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제까지 '밀어왔던' 메시지들보다는 캐릭터들의 역할에 있는 듯하다. 마치 반전 메시지 자체가 반전에 있어서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듯, 드문드문 보여지는 전쟁의 피폐한 군상보다는 '능력은 있으되 정신은 미숙한' 하울과 (늙은 하야오를 닮은) 여유와 포용력을 갖춘 소피의 교감에 작품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유바바와 대적하는 하쿠처럼 스승 설리만과 대적하는 하울. 모두가 꺼렸던 가오나시에게 친절을 베푼 치히로처럼 자신에게 저주를 건 '황야의 마녀'를 감싸는 소피. 그리고 소피의 이같은 모성애에 감화한 캘스퍼, 힌, 마법걸린 허수아비들이 보여주는 개성있고 유쾌한 행동들은 하야오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심상을 반증하고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아이콘들과 그 안에서의 변화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드높은 창공과 광활한 들판의 조감(鳥瞰)과 씩씩한 소녀가 펼치는 모험, 기계 문명에 대한 숭배와 공포는 그의 작품에서 익히 보아왔던 요소들이다. 하야오는 여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할머니(소피)를 통해 이제껏 주창해온 '친환경'이나 '반전'이 아닌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 물론 거장의 늦은(또는 무리한) 변신은 온갖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하울의 성처럼 때때로 위태롭게 흔들리기도 하지만, 왈츠풍의 메인 테마곡처럼 풍부하고 진중한 연출력은 여전히 장르 팬들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그 익숙함과 새로움의 교집합에 있는 매력의 중심에 거장의 손맛이 '직접' 담긴 '하울의 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