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정]은 인간관계에 대해 한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의 관점 을 통해 아주 흥미롭게 접근하던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 이 야기를 진행시키는 주인공에 따라 같은 이야기라도 미묘한 차이로 출발하여 상당히 다른 진행을 보여주곤 했죠. 대표적으로 숟가락과 포크의 차이. 틀림없이 사실은 하나인데 내가 일고 믿어 의심치 않 는 기억이란 게 얼마나 불확실한건지... 그 불확실한 기억을 바탕 으로 한 인간관계 역시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 느낄 수 있었습니 다. 마치 [메멘토]처럼요.
살해현장을 담은 즉석사진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찌된 게 한번 흔 들 때마다 사진이 선명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흐릿해지네요. 뭔 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는 저의 시야에 포착된 한 남자가 있습니다. 거꾸로 돌아가던 필름이 멈추고 다시 제대로 돌아가자 과감하게 총 을 당겨 사람을 죽이는 그. [메멘토]의 시작입니다. 전직 보험수사 관인 레너드는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 증 환자입니다. 과거의 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의 기억은 선명하 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10분 이상 연속시키지 못하는 것이죠. 그 시점은 자신의 부인이 강간 살해당한 끔찍한 기억. 범인을 찾아 복 수하기 위해 수사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폴로라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고 몸에 문신을 새깁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마치 목이 마구 졸리다가 끈이 풀어진 것 같은 느 낌이 듭니다. 큰 심호흡을 한 다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이렇 게 말하게 되죠. “감독... 인간이 아니야...@ㅅ@;;”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레너드처럼 관객 역시 아무것도 모른 체 영화를 쫓아갑니 다. 조금씩 과거로 거슬러가면서 레너드가 모르는 진실을 알게 되 지만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 역시 허상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친구도 적도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채 레너드의 기록에만 집중하 며 진실을 쫓지만 그 기록이란 것 역시 레너드라는 한 사람이 만들 어내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실일 뿐이란 걸 알게 됩니다. 이제 관객 은 주인공인 레너드조차 믿을 수 없는 큰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가 게 되죠.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요. 알 수 있을까요?!
관객에게 결론부터 보여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건 상당한 모험 입니다. 끝이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 대신에 왜 그렇게 되었나를 보여준다는 건 그만큼 긴장이 풀어지는 일이니까요. 크리스토퍼 놀 란은 칼라와 흑백을 통해 이야기를 단절시킴으로써 레너드의 기억 상실을 관객에게 전이시키고 한 영화 속에 작은 단편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안겨주더군요. 치밀하고 정교한 스토리가 주요했지만 영 상이 그에 못 따라갔다면 절대 이런 놀라움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 다. 영화를 완전히 장악한 감독의 자신감은 관객인 저조차 느낄수 있었거든요. 또한 이야기를 이끌어간 세 명의 주인공 [LA컨피덴 셜]과는 또 다른 멋진 연기를 보여준 가이 피어스, 나탈리의 이중 적인 모습을 그려낸 캐리 앤 모스, 적인지 친구인지 헷갈리게 했던 조 판톨리아노의 정교하게 맞물린 매끄러운 흐름이 없었다면 [메멘 토]는 기억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메멘토] 속의 기억은 마치 물감과 같습니다.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존재이지만 섞으면 그 색으로부터 시작하되 다 른 색깔이 나오죠. 하지만, 섞으면 섞을수록 밝은 색이 아닌 어둡 고 혼탁한 색이 나옵니다. 덧칠할수록 점점 어두워져서 마침내 도 화지 자체를 복구할수 없게 망쳐버리는 기억이죠. 감독은 주인공과 관객을 괴롭히지만, 이정도 영화라면 얼마든지 괴롭힘을 당해도 기 꺼이 감수해낼 용의가 있습니다. 거대한 [메멘토]라는 거대한 기억 의 카오스 세계에서 아무런 나침반 없이 어디까지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보심이 어떠실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