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처럼 치밀하고 섬세한 작품이 아닙니다.
하물며 앨러리퀸의 작품처럼 마지막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는것도 아닙니다..
이 영화를 장진 감독은 연극에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누누히 말해왔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라 희곡이자 연극인것입니다.
영화 시나리오와 연극의 희곡의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이 영화를 찾을수가 있습니다.
보통 영화는 씬과 씨퀀스의 단위로 나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단걸 아실수 있습니다.
영화의 앞에 "끝" "물고기" 등등의 막으로 나뉘었습니다. 이 영화는 연극입니다.
또한 영화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갇힌 수사 공간에서 48시간 동안 모든것이 이루어집니다.
보통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벗고 뛰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요.
하지만 이 수사는 모두 이 공간안에서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이 이곳으로 불려옵니다.
차승원이 마지막 사실을 아는것도 호텔에서가 아니라 그 수사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죠.(다만 부검실,한사장 회사..직접적으로 장윤정과 관련된것을 볼때는 아니군요.)
연극은 무대를 통해 상연하고 관객이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사 공간이라는 무대를 통해 전국의 티비 시청자(관객)에게 보여집니다.
그리고 티비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떤 두 사람이 토론을 나누는게 있지요. 저는 이것을 관객과의 소통이라 생각합니다. 연극이니까요.
104번 방이 열리며 정유정의 자살장면은 연극처럼 재현됩니다. 누가 범인이란 말 없이, 행동의 예술인 연극처럼 그 행동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장진 감독은 영화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연극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말이죠.
이 영화는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딘가 엉성하고 그렇게 긴장감이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추리물은 사건을 치밀하게 & #51922;고 그것을 낱낱이 분석해 결론을 도출해 냅니다.
이 영화는 추리를 위한 드라마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방과 방이라는 무대를 따라갑니다.
영화적으로 충실한 간접묘사와 행동과 말을 중점적으로, 즉 인물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느낌을 받을수도 있지요.
결국 모든것은 쇼입니다. 쇼의 막이 내리고 진실이 들어나는거죠.
누가 죽였느냐에 충실해 왜 죽였는지는 검사가 이유를 물어보지 않습니다.
검사와 살인범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세간에 알려지고 감독은 이 사건을 시청률을 알리려는 쇼라고 생각하고..
피해자의 얼굴도, 그 마음도 알아주지 않고..
"그녀의 마음은 어땟을까?"
"미안허다, 미안허다" 그 굿판의 한마디...
이 영화의 엔딩과 함께한 장진 감독의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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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일본인부부가 나와서 4층이 왜 없는지 묻는것과 무당이 와서 굿을 하는것 ..그리고 104호에서 귀신이 나오는것은 한국적 정서에서 비롯되어있기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의문점은 리뷰에 잘 설명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아직까지 의문점이 있는데 왜 정유정은 19번이나 죽은 애인에게 전화를 했으며...
한 사장의 회사에 있는 우거진 숲의 사진은 무엇일지 궁금하더군요..
우거진 숲은 정유정의 마음이고 맨 밑의 뒷모습만 나온 정유정의 모습은...
차승원처럼 얼굴도 모르고 마음도 모른채..사건을 풀어가는 모습을 의미한것이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차승원이 귀신들이 위로 받을 관상이라고 했는데 정유정이 마지막에 뒤를 돌아보며 웃는것도..
차승원의 커피한잔의 위로로 인해 나왔던건지..자살을 알았기 때문에 그랬던건지..
그것은 의문점으로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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