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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 바보입니다 맨발의 기봉이
jimmani 2006-04-20 오전 12:07:33 1510   [7]

우리가 이른바 "착한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들 속에서 가끔 정말 하늘이 내린 듯 착한 사람이 등장하면, 감동 받으며 보면서도 "저렇게 착한 사람이 정말 세상에 있을라구... 저건 영화니까 그래도 가능한 거지"하면서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고 선을 그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극장 프로그램이나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걸 순간포착하는 프로그램같은 걸 보면, 정말 세상에는 그렇게 바보스러우리만큼, 신이 내린 사람이구나 싶을만큼 착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차갑게 단정지었던 세상이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이 있기에 아직은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영화 <맨발의 기봉이>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인 기봉씨는 정말 바보같이 착하고, 정말 지능이 또래 나이에 비해 못미치긴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고 TV에도 나온 적이 있기에 진위 여부를 절대 의심할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전하는 바보같지만 그만큼 절대적인 선량한 마음은 우리 마음 속에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더구나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까지 거기에 더 꽃을 달아서.

충남 서산시의 조그만 마을인 다랭이 마을에는 유명인사라면 유명인사라 할 만한 총각이 살고 있다. 바로 마흔살 노총각 엄기봉 씨(신현준). 4살 때 열병에 걸리는 바람에 8살 때 지능이 멈춰버렸지만, 그에게는 그 누구도 절대 욕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바로 홀로 모시는 어머니(김수미)를 지극히 아끼고 보살핀다는 것. 매일마다 맨발로 달려가서는 어머니가 드실 찬거리를 손수 가져와서 마을 사람들도 그의 이런 선행은 훤히 다 알고 있을 정도. 그러나 근래 들어 어머니가 부쩍 많이 체하시고 속이 안좋으신 듯 하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그것은 어머니의 치아가 많이 약해 음식을 씹지 않고 그냥 삼켜서 그렇다는 것. 걱정하던 기봉이는 어느날 동네 할머니가 틀니라는 걸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어머니가 밥을 맛있게 드실 수 있게 할 방법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틀니의 가격이 보통이 아닌지라 기봉이는 또 걱정하고, 그러던 와중에 다랭이 마을의 박이장(임하룡)이 기봉이를 마을의 자랑으로 만들어보자는 목적에서 전국 아마추어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것을 제안하고, 1등을 하면 돈도 많이 준다는 것을 안 기봉이는 어머니의 틀니를 위해 참가하기로 결심하는데.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살짝 걱정되기도 했던 것이, 오히려 영화의 출연진들 때문이었다. 출연진들의 연기력 면에서 우려되는 건 추호도 없었으나, 이들 중 다수가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 2>에 출연했던 배우들이라서 좀 걱정이 되었다. 신현준, 김수미, 탁재훈, 김효진까지. 그래서 아무래도 그 영화 속 코믹한 이미지가 이 영화에서도 남아 있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좀 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건 순전히 기우였다. 물론 영화가 코미디적인 면도 제법 있어 관객들을 많이 웃기기도 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배우들은 역시나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더 깊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부분이 기봉 씨 역의 신현준의 연기다. 신현준이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실화에 매료되어 몇년전부터 적극적으로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가졌었다는데, 그만큼 기봉이라는 캐릭터에게 대단한 애정을 가진 듯하다. 단지 그 캐릭터를 연구하고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전히 그 캐릭터 자신이 되려고 한 듯이. 사실 처음에 제목이 등장하면서 선보인 그의 연기는 웃기만 하는 표정이나 행동 면에서 코믹한 분위기가 풍기는 면이 없지 않았으나, 극이 전개되면서 그가 연기하는 기봉이를 향한 웃음은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닌 흐뭇해서 웃는 웃음이 되어갔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따스하면서도 코믹한 분위기가 그가 연기하는 기봉이의 모습도 자칫하면 좀 코믹한 바보 이미지가 될 위험성이 있었는데, 진짜 순박하고 착하게 웃으면서 "아이고 참~ 성격도~" 이런 대사를 구사하는 그의 모습은 그런 마냥 코믹한 바보가 아닌, 정말 착하고 순박하고 따뜻한 마음씨의 기봉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전에 보여주었던 무게 있고 진지하고 카리스마 있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손짓 발짓 말투 습관 하나하나까지 온전히 기봉이가 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제대로 빛을 발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가 흘러가면 갈수록 진짜 실제 기봉 씨를 보는 듯 그의 순박한 미소가 나에게까지 스크린 너머로 전해졌으니까.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김수미 씨의 연기는 이번에도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이 배우가 사실 요즘들어 코믹한 이미지로 많이 나아가긴 했지만, 일용엄니의 이미지도 그렇고 이 배우의 또 다른 면은 한국적인 어머니의 단면이었다. 무뚝뚝하고 말투도 거친 듯하지만 자식을 향한 관심과 애정은 한도 끝도 없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 말이다. <슈퍼스타 감사용> 때에도 그랬고, 이번 <맨발의 기봉이>에서도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변함없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아들이 보여주는 지극한 사랑 앞에서도 겉으로는 무뚝뚝한 척하지만 속내로는 아들의 지극한 정성을 다 이해해주고, 몸도 성치 못한 아들이 멀리 어디 가기라도 하면 당장에라도 걱정에 안절부절못하는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도 연기를 통해 너무나 잘 살아났다. 물론 특유의 코미디 감각으로 노모 역할이지만 군데군데 센스 있는 유머 대사도 날려주셨고. 역시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은 천마디 말보다도 몸과 마음으로 연기의 깊이를 보여준다.

임하룡 씨의 연기 역시 보기 좋았다. 맨날 놀기만 하는 아들 여창(탁재훈)과는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속상해 하면서도, 너무나 기특한 효자인 기봉이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으며 마라톤 가르치기에 혼신을 다하는 후덕한 이장의 모습이 잘 살아났다. 김수미 씨와 비슷하게 겉으로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면서도 한번 애정을 쏟으면 그 애정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믿음직한 이장님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었다. 박이장의 아들 여창으로 등장한 탁재훈 역시 기대에 부응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가문의 위기> 때에 비해서는 덜 촐싹대고 오히려 나름대로 진지하고 감정 표현의 폭도 더 넓은 정극 연기라고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줘 앞으로 영화배우로서의 전망도 확실히 밝지 않을까 싶다.

마라톤을 소재로 한 것 때문에 <말아톤>과 이 영화가 제작 당시부터 많이 비교가 돼 왔는데, 그래도 제작사 측이 밝혔듯 엄연히 다른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느 영화가 더 낫고 못하다는 걸 떠나서 비교를 해본다면, <말아톤>이 깔끔하게 정제되고 세밀하게 묘사된 분위기라면 <맨발의 기봉이>는 손으로 빚어서 약간은 투박함도 느껴지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소재 면에서도 <말아톤>은 자폐아의 마라톤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지극한 부모님의 사랑, 자폐아와 그 주변 사람들의 성장과 갈등, 화해를 더불어 그리고 있다면 <맨발의 기봉이>는 자기는 모르고 오로지 엄마만 아는 기봉 씨의 지극한 어버이 사랑, 그 속에 빛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그저 원초적으로 그리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말아톤>과 다른 점들이 꽤 있는 만큼, 이 영화에는 또 이 영화만큼의 매력이 있다. 사실 이 영화는 만듦새가 한치의 빈틈이 없이 탄탄하다거나 하진 않다. 전체관람가이니만큼 억지스럽고 자극적으로 웃기려들지 않고 재치 있고 정감 넘치는 소재들로 거부감 없는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러닝타임도 그다지 길지 않아서 그런지 기봉 씨와 주변 사람들 간의 관계에 있어 진전이나 갈등, 화해가 마냥 매끄럽게 표현되진 않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기봉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러 에피소드들도 어떨 땐 그저 주루룩 나열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그러나 이 영화에 담겨 있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진심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그 대상이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갖고 있는 결코 식지 않는 뜨거운 애정에 대해 일종의 존경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진심은 영화를 보는 나에게로 그대로 전해져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고. 후반부, 마라톤 대회에서 기봉이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이런 진심은 극대화된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장면은 주저앉은 기봉이의 기억 속으로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들이 하나둘 스쳐가는 아련한 순간이 아니었다. 내 눈시울이 정작 뜨거워졌던 순간은, 그런 순간들이 지나간 뒤 기봉이의 누런 이 사이로 내민 눈물겨운 미소였다. 어머니와의 한 순간, 한 순간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최고로 기쁘고 행복했다는 듯이 짓는 그 미소.

순간 이런 생각이 확 들었다. 내곁에 계시는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기봉이처럼 이렇게 진심어린 함박미소를 지었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면 어머니의 사랑은 무한하고 당연히 보답해야 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으나, 이상하게도 몹쓸 정신을 가졌는지 우리는 막상 어머니의 이런 사랑을 몸으로 받게 되면 그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가끔씩은 오히려 짜증난다는 듯 그것을 밀쳐내곤 했다. 언제나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공기처럼 항상 곁에 존재했기에 당연히 여기고 있는 듯 없는 듯 무덤덤하게 여긴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이야기가 매우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 기봉이의 미소, 어머니 생각에 당장이라도 결승점을 지날 듯 일어나 달려가는 그의 기운찬 모습은 정말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라는 존재, 비단 어머니뿐만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 빛을 더해주는 친구나 동료, 그외 많은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기에 우린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렇게 곁에 있는 이들이 나를 항상 지켜봐주고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기뻐했던 적이 몇번이나 있었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굳이 나에게 뭘 해주지 않더라도, 생각나면 전화하고, 생각나면 만나볼 거리에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우린 그동안 그다지 해본 적이 없는 것같다. 그런 점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언제나 행복해하고 언제나 웃는 기봉 씨의 모습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언제나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기봉 씨보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감각이 무뎌지고 무덤덤하게 변해버리는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기봉 씨보다 더 바보같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 영화 <맨발의 기봉이>는 흙이 잔뜩 묻은 채로 뛰어서 지저분하고 투박한 발을 잘 씻지도 않지만 어머니를 향한 마음은 광택제로 광을 낸 것도 한참 못미칠 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기봉 씨의 모습처럼, 모양새는 투박하고 꾸밈없지만 그 속의 부모님에 대한 애정,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봐주는 모든 이들의 대한 애정이 담긴 진심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어머니가 별거 해주시지 않아도, 그저 곁에 계셨다는 것만으로 언제나 날 지켜봐주고 계셨다는 것만으로도 금메달을 기꺼이 걸어드릴 수 있는 사람. 매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어할 만큼 삶을 축복처럼 여기고 그 새삼스런 행복 앞에서 진심으로 입안에 미소를 그득 담고 웃을 수 있는 사람. 기봉 씨처럼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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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chltlr
현준님의 파격적인 변신의 연기에 찬사를 드립니다   
2006-04-2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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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기봉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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