징물은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두 작품의 해바라기란 아마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바라기 꽃은 해를 바라보면서 자라는 식물이다.
오죽하면 해바라기의 꽃말이 '애모, 당신을 숭배합니다, 당신을 바라봅니다' 등의 뜻을 가진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해바라기는 희망과 더불어 기다림을 상징하는 외로운 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남의 이웃집에 해바라기 꽃을 꺾어 자신의 방에 꾸민 것은 러시아 민요인 '백만송이의 장미' 처럼 지고지순한 사랑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리스 역을 맡은 이케와라 치즈루의 이후 국내 작품 소식은 아직 없다.
검색을 해보니 그녀는 건담 시리즈(영화 실사판)에 출연하는 것 외에는 특이하게 우리나라에 들어올만한 작품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닛포리 역을 맡은 이세야 유스케는 일본의 대표적인 순정만화를 원작을 한 작품 '허니와 클로버'에서 아오이 유우와 같이 국내 수입이 확정됨에 따라 곧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곧 배가 올 것이다.
영화속 닛포리가 말하던 그 배가 말이다.
그 배는 희망을 싣고 달려올 것이다.
그게 꿈이던 현실이던...
꿈이라면 꿈에서 께어나고 현실이라면 자신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젊음이들의 특권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다.
PS. 이 작품은 이누도 잇신의 '경계선 3부작' 중 하나라고 한다.
바로 그 시발점이 이 작품이다. 당연히 그 다음이 우리가 보았던 작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가 되겠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지그제그 3부작', 크쥐스도프 키에슬롭스키의 '삼색 시리즈'까지... 우리에게는 아직도 챙겨봐야할 3 부작이 이렇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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