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거니는 해변의 여인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빛에 물들은 여인의 눈동자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옛이야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1972) 중에서-
바다는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을 가지게 만든다.
여기 좀 독특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네 명의 남녀가 있다.
이번에도 남녀의 알 수 없는 관계를 자주 이용하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다.
거기에 재벌가의 여인에서 해변의 여인이 된 고현정을 스크린에서 처음 보게 된다.
영화는 초반에 중래, 창욱, 문숙... 세 사람의 여행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물론 창욱은 문숙의 애인이고 바람을 피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선희는 두 사람중 중래가 쬐금(?) 더 좋다.
아름다운 추억을 중래와 문숙은 남기고 바닷가를 떠나지만 중래는 해결하지 못한 시나리오 문제 때문에 다시 내려오게 되고 문숙과 비슷하게 생긴 (중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선희를 만난다.
문제는 앞의 문숙이 다시 재등장하면서 일이 꼬이게 된다는 것이다.
선희와 잠을 잤느냐 안잤느냐는 어찌보면 심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는 집착을 하고 있는 문숙의 모습에서 웬지 피바람을 몰고오지는 않더라도 마치 폭풍전야의 상황이 묘사되게 만드는 상황이 생긴다.
홍상수 영화의 특징은 어설픈 대사들에 있다.
문맥도 맞지 않으며 어눌한 말투의 주인공들...
어딘가 맥이 툭툭 끊긴 느낌인데 이상하게도 대사 전달은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홍상수 영화의 특징이다.
거기에 홍상수 감독은 이번영화에서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여인을 등장시킨다.
문숙과 선희...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실제 이 두 사람을 연기한 고현정과 송선미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각각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 출신의 배우들이라는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다.
고현정이 내뱉는 대사중에는 자신의 사생활이나 신체를 잘 이용한(?) 대사들이 보이는데 "(이 다리를) 잘라버리고 싶어"라고 이야기하거나 선희에게 당당히 이혼하라고 대화하는 대목에서는 고현정의 실제 삶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미성년자 관람불가가 아닌 15세 관람가로의 전환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고현정은 수위가 높은 배드신에 대하여 각오가 되어 있는 상태였고 반대로 홍상수 감독은 더이상 벗기는 영화에는 질려버렸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그 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야한 이유는 바로 대사의 힘이다.
섹스라는 단어가 거침없이 나오며 고현정, 김승우가 거침없이 내뱉은 비속어와 욕설이 이 영화의 등급을 헛갈리게 만들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얼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홍상수 감독은 김기덕 감독이나 장선우 감독과 달리 성(SEX)에 관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감독과는 달리 좀 부드럽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거부감이 없지만 젊은 관객들의 대다수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엉뚱한 대사나 상황들에 황당함을 느끼고 일부는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이는 홍상수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극장전"을 본게 고작이므로 그의 또다른 작품을 봐야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분명한 것은 그 감독의 특성을 이해하기 힘들다면 전작을 보고 어느정도 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고작 한 작품만 보고 이야기하는 나도 문제가 있지만 이 작품 하나만 보고 이야기하는 관객들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 같다.
ps. 고현정의 비속어 연기나 굴욕(?)스러운 장면들에 관객들이 놀랐는데 사실 파격적인 대사를 내뱉은 고현정은 이미 드라마 "봄날"에서 지진희에게 결정적인 대사를 날렸다. 모두들 기억하는 그 대사...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이 자식아..."
그 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고현정의 이번 영화의 대사에 적응을 못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 그리고 이 영화의 숨은 공로는 또 있다.
하얀 진돗개로 등장한 똘이의 연기(?)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런 강아지 한마리 갖고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들지만 영화속 중래처럼 나 역시 개에게 물린 안좋은 추억이 있는지라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옥의 티도 보인다.(홍상수 감독도 옥의 티라니...)
영화에 휴개소가 두 번 등장하는데 해변으로 출발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서울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두 번 등장한다. 그런데 장면에 보인 화면중에 휴개소 통감자 굽는 직원들의 얼굴이 비춰졌는데 둘 다 같은 인물이다.
휴개소 중에는 상행선과 하행선 두 개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상행선과 하행선의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이 될 수 없다.
인원이 부족해서 상행선에 있던 사람이 하행선으로 왔다면 모를까 말이다.
따라서 두 장면은 같은 시기에 찍었다는 결론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