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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시간은 어디쯤인가. 시간
kharismania 2006-08-24 오전 3:13:26 1247   [4]
김기덕의 영화는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한다. 그의 영화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일이다. 그리고 적어도 영화를 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맛있어보이는 먹잇감이자 표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다.

 

 사실 그의 영화를 논한다는 것은 지금 눈 앞의 영화만을 따로 떨어뜨려서 말하기에는 방대하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관통하지 않고서는 그의 영화를 말한다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재목 외에 '김기덕의 13번째 영화'라는 부연설명을 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쩄든 이 영화 역시 관객에게 그리 친절하고 편안한 영화가 아니다. 사실 그의 영화는 모두가 그랬다. 그의 감독 데뷔작인 '악어'부터 지금의 '시간'까지 그의 영화는 모두 다 지독한 극단성 혹은 모호한 상징성과 추상적인 대사와 은유적인 몸짓이 난무했다. 그의 영화는 단지 보여지는 측면 이외의 읽혀지기를 강조하는 부분이 강했다. 물론 그의 영화중 가장 무난하고 대중적이라는 평을 받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대중에게 그나마 친숙하지만 -솔직히 이 영화가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며 자연스러운 친숙성을 지닌 의외성을 지닌다는 면에서 보자면- 그외의 영화는 대중에게 다가서기에는 난해함 혹은 괴팍함으로 몰이해되기 쉬웠다.

 

 어쨌든 필자 역시 김기덕의 세계를 확실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세계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소수의 입장 중 하나이며 그의 열세번째 작품인 '시간'에 흥미로운 시선을 두고 있음을 인정하며 이 글을 풀어보려 한다.

 

 이영화는 시작과 끝이 동일하다. 마치 같은 공간안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반복적 오류를 어필하듯 시작과 끝은 동일한 장면으로 처리된다. 마치 트랙을 한바퀴 돌며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듯 처음은 끝으로 통한다. 방금 수술을 마치고 나온 듯 선그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채 성형외과를 나서는 여자와 부딪히는 다른 여성은 성형녀가 들고 있던 액자를 떨어뜨리고는 그 액자의 깨진 유리를 바꿔주겠다고 하나 그 여자는 공연히 사라지고 유리가 꺠진 액자는 새로운 여자의 손에 쥐어진다.

 

 액자를 손에 든 채 자신의 남자친구인 지우(하정우 역)를 만나러 가는 여자, 세희(박지연 역)는 지우가 다른여자를 향해 잠깐의 눈길을 주는 것조차도 참지 못한다. 히스테리에 가까운 강박증을 지니던 그녀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고 2년에 가까운 교제가 서로에게 권태를 만들어냈다고 믿는 그녀는 새롭게 태어나겠다며 성형외과에 발을 들여놓는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시간은 첨예한 소리를 내며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사실 이 영화는 김기덕의 기존 필모그래피 안에서 보편적인 면모를 보이면서도 최근작에 비하면 또 다시 달라진 그의 세계관을 발견하게 한다. 그의 최근작 빈집을 보면 그가 대사보다는 행위에 많은 것을 할애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사가 주는 직설법보다는 행위가 보여주는 은유법을 선택하며 소설보다는 시적인 어법을 활용하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는 다시 대사의 직설법을 택했다. 사실 이는 그의 은유적 진화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법한 사실이다. 이 영화는 사실 말이 많다. 물론 직설적인 대사의 필요성에 대한 의지일지도 모르지만 불필요하게 겉도는 대사가 그만큼 많아졌다. 그리고 그것이 김기덕 영화라는 점안에서 이례적이고 어줍잖게 느껴진다는 것은 상당히 의아해지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표출하는 비극의 연결고리이다. 이 영화가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아름답고 고결한 미덕이 아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듯이 위태로우며 끔찍하게 권태로우며 이기적이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하는 사랑이다. 사실 사랑은 양면의 동전이다. 삶을 지탱해주는 낙(樂)되기도 하지만 삶을 나락으로 미는 악(惡)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 지니는 매혹적인 잔인함. 그것은 사랑의 지속성과 긴밀한 관련을 지닌다.

 

 연인의 시간에는 시작의 설레임이 그들만의 시간을 결성하지만 그 설레임의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면 진부한 권태의 나날이 이어진다. 물론 그 감정이 퇴색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즉 단순히 시계 태엽 바늘의 진행과는 다른 연인이라는 하나의 시공간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적 흐름으로서의 시간은 미묘한 균열을 발생시킨다. 서로의 애정이 집착과 권태의 줄다리기에서 애증으로 변질되어가며 연인의 시공간은 점차 어그러진다.

 

 어쩌면 이 영화의 시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윤회적 흐름과도 맞닿는다. 하지만 전자의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인물들의 동화적 일치감으로 승화되었다면 후자의 그것은 스스로 창조해 낸 시공간을 스스로 파괴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행위의 반복적 윤회에 가깝다. 세희가 세희의 사랑을 스스로 파괴하고 새희(성현아 역)의 사랑을 창조하지만 결국 그 사랑의 갈구가 원하는 것은 세희의 사랑이다. 그러나 이미 부서진 시간은 복구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롭게 창조된 시간마저도 위태로워지고 그 위태로움은 결국 새로운 시간마저도 파괴한다. 그리고 두개의 시간에서 헤매는 새희는 세희로써의 자신과 새희로써의 또다른 자신 어느곳에도 안주하지 못한채 자신이 사랑하던 지우마저도 자신의 시간을 파괴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말 하고자하는 시간의 정의는 이렇다. 우리가 함께 보고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아닌 개개인에게 의미가 부여되는 시간. 즉 자신만의 사연이 창조되고 기억이 머무는 공간으로써의 시간. 그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 낸 김기덕의 시공간이다. 그리고 그런 시공간이 부서지며 그 파편에 상처입은 영혼들의 몸부림이 울부짖듯 처절하고도 처연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이영화의 시작과 끝은 동일하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키듯 다시 반복되는 시간의 구성은 끝없이 되풀이되는 애증의 알고리즘으로 해석되고 다시 창조될 비극을 환기시킨다.

 

 원래 그렇듯이 김기덕의 영화는 극단성의 미학을 지닌다. 떄로는 그것이 잔인무도한 행위적 학습으로써 주입되기도 하고 모호한 은유적 해석으로써 확대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이 무언가 의미를 지니는 표현방식이라는 점안에서는 수긍될만하며 눈여겨봐야 할 관점으로 삼을만하다. 적어도 대한민국안에서 작가주의적인 크리에이터가 전무한 현실안에서 그의 가치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시공간안에서 자신만의 시간위를 부유하고 있다. 그것은 서로가 공유하는 달력과 시계의 규정을 벗어난 환타지같은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각자의 시간 위에서 맴돌고 그 시간안에서 자신만의 개인사를 축적하며 살고 있다. 비록 이 영화는 두개의 시간이 공멸되는 비극적 극단성을 띄고 있지만 결국 관객에게 주어질 수 있는 건 각자의 시간안에서 맴도는 자리찾기의 인지가 아닐까. 끔찍한 상황이 반복되고 아무리 시간이 부서지고 파괴되어도 그 뒤에 남는 것은 결국 새로운 시간의 성립이라는 것. 그것은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삶에 대한 환기. 달아날 수 없는 세상과의 마찰에 대한 재확인. 그것이 이영화로부터 찢어내듯 곱씹을 수 있는 나의 시간에 대한 또다른 인지가 아닐까. 우리는 각자의 시간의 어디쯤을 걷고 있을까. 나는, 그대는, 혹은 우리는. 어느 시간위를 맴돌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없는 물음이 이 영화로부터 얻어지는 고민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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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2006, Time)
제작사 : 김기덕 필름 / 배급사 : 스폰지
공식홈페이지 : http://cafe.naver.com/time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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