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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의 자격 천하장사 마돈나
kharismania 2006-08-18 오전 9:17:23 942   [9]
정체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물음표가 선명해지는 것은 청소년기이다. 굳히 질풍노노의 시기나 주변인따위의 교과서적 용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 시절을 헤어난 이들이라면 스스로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성에 대한 정체성이라면 조금은 난색을 표할지도 모른다. 남자로써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사연을 과연 우리는 어떤 취급을 해야할 것인가.

 

 '하리수'의 등장은 사실 상당한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지금은 평범하게 쓰여지는 -말그대로 단어적인 활용에서만, 여전히 트랜스젠더가 평범하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단어에 불과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영한사전을 한번쯤 펼쳐봐야만 할 것 같은 비범한 단어이자 그 의미를 알게 되면 경악하게 되는 불순한 단어로 취급받는 것이 그 시절의 표정이었다.

 

 사실 오늘날에도 그런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닐테다. 단지 익숙해졌을 뿐 시선의 자태가 고와졌다고 단정짓기엔 아직 이르지 않을까. 단지 하리수가 인정받았을 뿐 음지에 서식하듯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의 현실에 볕이 든 것은 아닐테다.

 

 이 영화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런 불순한(?) 소재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마돈나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로부터 느껴지는 것은 유머러스한 웃음과 망칙한 발상의 사이 어디쯤일까.

 

 사실 이 영화는 소년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다만 그 성장기의 고민이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기에 조금 특별해 보일 뿐이다. 중요한 건 미래에 대한 가닥이 잡히지 않는 시기에 대한 통과의례적 고민이다. 이것은 중요한 맥락이자 벗어나서는 안 될 방점의 동심원의 궤적의 출발점이다. 동심원의 파문이 그려나가는 수위에 대한 이해가 따르기 위해서 필히 수긍해야하고 이해해야 할 측면이라는 것. 그것이 소년의 특별한 성 정체성 너머로 부각되는 성장과 성숙을 바라보는 평범한 가치의 발견에 대한 당부이다.

 

 동구(류덕환 역)는 이른 아침 인천의 선적장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다. 소년의 통장에 잔고가 이루고자하는 목적은 바로 성전환수술. 자신을 여자로 바꿔줄 오백만원의 적립을 위해 소년은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지각할지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강행한다. 하지만 뜻밖의 사고로 그동안 모아둔 돈은 증발되고 좌절에 빠진 동구에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오는 건 고교씨름대회에서 우승하면 주어지는 장학금이 오백만원이라는 것. 마돈나를 꿈꾸는 소년의 천하장사로의 일탈은 이렇게 출발한다.

 

 사실 이 영화는 얼핏 '으랏차차 스모부'를 떠올리게 한다. 씨름과 스모라는 스포츠가 지닌 외양적 유사함과 더불어 극의 인물들이 학생이라는 점, -물론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차이를 간과한다면- 그리고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적 재미와 더불어 드러나는 개개인적인 고민담의 형태 등이 두영화를 비교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다 확실한 노선을 드러낸다. 다양한 인물이 표면에 자리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축을 만들고 끌어가는 것은 오동구의 성적 고민에서 비롯되는 울고 웃는 사연이다. 또한 그런 개인적 고민이 주변 인물들에게 번져나가며 벌어지는 충돌과 해프닝에서 느껴지는 흥미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재미의 핵심이다.

 

 사실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자들. 즉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에는 부적절한 사람들에게 평범한 일반인들은 동정을 표하곤 한다. 장애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그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정은 가식적이다. 동정은 결국 자신보다 못함에 대한 인정과도 같다. 자신과 동등하지 못한 상대에 대한 거만한 연민. 그것이 동정의 무가치함이다. 어쩌면 트랜스젠더같은 비주류인에 대한 감정 역시도 이런 선안에서 포함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들의 특별한 운명에 연민을 느끼지만 실상 자신의 삶과는 무관함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동정의 선을 넘지 못한 이해와 인정의 비존재성의 발견이다.

 

 이 영화는 그런 동정의 무색함을 불식시킨다. 여성을 꿈꾸는 소년 동구로부터 느껴지는 것은 현실부적응자에 대한 동정적 연민이 아닌 자신의 삶을 꿈꾸는 자애적 의지이다.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삶을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피하지않는 동구의 모습은 힘겨움이 아닌 유쾌함이다. 물론 그의 삶이 항상 발랄하지만은 않다. 그의 주변에는 그에게 힘이 되어주는 친구도 있지만 그를 조롱하는 친구도 있다. 또한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하는 일본어 선생님에 대한 안타까움도 존재한다. 더불어 그의 평범하지 않은 성정체성에 당황하지만 인정해가는 어머니와 인정하려 하지 않고 분노하는 아버지도 만만치 않은 산이다.

 

 하지만 소년은 묵묵히 천하장사의 꿈을 키운다. 비록 그가 꿈꾸는 예쁜 원피스가 아닌 샅바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샅바를 매고 비지땀을 흘리고 부끄러운 벗은 몸을 드러낸 채 사내들과 살을 맞대며 몸뚱이를 내던진다. 자신의 꿈을 이뤄줄 오백만원을 위해서 그는 한걸음씩 나아간다. 자신의 삶을 뒤집어줄 오백만원을 위해 그는 '뒤집기'를 연마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적으로 아웃사이더적인 소재지만 이 영화는 성전환이라는 소재를 평범하게 녹인다. 오히려 비극보다는 희극에 가깝게 관객에게 접근시키고 민감한 소재가 우스개꺼리로 전락될 수 있는 위험함은 소년의 성장스토리가 진실됨에 의해 무뎌진다. 또한 이야기의 무게감을 얹는 것은 흩어진 가족애의 퍼즐맞추기에 있다. 도망간 어머니를 용서하고 술주정에 찌든 아버지를 묵묵히 따르는 동구가 좌절하지 않고 한발한발 나아가는 모습은 역경을 이겨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전형성에 묶어두기에는 특별하다. 이는 단지 역경으로 빚어내는 비극의 깊이를 받아들이는 인물의 모양새의 차이인데 자신의 험난한 현실을 그대로 수긍하고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동구의 긍정적인 태도앞에서 느껴지는 건 주어지는 행운이 아닌 성공에 대한 획득 의지이다. 그런 의지앞에서 관객이 표명할 수 있는 건 충분한 응원 욕구가 아닐까. 하늘도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말이다.

 

 물론 영화의 결말이 다소 조악한 점도 있지만 크게 아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마지막까지 위트를 무시하지 않는 면은 나름대로 기획적인 뻣뻣한 설정에 유연함을 부여하는 듯 하다.

 

 사실 백윤식의 출연은 기대되면서도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을 가릴 정도의 카리스마를 지닌 촌철살인의 그가 '싸움의 기술'에서 처럼 애송이같은 어린 출연진을 압도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반 우려반의 예상은 적절히 입맛을 더하는 조연에 충실한 연기로 불식시켰다.

 

 행복한 순간은 자신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순간을 느낄 때라고 영화는 말한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순간. 그것은 긴장감이 자신의 몸으로 표현되는 향연과도 같다. 마치 무대위에 서기 직전의 배우처럼, 자신이 꿈꾸는 세계로 들어서기 한발전의 떨림은 설레임이 극도로 밀어닥치는 카타르시스의 시공간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한발자국 너머에 어떤 감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지녔던 꿈의 청사진을 마음껏 그려도 좋다. 갈망하는 꿈의 실현만큼 값지고 아름다운 보상은 없을테니. 소년이 꿈꾸는 마돈나처럼. 그리고 마돈나가 되어 부르는 'Like a virgin'처럼 처녀행세를 하는 아줌마가 될지라도 마음이 행복하다면 어떤길도 설레임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무엇이든 꿈꾸어도 좋다. 자신이 스스로 그 꿈을 감당해 낼 자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신감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낄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 영화는 긍정적인 표정으로 미소지으려 하는 것만 같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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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2006, Like a Virgin)
제작사 : 싸이더스FNH, 반짝반짝영화사(주)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donggu-don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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