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의 세 번째 작품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사실 장진의 세 번째 작품이라는 것보다는... 가을동화라는 드라마 한편으로 이 시대 청춘스타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버린 원빈이...가을동화의 달콤한 환상에서 벗어나 고른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이 더 화제를 모으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장진식 코미디로 마니아층을 모아온 장진이고보니... 그 기대감이 클 수 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한국 영화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마당에...조폭마누라를 이을 최고의 화제작 [킬러들의 수다]를 남들보다 한발짝 일찍 볼수 있다는 건...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가히 행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얼마전...극장에서 예고편을 보면서...아 그동안 보던 장진의 영화하고는 땟깔부터 다르구나..뭔가 대박이 터지겠는걸..하는 기대를 내심 했었다. 그러나..역시 기대가 넘치면...실망을 하게 되는 걸까? 영화를 보는 내내...자꾸 시계를 흘끔 거렸다면... 대충 이해가 될런지..
영화는 허진호가 [봄날은 간다]에서 여전히 허진호다웠듯이... 영화 전편 내내 장진다움이 좔좔 흐르는 그야말로 장진스러운 영화였다. 곳곳에 배치된...장진의 유모어... 그러나..장진이 너무 진보적이서 그런지..아니면 내가... 아직 그런 진보적인(?) 유모어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영화 내내 낯선 유모에 허둥거려야 했다. ...... 영화는 굳이 스토리를 따라가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간첩리철진에서 장진은 스토리텔링을 아주 중요시하는, 유쾌한 재담꾼이었지만 킬러들의 수다에서 장진은... 장진식 유모어를 남발함으로써... 과연 그가 무슨 얘기하고 싶어하는지 - 물론 뒤에서 원빈의 나레이션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 관객들을 아주 헷갈리게 만든다. 때론 아주 유쾌하게, 때론 아주 유치해서 진절머리가 나게... 또 때론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영화는 잔뜩 멋을 내고 열심히 관객을 유혹하지만.... 뭔가 조미료가 빠진듯한 닝닝함이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분명 각 인물들의 캐릭터는 살아있지만... 지나치게 캐릭터에 의존한 탓에... 스토리는 무뎌지고... 낯선 유모어와 너무 익숙한 유모어의 남발로 나중에는...이걸 웃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하게 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뒤로갈수록...스토리는 무너지고... 영화는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여전히 이래도 안웃을테냐하는 식으로 무자비하게 유모어를 쏘아대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장진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뿌리는 유모어속에는 늘 따뜻함이 스며있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사를 빗더미에 올라앉게 만든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에서도 그랬고(물론 지금은 조폭 마누라 한편으로 빚을 청산하고도 영화 10편정도는 만들 돈을 벌거나 혹은 투자받게 되겠지만)...반공교육을 20년 가까이 받아온 탓에 간첩은 다 똘이장군에 나오는 돼지나 괴물처럼 생겼을꺼라고 생각하는 내게... 간첩에게도 저런 따뜻한 인간미가 있구나(?)... 새삼 느끼게 해준 간첩 리철진에서도 그랬듯이... 그의 유모는 늘 보는이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런데... 흥행에 대한 강박관념이 그를 짓눌러서였을까?... 킬러들의 수다에서는 인간적인 웃음보다는... 의도된 웃음이 오히려 관객들의 숨통을 죄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도...내게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오페라하우스 시퀀스뒤에는...오히려 사족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나혼자만의 생각일까?
물론 이 영화가 그렇게 재미가 없거나...잘못 만들어진 영화는 절대 아니다. 여전히 관객들은 장진의 유모어에 웃음 짓고... 스크린에서 보는,남자가 봐도 반할만한 원빈의 웃음에...꺄악 소리지를 수 있는 것만으로... 어쩌면 7000원이라는 돈이...아깝지 않을 수도 있을테니.
독특한 소재, 스타감독, 스타배우, 기발한 시나리오...과감한 제작비 투자... 참 훌륭한 여러 가지 조건을 가진 영화 [킬러들의 수다]!! 그러나...참 좋은 재료를 가졌음에도 뭔가 빠진듯한...뭔가 관객을 확 휘어잡을 만한..2%가 부족한 영화 [킬러들의 수다]!!
실컷 욕해놓고 이제와서 모처럼 [친구]로 시작된 한국영화의 돌풍을 [킬러들의 수다]가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어설프게 병주고...약주는 꼴이 되는 걸까? 그래도 어쩌랴..입에 쓴걸 쓰다고 말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