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신만의 울타리임과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속박과도 같다. 태어남과 동시에 강제적으로 속해질 수 밖에 없는 이 불가항적 집단은 자신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떼어낼 수 없는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가족들이 마치 은행 번호표 받듯이 순서대로 짝지어져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탄생에는 그에 걸맞는 사연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연이라는 것은 기묘하면서도 신비로운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한핏줄로 인생을 공유하는 가족이라는 운명적 인연은 오죽할까. 이 영화는 그런 운명적 인연에 눈썰미를 고정시킨다. 그 기묘하면서도 신비한 운명적 인연.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형성을 말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다. 화목한 가정은 삶의 기본 베이스적 요건이 된다는 것. 하지만 실상 화목한 가정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본 옵션이 아니다. 가정의 불화는 마치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처럼 벌어지는 신기한 일만은 아니다. 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어느 가정에서나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충돌일 뿐이다. 다만 그 빈도와 지속성의 차이가 위기감의 정도를 판가름하는 것이다.
채현(정유미 역)과 경석(봉태규 역)의 우연한 만남으로 영화는 출발을 알린다. 가족의 탄생. 하나의 가족이 탄생되기 위해서는 인연의 실타래가 엮여야만 한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가족이라는 귀결점으로 엮어지기 위해서는 만남이라는 필연 자체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만남 그 자체는 하나의 울타리 성립의 예감을 촉발한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미라(문소리 역)는 제대후 5년만에 집에 오겠다는 동생 형철(엄태웅 역)로부터 전화를 받고 들뜬 마음으로 그를 맞이하나 그는 소식도 없이 20세정도 차이나는 아내 무신(고두심 역)을 소개시킨다. 그리고 그 어색한 동거가 시작된다.
일본어에 능통하여 일본관광객의 가이드로 살아가는 선경(공효진 역)은 사랑이라는 로맨스를 받아들이는 어머니 매자(김혜옥 역)를 한심하게 여기며 그로 인해 삶에 회한을 느끼고 애인인 준호(류승범 역)와도 심한 갈등을 빚고 결별하려 한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그녀를 찾아온 어머니를 좇아내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큰 가방안을 궁금하게 여기고 가방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애쓴다.
위에서 소개되는 두 가정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콩가루 집안에 가깝다. 전혀 화목하지 않고 언제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분위기는 안식처로써의 가정과는 깊은 괴리감을 지닌다. 때론 심하게 다투며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고 그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파고 들어간다.
'관심이 없으면 잔소리도 안한다.'고 했다. 사실 남이야 잘되든 못되든 상관없는 거니까. 그러나 상관없는 사람이 아닌바에야 잘못되어가는 꼴을 눈돌리고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지만 때론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하는 거다. 관심은 떄론 간섭이 되고 사랑은 애증으로 돌변한다. 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않을 만큼 미워하다가도 빈 자리가 그만큼 그리워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혈연이라는 핑계로 둘러댈 필요도 없는 태생적인 인연의 줄다리기인 셈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하나의 가족이 짊어지는 갈등의 굴곡을 유출시킨다. 하지만 감정적인 갈등을 증폭시키며 관객의 마음을 심란하게 몰아가는 것보다는 감정선의 흐름을 보다 안정적으로 유도하면서 관객에게 현실적인 공감대를 부여한다. 탐탁치 않은 처제-사실 처제라고 부르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만-이지만 동생이 사랑하는 여자이기에 받아주는 것이고 미워하고 싶은 배다른 동생이지만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귀해지는 동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시간의 교차로에서 엮이는 인연간의 접목관계를 통해서 제목 그대로 '가족의 탄생'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마치 각자의 에피소드로 나열되며 평행선을 그리는 것만 같던 이야기가 곡선을 그리며 하나의 점으로 일치할 때 보여주는 탁월함을 이 영화는 품고 있다. 어쩌면 한 사회가 지속되는 것은 수많은 가정들이 교류하며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하나의 만남이 두 집합간의 교집합으로 성립되며 그 여백에 자리잡던 여집합같은 인간관계도 하나의 합집합으로 성립된다. 그럼으로써 둘이었던 집단이 하나가 되며 결과적으로 한 사회의 결속에 이바지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옴니버스같은 각자의 가정이 인연의 알고리즘에 엮여 하나의 또다른 작품처럼 새로운 가족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어쩌면 일상적인 기연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연은 우연이지만 우리의 인생은 결론적으로 놓고 보면 필연적이다. 인생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불필요한 것처럼 모든 사연은 결과적인 필연성만을 지니고 전진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연도 모두가 필연이 된다. 그래서 가족의 탄생은 필연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러한 필연의 굴레를 세심하게 그려내고 그 안에서 흐르는 갈등과 화해를 기복없이 차분하게 묘사한다.
가족은 탄생한다. 그렇게 서로의 갈등도 사랑도 머금은 채. 어쩌면 혼란스러운 빅뱅이후에 은하계가 탄생되었듯이 혼란은 세상의 결속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까.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갈등도 어쩌면 추후 안정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까. 갈등과 충돌은 그 순간만큼은 괴로움과 아픔을 동반하지만 그 쓰린기억은 강한 결속과 경험적 인내를 선물한다. 그리고 불행으로 도출되는 오늘은 때론 어그러진 현실적 불만으로 와전되기도 하지만 행복을 향한 강한 의지로 각인된 채 한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위로 펼쳐지기도 한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비록 화목한 가정이 아니라해도 그렇기에 더욱 화목한 가정을 꿈꾸어야만 한다. 그렇게 삶이 고단하게 짓누를수록 삶의 의지를 키워나가는 풀뿌리처럼 말이다. 삶이란 다 그런 것 아닐까. 그렇게 막연하게 흘러오는 듯 해도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의미를 지닌다. 우연하게 만나 필연으로 빚어지는 우리네 삶속의 인간관계처럼 말이다. 가족의 탄생은 그렇게 우연같은 삶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필연의 접목을 훈훈하게 보여준다. 웃음과 눈물을 동반한 일상적 이야기의 감동은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울 법하다. 결핍에 분노를 느끼기 보다는 충만하고자 하는 의지를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 그 작은 진리를 이 영화는 여유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어쨌든 이 훈훈한 영화에는 수많은 배우들이 옹기종기 출연하고 있다. 문소리, 고두심, 엄태웅, 봉태규, 공효진, 류승범, 정유미 등. 특히 20살 연하의 남자와의 애정을 보여주는 고두심의 연기가 그 자체로도 파격적이며 몇몇 영화를 통해 얼굴은 살짝 알려졌으나 아직 낯선 얼굴인 정유미의 귀여운 연기도 눈에 띈다. 다양한 배우들의 기분좋은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 될 듯 싶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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