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중래와 그의 후배 창욱의 대화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무작정 여행을 가자는 중래와 안 된다는 창욱.
결국 중래의 고집에 못 이겨 창욱은 자신의 애인 문숙(그러나 문숙은 창욱과 친구사이라 주장한다)과 동행해도 되
겠냐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두 명의 수컷과 한명의 암컷이 여행을 떠난다. 홍상수감독은 이제까지의 연출작들과
다름없이 두 남자와 한 여자라는 관계를 설정해둔다. 그리고 ‘사랑’을 가장한 ‘속물근성’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다.
자신을 믿고 존경하는 후배의 여자를 탐하게 되는 중래는 결국 문숙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이틀 후에 다시 해변
으로 돌아온 중래는 선희라는 새로운 캐릭터까지 건드린다. 그리고 때마침 해변을 찾는 문숙. 이제는 상황이 바뀌
어 암컷 두 명과 수컷 한명이 충돌하게 된다. 중래는 여전히 위선적이고 발정난 남자이다. 그런 중래는 사람들이
이미지를 편파적으로만 각인시켜 본다고 생각하여 이미지와 대립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숙도 그런 중래를 보고 정
말 똑똑하다며 좋아한다. 문숙은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하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러나 술에 취해 돌아온 문숙에게
도 본심이 나온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에 집착하는 문숙. 자기가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있을 때, 자기를 넘어서 간
거냐고 솔직히 대답해달라고 울부짖는다. 그러다가 화가 난 문숙은 “당신의 그런 ‘개똥철학’은 집어치고 솔직히 말
해 달라”라고 말한다. 그렇다. 처음부터 중래는 개똥철학을 그럴싸하게 말하는 달변가에 불과했다. 홍상수감독은
그런 중래를 통해 사실 별반 다를 것 없는, 사회적으로는 인정받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한 고위직 사람들을 비판하
는 것일 수도 있다. 남들이 봤을 때는 안그런척 고상한척 다 떨다가 뒤에서 호박씨 까는 사람들 말이다. 어쩌면 홍
상수감독 본인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영화에는 자기이야기 혹은 자기주변이야기가 많이 첨가된다고 했으니까. 그
럼 여기서 가장 명대사였던 ‘개똥철학’을 인용하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문숙이 처음 본 순간부터 귀엽
다고 여기던 진돗개 돌이. 돌이가 영화 속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돌이는 부부의 사랑을 받지만 버려지고 만
다. 아마 돌이는 중래가 좋아라 여기던 문숙과도, 아니면 바람난 남자들의 여자친구와도 같다. 순하게 길들여놓으
면 금세 질려서 아무데나 버리고 가는 돌이는, 잘 나지도 못한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을 상징하는 것 이다.
‘개’를 여자로 표현했다면 개보다 못한 ‘개똥’은 중래의 사고방식, 즉 남자들의 권위주의를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식한 척 다하는 이름 있는 영화감독의 복잡한 사고방식을, 어쩌면 나아가 우리에게 도움
이 되지 않는 몇몇 고대 철학가들의 이야기도 결국 ‘개똥철학’, 즉 쓸모없는 것이란 얘기이다. 결국 쓸모없는 사고
방식의 소유자 중래는 어떤 시나리오를 쓰게 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간다. 문숙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선희에
게 인사를 하고 자기 갈 길을 간다. 어느 새, 영화의 시점은 개똥(중래)에서 개(문숙)에게 옮겨진다. 결국 더 우월
한건 여자라는 뜻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개똥이나 개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랑을 하지 못한 소년
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정말 현실이 저런 걸까’ 의심되기도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내 주위에는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그런지 영화자체도 아이러니하다. 남자 시점으로 시작해 여자 시점으로 끝나고, 남
자 둘 여자 하나의 관계로 시작해 남자 하나 여자 둘의 관계로 풀어나가는 아이러니한 영화이다. 홍상수감독이 이
제까지 해오던 이야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유쾌해지고 조금 덜 불쾌해서 좋았던 영화이기도 하
다. 과연 그의 차기작에서는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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