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족의 탄생(2006년, 113분)
감독 : 김태용
각본 : 성기영, 김태용
음악 : 조성우
출연 : 문소리, 고두심, 엄태웅, 공효진, 김혜옥, 봉태규, 정유미
<가족의 탄생> : 인연과 정으로 맺어진 관계에 대한 재구성
인간은 관계 맺기를 통해서 한 움큼씩 성장해 나가는 존재임을 깨달아 간다. 그리고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가족으로 관계가 바뀌듯이 다양한 변주를 통해서 새로운 관계로 변모해 나가기도 한다. 이런 인간사의 관계 맺기를 가족이라는 친밀한 울타리 속에서 신선하면서도 솔직 담백하게 묘사한 영화의 출현은,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한 잔잔한 기쁨과 감동을 안겨 준다.
<가족의 탄생>은 가족의 본질과 관계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면서도, 대중 영화의 화법을 잃지 않은 근래 보기 드문 가족 드라마의 모범 교본이 될 만한 영화이다. 가족 영화이면서도 혈연공동체라는 색체를 지워낸, 그렇다고 대안가족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가족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불완전해 보이던 관계가 슬며시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족이라는 것이 한 핏줄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으면서 자연스레 서로 기대는 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여고괴담 : 두 번째 이야기>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김태용 감독은 데뷔작에서 보여준 연출력이 단지 우연이 아니었음을 두 번째 영화에서 확인시켜 준다. 다양한 인물군들을 따로 또 함께 엮는 세공술은 3개의 에피소드를 축으로 진행되는 옴니버스 구조를 바탕에 깔고, 배우들의 호연이 뒷받침 되어 물 흐르듯 진행된다.
옴니버스 형식임을 언급하지 않고 진행되는 3개의 에피소드는 자칫 갑작스런 장면과 인물 전환으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인물의 심리와 움직임에 동화되다보면 어느덧 3번째 에피소드에서 이야기가 융화되는 과정을 목도하며 감탄을 터뜨리게 된다. 특히 엔딩 크레딧과 함께 현실(혹은 가상)의 공간인 기차역에서 펼쳐지는 인물들 간의 교차 장면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무수한 인간사에서 스쳐 가는 인연에 대해 상기시켜 주면서, 인연이라는 끈을 통해 탄생되는 가족의 관계에 대한 풍성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처럼 <가족의 탄생>에는 다루는 가족은 혈연이 아닌 인연으로 맺어지지만, 그것이 친구나 연인 혹은 제 3자일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특별한 인연을 만들며 특별한 존재로 다가가면서 정이 쌓이는 그런 관계라고 말한다.
인연이라는 것이 시간이 흘러 가족으로 변모해나가는 관계를 표현함에 있어서 감독의 섬세한 미장센은 빛난다. 전경에 마루에서 묵묵히 식사하는 두 여자를 두고 후경에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뛰노는 모습을 배치하여 동시적이면서도 다른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장면과 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이 대화를 나누는 아파트 복도 등이 깜박거리는 장면 등을 통해 인물 간의 심리와 관계의 변화를 설명해주고 있는 연출은 비범하다. 일체의 세트 촬영을 배제한 채, 들고 찍기를 통해 가족을 실제로 들여다 보는듯한 장치 또한 현실감이 살아있다.
또한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는 감독의 연출력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공효진과 김혜옥 간의 모녀 연기는 관계가 소원해진 실제 모녀를 보는 듯 생생함 그대로 화면에 투영되며, 연인 관계로 출연한 젊은 두 배우 봉태규와 정유미는 앞선 두 가족의 에피소드를 자연스레 연결하면서 하나로 묶어주는 자연스런 연기를 선보인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결핍된 존재로 비쳐지며 가족에서 배제되기도 한다(경석은 예외). 그런 남성성의 부정 혹은 무기력함의 반대편에서, 여성만이 대안가족의 구성원으로 서로의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다는 듯한 논지가 일부 남성들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가족이 만나면서 그리고 한 지붕 아래 두 명의 엄마를 두면서도, 서로 별개의 구성원처럼 보이던 관계가 새로운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재정의됨을 지켜보는 것은 가족에서의 개개인의 위치를 되돌아보게 만들며, 가족이라는 단어가 지닌 정서를 되새기게끔 해준다.
가족이 주는 전통적인 의미에 천착하기 보다는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사를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가족의 의미를 재구성한 이 영화가 일견 판타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영화 속 가족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네 현실의 관계 맺기 혹은 가족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이 영화가 갖는 힘이자 매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